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시원서

모든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by yangTV

지금도 여전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무렵에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교의 입시원서를 서점에서 각자가 사야 했다. 그래서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각 도시에 있는 대형 서점들은 입시원서를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서점은 거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였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원래대로라면 서점에 직접 가서 그 대열에 합류해야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변두리에 학교가 있다 보니 대형서점까지 가려면 시간을 내서 그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만만한(?) 어머니에게 부탁할 수밖에… 그리고, 어머니는 내 예상대로 흔쾌히 원서를 대신 사주겠다고 했다. 역시 내 어머니도 대한민국의 어머니였다.


토요일 오후쯤, 난 기숙사 사감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은 후, 기숙사를 나섰다. 그렇게 집에 왔을 때, 나는 문을 열다 말고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어머니가 나를 보기가 무섭게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엄마가 서점에 가서 우리 아들 입시원서 사 왔는데, 서울대 원서를 달라고 하니까 글쎄 거기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엄마를 부러운 눈빛으로 모두가 쳐다보는 거 있지? 호호호.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가 어깨에 힘 좀 줬어.”


나를 붙잡고 그렇게 한참을 열변하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아들에 대한 뿌듯함이 가득했다. 난 그런 어머니에게, “서울대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겨우 입시원서만 샀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좋아?” 하며 퉁명스럽게 말을 했지만, 사실은 내 일처럼 좋아해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난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서울대에 입학해서 어머니에게 더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난 결국 떨어지고 말았으니까. 서울대에 지원한 것만으로도 그렇게 당신의 일처럼 좋아해 주셨는데, 왠지 그런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어쩐지 미안했다.


서울대에 떨어진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학창 시절에 난 제법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고자 했던 개구쟁이였을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였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확 달라졌다. 중학교 입학 당시 겨우 중위권 정도의 성적이었던 나는 1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전교 10등까지 성적이 올랐고, 많은 학교 선생님들이 놀라워했다. (당시에는 한 반에 6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모여 있었는데 1학년만 해도 12반이다 보니, 한 학년의 학생수가 700명을 넘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성적 상위 30명을 대상으로 서울대 준비반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선생님으로부터 특별 관리를 받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 정도의 성적을 냈다면 뭔가 특별 과외를 받은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과외가 다 뭔가? 그 흔한 학원조차도 제대로 다닌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학식이 높아서 따로 나를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내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 부모님이, “영어로 이름을 쓸 수 있으면 더는 공부 안 해도 돼.” 하고 말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까? 난 그저 선생님이 해주시는 수업을 열심히 들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남부럽지 않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머리가 좋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선생님을 잘 만나서?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머리도 좋은 데다, 내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다 내가 잘나서 그런 거라고… 다 내 노력 덕분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남들처럼 부모님이 과외를 시켜준 것도 아니고, 적어도 공부에 관한 한 부모님에게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마흔이 넘은 지금 어머니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면서, 그게 아니었을 수 있음을, 그리고 내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었는지를, 점점 느낀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과분한 것을 주었음을 비로소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도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삶과 행동으로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나에게 선생님은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무렵에는,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해서 부모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제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매년 어김없이 했던 연례행사였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그날 방문할 아이들 서너 명과 같이 마을을 돌면서 집을 방문했다. 내가 선생님 손을 잡고 집에 갔을 때, 난 놀라운 광경을 언제나 목격해야 했다.


“아이고~~ 우리 선생님 오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어쩌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우리 선생님께서 이렇게 방문도 해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호호호. 여기 과일 좀 드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아, 뭘 더 드려야 하나? 반찬 좀 싸드릴까요?”


어머니는 선생님이 방문할 때면 언제나, 이산가족이 몇십 년 만에 가족을 상봉하듯 허둥지둥 대문까지 뛰어나와서는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선생님을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극진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이 너무도 극진해서, 선생님과 함께 집에 들어서려던 내가 더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우리 선생님이 이 정도였나?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던 선생님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그때까지 세상에서 우리 부모님이 제일인 줄만 알았던 어린 나에게 어머니의 그 모습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후 내가 선생님을 어떻게 느꼈겠는가? 그런 선생님을 어떻게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제일이라 여겼던 우리 부모님보다도 높고 높은 하늘일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내가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은 결코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그럴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과분한 것을 주셨던 것이다. 바로 내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 내가 이룬 모든 것은 모두 내 어머니 덕분일 수밖에…


예전의 난 그것을 몰랐다.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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