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자식을 낳아 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난 여기에 한 가지 말을 더 덧붙이고 싶다. 남자는 자식이 결혼해야 비로소 철이 든다고…
내 아버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고모할머니 댁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아버지로서는 그 집에서 마냥 편하게 지낼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 나이에 집을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힘없는 아이가 혼자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리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가 겪은 아버지는, 유난히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허세도 무척 심했다. 집에 돈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있는 척을 했고, 무슨 일이든 항상 큰소리를 쳤다.
한 번은 우리가 살던 집을 수리해야 해서 아버지의 친구분 댁에 가족 모두가 하룻밤 신세를 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나에게 여러 번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다.
“아저씨 집에 가면, 절대 없는 티 내지 마. 고기 같은 게 나와도 절대 많이 먹으면 안 돼. 우리도 평소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처럼 보여야 해. 알았지?"
그날 저녁, 아버지의 예상대로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고기반찬이 잔뜩 나왔지만, 아버지의 눈치에 나는 조금 먹다가 배가 부르다며 결국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사실은, 오랜만에 본 고기가 너무나 먹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당시에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것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음을.
그랬던 아버지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항상 당신은 크게 사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큰소리치기만 했지, 일 다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아버지가, 자존심을 죽이고 다시 예전처럼 포클레인 기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밑에서 지시받으며 살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가 당신의 고집을 꺾은 것이다. 비단 일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예전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집안일을 조금씩 돕기까지 했다. 모두 나와 동생이 결혼했던 2008년 즈음에 일어난 아버지의 변화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말하기를, 이제 며느리도 보고, 사위도 보게 되었는데 마냥 놀고 있는 모습만 보이는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변한 이유는, 며느리였고, 사위였다. 이러니, 내가 남자는 자식이 결혼해야 비로소 철이 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우리는 아버지의 변화가 너무나 반가웠다. 물론, 누구보다 반가워한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조금씩 불어나는 살림살이에 기뻐했고, 아버지의 살가운 변화에 행복해했다.
나도 정말 행복했다.
제대로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그 오랜 세월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가 이제야 조금씩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에 내 일처럼 좋았다. 어머니의 웃음도 뭔가 달라 보였다. 이전처럼 처연한 억지웃음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나오는 진정한 웃음으로 느껴졌다. 그때는 정말,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어머니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2014년 8월, 모든 것은 어그러졌다.
착실하게 일하기로 마음먹고 어렵사리 구입했던 포클레인의 마지막 할부금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사고였다. 다른 차와 부딪친 사고도 아니었고, 사고가 날 만한 곳도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아버지는, 차가 미끄러져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가해자는 없고, 그저 피해자만 있는 사고였다.
아버지는 정말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지나가는 차도 그리 많지 않은 도로에서 사고가 났고, 전복된 차는 장마에 무성해진 풀숲에 가려져 발견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고, 차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다른 곳 다 놔두고 하필 목을 다쳤으니까.
결국, 그날 내 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마치 변덕스러운 신의 장난 같았다. 그 많던 할부금을 힘들게 겨우 갚고, 이제야 우리도 잘 살아 볼 수 있겠다며 부푼 희망을 안고 있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이라는 선물을 선심 쓰듯 던져 주고는, 이제 조금 행복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신의 변덕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힘들게 살아온 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정녕 신은 그 작은 행복조차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사고는, 단순히 아버지가 다친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보험은 모두 예전에 해약한 지 오래였고, 남은 것은 운전자 보험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치료비는 어찌어찌 충당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생활비였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갖고 있던 포클레인을 팔려고 믿고 있던 아버지의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겼지만, 그 친구는 헐값에 누군가에게 넘겨 버리고는 그 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고, 궁핍한 생활, 끝날 것 같지 않은 아버지의 병간호, 그리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아버지의 사고는 그렇게 우리에게 온갖 상처만 남겼다.
문득, 병간호에 지친 어머니와 함께 병원 앞을 산책할 때,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아빠가 살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나는 어머니의 그 말에, “맞아 엄마, 정말 다행이야.” 하고 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때 느낀 것이지만, 아버지가 없는 삶을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아버지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허세를 부리고 자존심에 큰소리만 치는 사람일지라도, 어머니에게 그렇게 야속하게 대했어도, 그런 것은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든 내 아버지니까.
이제와 돌이켜 보니 어머니가 그 말을 꺼낸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한다. 남편이 어떤 모습이든 남편이니까. 젊었을 적부터 아무리 고생만 시킨 매정한 남편이라도, 어머니에게는 40여 년을 함께한 세상의 전부였을 테니까. 그런 남편의 사고 소식에 누구보다 힘들었을 어머니의 안도하는 마음이, 그 말 한마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비록, 앞으로 겪어보지 못한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만, 철없는 아버지의 투정에 짜증 나는 일도 많겠지만,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어머니의 삶의 방식에도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세상의 전부인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어머니는 분명, 다시 한번 기운 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예감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