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여동생

어머니는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by yangTV

내 어머니의 삶을 깊이 이해하려면, 꺼내기 힘든 우리 가족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기억 속에만 꽁꽁 숨겨두고 감히 꺼내 보지 못했던, 잃어버린 내 여동생에 관한 기억을…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그렇게 귀여워했던 내 여동생을 잃게 된 그날의 일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언제쯤 일어났던 일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 보다 충격적인 사건이 없었는데, 그 어린 마음에도 동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며 서럽게 울면서 그렇게 굳게 다짐했는데, 이제는 오직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니…


잃어버린 내 여동생을 생각하며 한참을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보고서야, 난 그때의 그 일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다는 것을 겨우 기억해 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팔고 변두리에 있는 교원 주택으로 이사했던 아홉 살 즈음의 일이란 것을…


그 날, 어머니는 아침부터 부산했다.


막내 동생이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어머니는 부랴부랴 아침밥을 해서 나를 먹이고는, 막내 동생은 업고, 한 손으로는 어린 둘째의 손을 잡고서 보건소에 갔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난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학교에 갔던 나는, 평소처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 즈음이면 어머니도 집에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난 별수 없이, 어머니를 기다리며 집에서 혼자 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온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의 어머니와는 표정부터 뭔가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막내 동생을 돌보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동생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또다시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못 했고, 뭔지 모를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어머니는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는 뭔가 반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면서 집안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 물건을 집었다 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갑자기 밖으로 나가기도 했고, 들어와서는 여기저기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의 넋이 나간 모습은 나를 너무도 불안하게 했다. 한참을 그러던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는, 동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 어떻게 하냐며 한없이 울먹였다.


나는 그날, 그렇게 내 첫 번째 여동생을 잃었다.

“혜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나보다 세 살 어렸던 내 귀여운 여동생을…


내 기억이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보건소에 도착한 어머니가 동생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예방접종을 마치고 나와 보니, 그 사이에 사라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는 동생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나서, 왔던 길을 몇 번이고 왕복하면서 찾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며칠을 계속해서 동생이 사라졌던 그곳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고,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그 당시 방송사에서는 미아 찾기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찾아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고 또 찾아봐도 내 동생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거의 35년이 흐른 지금, 잃어버린 내 여동생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잊어버렸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어렸던 그 시절, 어머니에게 이제 다시는 동생을 만날 수 없는 거냐고 물으며, 동생을 절대 기억 속에서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흐르는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 정말 세월은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제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혜영"이라는 이름 두 글자와 생일이 나와 같은 12월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이름의 앞 글자와 그 얘의 뒷글자를 따서 막내 여동생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 정도다.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내가 무척 귀여워했었고, 나와는 달리 둘째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출산했다는 것 정도… 그게 내게 남은 기억의 전부다.


시간이 흐른 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그 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정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를 미치도록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추석을 맞아 친척 고모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는데, 같이 놀던 친척 동생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똥통에 빠져 죽었다면서?”


이 무슨 막말인가!!


순간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너무 얼어서 난 그 친척 동생에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화도 내지 못했다. 내 동생을 어떻게 해서 잃어버리게 됐는지 내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이 나온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얘들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할리 없으니 분명 친척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어른이면서 어떻게 내 동생을 그렇게 모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난 당장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럴 리는 정말 없겠지만, 만에 하나 어쩌면, 내 기억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결국 그럴 수 없었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난 그저 나만의 일로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또다시 너무 아파할까 봐.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내 어머니를 또다시 아프게 할까 봐. 그리고 마음 한 켠으로는 그 얘의 말이 혹시 사실일까 봐. 난 무서워서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그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그러한데,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마음이 아프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가슴 아팠던 일이, 우리와 가장 가깝다는 친척들에게 조차도 그저 그런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자식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그런 부정적인 시선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자식 잃은 죄책감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감내해야 했을 어머니가 견딜 수 없이 가여워졌다.


자식을 잃은 것이, 그렇게 조롱할 일인가? 그렇게 모욕할 일인가?


옆에서 위로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모욕하고 비난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물론, 어쩌면 그 아이들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기보다, 그저 아이들의 치기 어린 상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난 그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 어린 동생들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 믿지는 못하겠다. 나로서는 적어도 그에 준하는 무언가는 어른들 사이에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내가 그런 것처럼, 지금도 어머니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잃어버린 내 여동생이 여전히 들어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이니까. 그리고 그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을 그동안의 고통과 설움, 그리고 죄책감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게 너무도 가슴 아프다. 아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당신은 잊지 못하실 것을 아니까…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내 어머니가 이제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사람들의 그 말이 부디 사실이기를 지금 이 순간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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