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해방일지 #8
“5, 4, 3, 2, 1, HAPPY NEW YEAR!! ”
가슴이 웅장했다. 14살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교복을 입는다. 친구들과 다른 학교에 가는 건 너무 싫은데, 나만 다른 학교에 가는 게 또 조금은 특별한 것도 같아서 나름의 위안을 해본다. 그건 그렇고… “아 또 졌잖아!!” “니가 못해서 진 걸 누구한테 씅질인데?” 우리 집엔 나름 12월 31일의 전통이 있다. 가족들이 모두 한방에 모여서 이불을 깔고, 조용히 둘러앉아 고스톱을 친다. 매년 같은 루틴이었다. 막내(나)가 먼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빌미로 판을 시작한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비율로 따지자면 5:3:1 정도로 승과 패를 나눠 가진다. 물론, 5(아빠):3(형):1(나), 엄마는 심판이다. 새해 첫날부터 뜻대로 되는 일이 없던 나는 결국 또 삐진다. 보통 1월 1일 00시 04분 정도면 판은 정리된다. “아 그걸 왜 돌려주는데, 이럴 거면 안쳤지.” 형은 항상, ‘지’도 잃었던 돈을 다시 돌려받을 거면서 투덜거린다. 딴 돈, 잃은 돈은 달라도 모두 사이좋게, 한 살 씩 나누어 먹었다.
“5, 4, 3, 2, 1, HAPPY NEW YEAR!! ”
너 나 할 것 없이 포차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꺼낸다. 카톡의 1은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인다. 돌고 돌아 다시 느낌표 ‘!’. 5분쯤 뒤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실없는 소리들. 스물넷이든 열넷이든 그냥 마냥 초딩 때 모습 그대로인 친구들. 한두 잔을 더 기울이다 늦지 않게 집으로 향한다. 도착한 집은 아직 불이 밝다. 다만 조용하다. 조용한 집의 정적을 깨고, 방문을 열어 이불 속 엄빠께 인사한다. 괜히 들어가 TV를 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연기대상을 함께 본다. 바로 잠들기 미안했다.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은 아들을 기다리다 불을 켜고 잠든 그 마음이 감사하고도 미안해서. (하지만, 변함없이 그 다음 해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리석은 아들내미란)
“우리, 그래도 새해니까. 카운트다운은 좀 볼까?”
“그럼 조용히 TV 틀어. 이안이 깨면 안 되니까” 소리3의 KBS 연기대상.
“5, 4, 3, 2, 1, HAPPY NEW YEAR!! ”
나름 새해의 기분을 낸다고 선물 받은 고급 치즈 세트를 꺼냈다. 나는 KGB, 희진은 제로콜라.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장모님 댁으로 가 떡국을 먹었다. 불고기도 먹었다. 쭈꾸미 볶음도 먹었다. 과메기도 먹었다. 카운트 다운도 보고, 든든하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작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1월 1일을 보냈는데, 뭔가 새해 느낌이 나지 않았다. 새해가 일요일인 탓일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한 1월 4일쯤인가? 머리를 탁! 치며 왜 올해는 새해 느낌이 나지 않은지 알아챘다.
그래. 2023년 1월 1일의 나는 떡국은 먹었지만, 불고기도 먹고, 쭈꾸미 볶음도 먹고, 과메기도 먹었지만, 가장 중요한 나이를 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