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해방일지 #7
온종일 굳게 닫혀있던 회사 창문의 루버가 로맨틱하게 열렸다. 팀장님 어머님은 팀원들을 빨리 퇴근시키라는 다정한 말씀을 전하기도 하셨다. 올해의 첫눈이 내렸다. 매번 눈이 올 때는, 특히 그 눈이 첫눈일 때는 꽃을 받는 마음이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받는 예쁜 꽃.
흰 눈을 좋아한다.
1)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때때로 옆으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여유로움이 좋다.
2)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눈의 결정의 신비로움이 좋다.
3) 소복이 쌓이는 꾸준함이 좋다.
4)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발의 촉감과 밟힘 속에서 단단해지는 꿋꿋함이 좋다.
5) 눈사람을 만드는 동심이 좋고, 누군가가 만들어둔 눈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좋다.
6) 하얀 눈 위의 발자국은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선행자의 이정표같아 고맙다.
7) 내 뒤로 남겨진 발자국들은 지나온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추운 겨울, 잠깐의 예쁨을 선사하고 휙 사라져버리는 흰 눈은 마치 벚꽃 같았고(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자라온 대구는 겨울 아주 짧은 시기 동안에만 눈이 내렸었고,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도 많았다), 온 겨울 내내 눈이 왔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았다.
2022년의 눈은 여전히 예쁨 그 자체였지만,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긴 듯 했다. 걱정이라는 이름의 꽃가루 알레르기. 첫눈을 보고 알레르기가 발현했다.
1) 이제 막 걷고 뛰기 시작한 이안이가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면 어쩌지?
2) 영하의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면 안되는데…
3) 수도가 동파되면 이안이 엉덩이는 어떻게 씻겨주지?
4) 도로가 얼면 외출하기도 힘들 텐데…
달라진 건 이안이가 있다는 사실 하난데, 눈을 대하는 내 모든 태도가 달라졌다.
5) 어른들의 동심은 걱정으로 대체되나 보다.
6) 하나도 어른스럽지 않은 나인데, 이안이 하나로 조금은 어른이 되고 있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7) 이안이에게도 첫눈을 보여 줘야지.
8)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을 때, 이안이 표정은 어떨까?
9)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해봐야지.
10) 아무도 밟지 않은 눈 길에 이안이를 두고, 이안이의 걸음걸음을 기록해야지.
라는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전히 흰 눈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눈을 볼 때는 예쁜 꽃을 보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