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부업

어떻게 든 살아야 했던 어머니

by yangTV

우리가 변두리로 이사를 가고 얼마 안 있어 어머니는 곧바로 부업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마을에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일반 가정집에 선반을 몇 개 들여놓고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부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부업은, 건전지의 양극과 음극 부분에 들어가는 딱지 모양의 얇고 동그란 철판을 일렬로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두꺼운 갈색 기름종이로 김밥을 말 듯 동그랗게 감싸는 일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가지런히 해 놓으면, 업체에서 그것을 수거해 가서 제조설비에 넣어 건전지를 만든다고 했다. 업체에서는 자동화 기계로도 시도를 해 봤지만, 그렇게 하면 전극판이 구부러져서 불량이 발생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사람 손을 빌려 일일이 정렬하게 된 것이라 했다.


난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언제나 어머니가 부업을 하고 계시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으니, 당연할 수밖에.


난 그곳이 무척 좋았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그 아주머니들의 아이들도 나처럼 학교가 끝나면 모두 그곳으로 모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신나게 놀았다.


요즘처럼 PC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면 혼자 조용히 집에 틀어박혀 게임을 즐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는 한정되어 있었다. 뭔가 재미있게 놀려면 반드시 많은 아이들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지 않겠는가? 내 또래의 아이들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


난 아이들과 어울려서 같이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고, 자치기(길고 짧은 두 개의 막대를 치며 노는 놀이)나 비사 치기(비석 돌을 세워놓고 이를 맞혀 쓰러뜨리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딱지나 구슬치기, 공기놀이도 했고, 같이 동네 여기저기를 탐험하거나 굴을 파서 우리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도 했다. 여름에는 근처에 있는 강가에 가서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물놀이를 했고, 겨울에는 쥐불놀이를 하거나, 눈이 쌓여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포대자루를 타고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시들 해지거나 같이 놀 아이들이 없을 때면, 가끔 어머니 곁에서 부업을 도와 드리기도 했다. 빈 테이블 구석에 앉아 어머니의 부업을 도와드리고 있으면, 주위의 아주머니들이 나를 쳐다보며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어머니도 흐뭇하게 나를 쳐다보고는 했는데, 어머니의 그 눈빛이 난 너무도 좋았다.


어렸던 그 시절, 난 모든 것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도 그랬을까?

나처럼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


물론, 개중에는 즐겁고 행복했던 일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삶이 온통 절망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머니의 따뜻했던 미소나 환한 웃음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모든 것들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던 나와는 달리,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그때 그 시절은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직접 어머니의 마음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지만, 이제 내 나이도 마흔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굳이 어머니의 입을 통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동안 내가 경험해 왔던 삶이 자연스럽게 내게 알려 주니까.


어머니가 부업을 시작했던 그때, 내 아버지는 교도소에 계셨다. 아버지가 모았던 재산은 합의금으로 모두 사라지고, 우리들은 맨몸으로 그곳까지 쫓기듯 그렇게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 조금이라도 큰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나와 내 동생들은 너무도 어려 아직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한 때였고,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오직 부업을 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출소하고 나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부업을 계속해야 했다. 출소한 아버지는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내가 알기로 생활비를 제때 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다 쓸데가 있다면서, 심지어 어떤 때에는 몇 달이나 생활비를 주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어디에서 돈이 난 것인지 항상 술을 마셨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도박도 했던 것으로 난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는 경우도 많았었다.


어느 날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며칠을 집에 오지 않던 아버지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대낮에 찾아왔었다. 아버지는 두리번거리더니,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윽박을 지르면서 모아 놓은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안된다며 몸으로 막았다. 하지만,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무슨 힘이 있을까?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가 장롱 이불 사이에 꽁꽁 숨겨 놨던 돈뭉치를 찾아냈고, 그대로 떠나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


의지할 그 누구도 없는 그때, 가장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본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법이고, 난 너무 어려서 자세한 사항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힘들었을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어머니의 모습이…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내 아버지가 그런 모습만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내 기억을 돌이켜 보면, 어머니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고, 집에 있을 때면 나와 함께 즐겁게 놀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바쁜 일 때문에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다른 가족들처럼 근처 공원에 놀러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쉽다.


어머니가 조금 더 많은 행복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그때 조금만 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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