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무서운 날이었을 뿐

by 투스

아이의 이를 뽑는 일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어른에겐 "조금 아프고 말겠지" 싶은 일이지만, 몸을 덜덜 떠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아이에겐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인 듯하다.


보통 유치는 자연스럽게 빠진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영구치가 유치의 뿌리를 서서히 녹이고 지지력을 잃게 만들며, 결국엔 잇몸에 겨우 붙어 있게 된다. 이쯤 되면 손으로 살짝 잡아도 빠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아래 앞니는 영구치가 유치 안쪽에서 뿌리를 녹이지 못하고 올라오는 일이 잦다. 이 경우 유치의 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럴 땐 유치를 솎아내야 한다. 보호자분들 중에는 "이가 안쪽에서 나서 큰일 난 줄 알았다"며 놀라서 황급히 내원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종종 있는 일이니 놀랄 필요는 없다. 치아를 빼주기만 하면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힘든 일인 게, 뿌리가 길기 때문에 발치할 때 아파서 꼭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형제 환자가 있다. 동생은 처음 왔을 땐 치과 입구에서 격렬히 저항하던 친구가 지금은 혼자 걸어와 혼자 눕고, 스스로 입을 벌린다. 물론 아직 다 끝나기 전에 도망치듯 내려올 때도 있지만, 나는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다. 반대로, 오늘은 원래 진료를 잘 받던 형이 문제였다. 내가 실수로 “이를 두 개 뽑아야겠네요”라고 먼저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보통 맨 마지막에 해야 한다. ‘이 뽑자’는 말을 듣는 순간, 아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셋이다. 두려움을 스스로 참아내고 뽑거나, 보호자가 원하면 억지로 묶고 하거나, 혹은 마음의 준비를 위해 집에 돌아가는 것.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다음에 뽑을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장면이다. 아이는 이를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막상 뽑으려 하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몸을 떤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심호흡을 한다. 경험상 98%는 시간만 버리고 마음은 절대로 준비가 되지 않는다. 다시 입구까지 나갔다가, 용기를 내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의자 앞에 서면 또다시 주저앉고,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한 끝에 결국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실망한 마음을 품은 채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럴 때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려고 한다. 나 역시 꼭 해야 할 말을 결국 하지 못하거나, 해야 하는데 무서워서 결국 포기할 때가 많은데 그때의 스스로의 답답한 모습과 실패한 기분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결국 빠질 이다. 오늘 안 뺐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오면 더 쉽게 빠질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치과에서 이를 뽑는 일’ 일뿐이다.

스스로에게도 무서워서 포기한 날이 오면, 그냥 그날이 조금 무서웠던 하루였을 뿐이다. 다음에 하면 된다.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병법에도 36계 줄행랑이 있지 않은가. 다음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면 또 상큼하게 잘 뽑는 친구들도 있다. 또 마음속에 이 상황의 뿌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지금이 아닐 수도 있고, 혹은 실제로 상황이 생각보다 별일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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