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꾸만 사고를 치고…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집안 물건에는 처음 보는 이상한 빨간딱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어머니는 문 밖에서 그런 집안 모습을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나를 부둥켜안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어머니는, 나를 보고 당부하듯이 말했다. 절대 저 딱지를 떼면 안 된다고, 떼면 바로 경찰 아저씨한테 잡혀간다고…
어머니의 말을 듣고 집안 풍경을 다시 바라본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빨간딱지가 붙어 있는 물건 중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14인치 칼라 텔레비전이었다. 내가 그동안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어머니와 같이 가서 샀던 텔레비전인데,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내 돈으로 산 것인데, 왜 거기에 빨간딱지가 붙어 있냐는 말이다!!
난 갑자기 북받치는 서러움에 어머니를 붙잡고 따졌다.
이것은 내가 산 거라고…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내가 산 것을 어머니도 봤지 않느냐고…
내가 이것은 떼야한다고 울부짖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안고 그저 말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우리 집에 그렇게 빨간딱지가 붙게 된 것은, 아버지의 연대보증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포클레인 운전기사였는데, 그 업계에 있던 누군가가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빌리기 위해 아버지에게 연대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 영세 사업자들은 의례 서로가 서로의 보증을 서주고는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그래서 아버지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보증을 서 주지만, 다음에는 그 사람이 아버지를 위해 보증을 서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보증이 잘못돼 버린 것이다.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하게 되니, 은행에서는 연대보증인에게 돈을 대신 갚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아버지는 돈을 갚지 못했고, 결국 법원에서 압류가 온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날 오전에 갑자기 집 앞으로 봉고차 한 대가 왔다고 한다. 봉고차에서는 건장한 남자 몇 명이 내렸는데, 어머니에게 압류통지서를 보여주더니 다짜고짜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접근하지 못하게 막더니,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온 집안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이고는, 이 딱지를 떼어내면 처벌을 받는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는 떠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빨간 압류 딱지를 그대로 붙인 채 생활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화면 한가운데에 붙어 있는 압류 딱지는 그대로 둔 채 TV를 봤다. 나는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소리도 들리고 화면도 어느 정도 보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돈을 떼먹고 도망한 그 사람을 여러 방면으로 찾아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분명한 것은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 살림이 압류로 넘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몇 개월 후에는 딱지를 떼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소중한 칼라 텔레비전을 잃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큰 일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보증을 서 주고는 했다. 그렇게 당했으면 이제 하지 않을 만도 한데 말이다. 아버지의 얘기로는 그 업계에서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했다. 다 그렇게 일을 하고, 다 그렇게 사업을 하니까. 하지만, 그 탓에 그 후로도 우리는 몇 번의 위기를 더 겪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저지른 그 사건사고의 부담은,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사건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당시 어머니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고통을 벗어나려고 어떻게 든 몸부림쳐야 했을 어머니의 삶을 말이다.
당시 나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셨고, 나를 대할 때면 언제나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어머니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냈던 기억은 아무리 뒤져봐도 거의 없다. 내 기억 속에는 항상 밝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당시 우리 집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런 어머니의 환한 웃음 때문이리라.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당신이 경제적인 이유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오직 이것이 유일하다.
덩치 큰 남자들에 둘러 싸인 채, 압류 딱지를 붙이는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절망을 느꼈을까? 생전 처음 보는 법원의 압류 명령서는 또 얼마나 어머니를 두렵게 만들었을까?
어머니는 이제까지 굳건하게 버텨 왔었다. 빈털터리로 이곳 변두리까지 흘러 들어왔을 때도, 아무리 힘이 들 때에도, 언제나 밝게 웃음 짓고는 했었다. 그런 어머니가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으면, 어린 나를 붙잡고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까?
그 순간,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어머니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고, 자신의 현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도 비참해서 서러웠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들을 보며 또 어떻게 앞으로의 날들을 살아갈까 걱정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도 너무 힘든데… 제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아 줘!’
라고…
어머니가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해야 했을 비참한 현실이 어떠했을지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에,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