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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양부인 May 27. 2021

건강쿠키 만들기_by 레시피 파괴자

내 건강을 망치러 온 자연식


노출의 계절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이제와 다이어트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마음먹은 지 반나절도 안됐건만,

벌써부터 과자가 당긴다.


앞서 믹스 쿠키를 멋들어지게 구워낸바.

나는 건강쿠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초코쿠키 쑥쿠키 코코넛커피쿠키 완성본 인증






건강한 레시피를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바나나 오트밀 쿠키'라는 게 있나 보다.

밀가루, 설탕, 버터, 계란 없이도 오직

바나나와 오트밀만으로 만든 쿠키란다.


먼저, 한물간 바나나 두 개를 으깬다.

포크로 바나나를 누르고 짓이기다 보면

내가 지금 이유식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죽을 하려던 참이었는지

그냥 마늘을 빻아놓은 것인지

아주 헷갈리는 비주얼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게 쿠키로 굽히기는 할까 싶을 때쯤

오트밀과 개인 선호식품 부재료를 넣어

휴지기를 거친 후 오븐에 구우면 된다고.






미리 고백하면, 나는 레시피 파괴자다.

좋게 말해 눈대중과 응용력이 뛰어나고,

더 솔직하자면 그냥 대충 때려 넣는 편.

맏며느리 갬성으로 얻은 자신감이랄까.

원래 큰엄마들은 숟가락도 안 쓰시고

간장 액젓 다 통째로 들이부으시잖아.ㅋ


쿠킹 저울은커녕, 집에 계량스푼도 없다.

유일한 계량컵은 쿠첸 밥솥에 딸려온

부록용 쌀 컵뿐. (쌀 1인분 용량)


당연히 오트밀도 집에 있을 리 없고,

오트밀이 함유된 시리얼에서 건포도와

크랜베리를 골라내 바나나와 섞기로.


그렇게 냉장고에 잠시 넣어뒀던 반죽을

대충 떼어 모양을 잡고 오븐에 올렸다.


180도 16분. 뒤집어서 180도 15분?

OK. 예열을 마친 오븐에 올렸는데, 오!

바르지도 않은 메이플시럽 향이 난다.

건강하게 달달한 맛이 기대된다.






16분 후.

반대쪽을 구우려는데 반죽이

뒤집히지가 않는다. 하나도 안 익었잖아!

살점을 푹 파먹은 쿠키를 억지로 뒤집고

이번에도 180도 15분을 구웠다.


띵.

떨리는 마음으로 오븐 쟁반을 꺼냈는데

여전히 빵보다 물컹한 쿠키...






나는 이때 멈췄어야 했다.

쿠키가 암만 두부 같은 식감이래도

메이플시럽향을 맡으며 삼켜야 했는데..


성질 급한 나는 오븐 쟁반을 한 칸 위로

옮겨서 160도 12분을 추가로 돌렸다.


아, 뭔가 싸한데? 제과점 향은 어디 가고

한약방 냄새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안 먹어봐도 다 알 것 같은 궁극의 불맛.

내가 구운 게 쿠키인가 숯인가







건강원 냄새가 나서 건강쿠키인가

탄 부분만 잘라내어 먹기로 했다.


세상에! 얼마나 태웠는지,

너무 딱딱해서 가위를 대자 탄 부분이

박살 나면서 제각각 튕겨져 나갔다.

주방은 이미 대환장 잿빛 파티.

화산재로 피폭된 것 같다.


와.. 엄마랑 따로 살아 다행이야.

누가 봐도 등짝 스매싱 1초 전.



탄 부분을 잘 도려냈다 생각했는데

커피 찌꺼기가 왠지 더 예뻐 보이네.








오늘의 교훈.

유기농은 나랑 안 맞는 듯.

혈관 막혀도 쿠키믹스로 만들 것.

레시피 파괴자를 이제 졸업해야 할 때.

건강식이 자칫하면 암을 유발할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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