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길었던 그 길을 걸으며

그 길을 걸으며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by yangTV

추운 겨울 어느 날,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길고 어두웠던 길을 걸었던 옛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때가 겨울이었는지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와 함께 걸어갔던 그 길이 어린 나에게 유난히도 춥게 느껴져서 겨울이라 상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날은, 너무도 추웠고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그날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처음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분주히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내리는 사람만 있더니, 결국 어머니와 나 외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난 어디를 가는지, 언제 우리가 내려야 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어머니의 굳은 표정에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렇게 버스는 우리 둘만 태운 채 어두운 도로를 한참 달렸고, 어느 시골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들을 내려 주었다. 버스에서 내린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가로등도 없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걸으면서도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때로는 장사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사잇길을 걷기도 했고, 양 옆으로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걷기도 했고, 가파른 오르막 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기도 했다. 어린 내 기억 속에 그때의 그 길은 너무도 추웠고, 너무도 멀었다. 도저히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약도 없이 걷다가 논밭이 드넓게 펼쳐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많지 않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비로소 나를 돌아보고는, 앞으로 우리들이 살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그곳은 초등학교 교사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어서 “교원 주택”이라고 불린다 했다. 우리는 그 주택들 중 한 곳에 세 들어 살게 되었는데, 방 하나에 조그마한 부엌 하나가 딸린 사글셋방이었다.


이 기억은, 아마 내가 막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철없던 나에게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은, 그저 길고 지루한 길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땠을까? 당시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신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가장 슬픈 길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앞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철저히 짓밟는 얄궂은 운명의 슬픈 길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버지는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선언하셨다. 더 이상 해외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 우리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난 아버지의 그 말에 뛸 듯이 기뻤다. 더 이상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좋았다.


집도 새 아파트로 옮겼다. 그 전에는 한 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인근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한 것이다. 지금 그 시절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작은 아파트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너무도 넓고 멋진 집이었다. 무엇보다 나만의 방이 생긴 것이 너무나 좋았다.


어머니도 좋아하셨다. 결혼하고서 매번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함께한다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었을까? 당연히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그렇게 우리는 이제 앞으로 행복한 날만 계속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하늘은 어머니의 그 조그마한 행복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웃음은 피자 마자 곧 져야 했다.


아버지가 일터로 가던 어느 날, 크게 교통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아버지가 몰고 가던 차가 앞에서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를 친 사고였다. 그 오토바이에는 당시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뒤에 타고 있던 사람은 그 사고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고, 운전하던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에 어머니는 반쯤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사고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물어가며 어떻게 해서 든 아버지를 빼내려고 동분서주했다. 운전이라는 것은 해본 적도 없는 어린 어머니가 무엇을 알까? 옆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 든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 쉽게 합의를 해줄 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피해자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며 애걸복걸했고, 결국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마저 팔아서 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온갖 무시를 당해 가며 모은 돈은 그 한 번의 사고로 모두 잃게 되었고, 아버지의 그간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다. 더구나 전 재산을 들여 어렵게 피해자와 합의했음에도, 사망 사고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6개월간 감옥에서 복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렇게 또다시 혼자가 되었고, 가진 돈이 없어서 나를 데리고 쫓기듯 그 먼 곳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그 어려웠던 시기를 어떻게 버티셨는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아 나는 감히 어머니에게 세월이 지난 지금도 물어보지 못한다. 가장 마음 아픈 시절이었음을 아니까. 그리고 설사 물어본다 해도 어머니가 나에게 사실을 말해 주지도 않을 것이니까. 내 어머니는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항상 웃으시며 아픔을 혼자 견디시는 분이시니까. 그런 분이시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당신의 입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무일푼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마흔이 넘은 지금은 너무도 잘 아니까. 남편이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20대의 젊은 나이로 홀로 견뎌야 했을 어머니…


정말 화가 난다.


내 어머니처럼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에게, 하늘은 왜 조그마한 행복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긴 세월을 지나 이제는 행복해져도 될 텐데, 지금 이 순간까지 어머니의 삶 속에서 하늘은 한 번도 제대로 된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 그것이 너무 분하고 또 분하다.


내가 어머니에 대해 돌이켜 보기로 마음먹고,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항상 하늘은 작은 행복을 준 뒤, 더 큰 절망을 어머니에게 안겨 주기만 했다. 난 그것을 순차적으로 어머니의 과거 삶을 돌이켜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난 왜 어머니 곁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왜 그런 일을 겪고 힘들었을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을까? 아니, 그러고 보니, 난 어머니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옆에서 지켜봐 왔으면서도…


처음에는 그랬던 내가 너무도 한심했다. 과거의 난 너무도 무심했다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아들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그런데, 아마 그것인 것 같다.


내가 무심해서, 내가 못나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어머니 곁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할 만큼 어머니는 내게 사랑을 듬뿍 주셨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 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당신은 그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아들인 내게는 그 힘든 일을 나누지 않으려고 홀로 애써 견디셨던 것임을…


나 같으면 그런 힘든 삶을 견디다 못해, 짜증을 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거추장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내가 없는 곳에서 홀로 서럽게 슬퍼하셨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만은 항상 행복한 웃음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 너무도 감사하다.

어머니가 내 어머니여서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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