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좋아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by yangTV

어머니는 손님을 너무도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집에는 손님들이 참 많이도 찾아오고는 했던 것 같다.


워낙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살았던 곳은,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별채가 있는 양옥 주택이었다. 그곳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세 세대 정도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안채에는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아주 자그마한 마루가 하나 있었다. 마당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에 매일같이 놀러 와서는 이 작은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이야기하는 당시 어머니의 얼굴에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항상 웃음이 가득했었다. 살던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쩐 일인지 자주 이사를 다녔었는데, 어디를 가든 어머니는 항상 손님이 오는 것을 그렇게 즐거워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이런 성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친구들을 손쉽게 사귀셨는데,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그 친구분들과 함께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쳐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술을 거하게 마신 후 갑작스럽게 친구분들과 집에 찾아온다고 하면 아내 된 입장에서는 싫어할 만도 한데, 내가 기억하기로 어머니는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는 경우가 없었다. 아니,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척 반겼다.


집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 더 하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을 때면,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고는 들뜬 목소리로, “아빠가 손님이랑 같이 오실 거야. 너도 그 아저씨 알고 있지?”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지 설명하면서 부산하게 안주거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같이 도착하면, 들뜬 목소리로 “아~, 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하며 문 앞까지 나가 반갑게 맞이하고는 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집에 아버지 친구분들이 오는 것을 어머니만큼 이나 무척 좋아했었다. 왜냐하면, 밤늦게 찾아온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항상 ‘종합 과자 선물세트’를 사 가지고 와서는 나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랗고 네모난 종이박스에 평소 내가 사 먹어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선물세트를 말이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내와 내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고향 집으로 찾아가면,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나와서는, “아이고, 우리 예쁜 〇〇이 왔는가?” 하며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는 아내와 나에게 앉아서 쉬라고 말한 후, 금방 간식거리를 준비해 오겠다며 부랴부랴 주방으로 가신다. 내 아내가 도와드린다고 다가와도,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것이니 편히 쉬라고 한사코 말린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 며느리는, 며느리가 아니라 내 집에 찾아와 준 반가운 손님 중 하나로 여기는 듯했다. 어머니가 평생을 그렇게 해 왔듯이 말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어쩌면 어머니는 손님을 좋았던게 아니라, 그저 사람 자체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사기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도, 돈을 빌려간 사람이 어느 날 잠적했을 때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두둔하고는 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버렸던 친할머니의 배다른 자식이 동생이랍시고 찾아와 아버지를 실컷 이용해 먹고는 야반도주를 했을 때에도, 많은 정을 줬는데 가버렸다면서 서글퍼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보험처리를 도와준 사람이 거액의 보험가입을 요구했을 때에도, 어려울 때 도와준 착한 사람이라며 부담은 되지만 꼭 도와주고 싶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이제까지 어머니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좋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도, 착한 사람인데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해하려 들었다. 좋은 것이 생겼을 때에는 남과 항상 나누려고 했고, 남에게 뭔가를 줄 때는 항상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가르쳤다.


처음에는 그런 어머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걱정되기도 했다. 요즘 세상은, 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냉정하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흉흉한 세상이다.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살갑게 다가와서,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어머니는 좋은 먹잇감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너무도 걱정이었다. 혹시나 내 어머니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길까 봐...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 많은 풍파를 견디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내가 걱정하고 있는 그런 일들을 설마 모를까? 인생의 굴곡으로 따진다면 나보다 훨씬 더 큰 풍랑을 지금까지 견뎌 오셨는데, 절대 모를 리가 없다. 나보다도 세상에 대해 더 잘 아실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여전히 사람들의 좋은 면만 보려 하는 것은, 본래의 긍정적인 천성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외로움을 견디는 어머니만의 방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없었다.


신혼 때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해외에 나가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불의의 사고로 교도소에 가야 했으며, 출소하고 나서는 돈을 벌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야 했다. 당연히 나를 낳을 때에도, 삶에 지칠 때에도, 슬프거나 외로울 때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그저 그 모든 것을 어머니는 홀로 견뎌야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어머니가 아닌 누구라도 외롭지 않았을까? 사무치도록 정에 굶주리지 않았을까? 그런 어머니에게, 곁에서 남편이 채워주지 못한 빈자리를 채워주고, 힘들어할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웃 사람들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이 언제나 도움을 주고, 항상 좋은 사람들만 있었을 리는 없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많이 의지하고 정을 준 만큼 상처 받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가까운 만큼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니까. 때로는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뒤에서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남을 비난하니까.


그런 사람들을 봐야 할 때,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야’. ‘사실은 좋은 사람들이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지금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 필사적으로 사람들의 좋은 면만을 바라보려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 생각이 억측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그저 어머니의 긍정적인 천성에 기인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런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힘든 일을 겪을 때면 항상 버릇처럼 하시는 말 때문이다.


“엄마는 괜찮다… 괜찮아”


어머니가 혹시 힘들까 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가 바라볼 때면,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소리 내어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비록 어머니는 나를 향해 그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어쩐지 나만을 향한 말은 아니었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 것 같기에, 사람들의 좋은 면만 보려는 그 예쁜 마음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어머니가 살아갈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괜한 걱정은 잠시 접어 두어도 되지 않을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 곁에는 내가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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