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어
그 일이 언제쯤 있었던 일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많아 봐야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갔다가 집으로 되돌아오던 중이었다. 어머니 친구분 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늘은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고, 주변은 도시 변두리 지역이 으레 그러하듯 한산했다.
집에 거의 다 와갈 무렵, 우리는 동네에 있는 한 슈퍼를 지나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그 가게를 무심히 바라보는데, 문득 나는 라면이 무척 먹고 싶어 졌다. 슈퍼가 자신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곧장 어머니를 올려다보고는 라면 두 개만 사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곧 있으면 집에 도착하니까 참고 가자고 했지만, 아이들이 어디 어른들 말을 듣는 사람인가? 나는 제발 딱 두 개만 사자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어머니는 떼를 쓰는 나를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라면을 사 주지 않으면 내 투정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았는지, 내게 500원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더도 말고 라면 딱 두 개만 사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먼저 집에 가 있겠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울음을 그치고, 어머니에게 알겠다고 말하고는 신이 나서 슈퍼로 돌진해 들어갔다.
슈퍼에는 라면 종류가 무척 많았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한참 쳐다보다가 내 눈을 사로잡는 라면을 발견했다. 다른 라면과는 달리, 그 라면에는 예쁜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백성공주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라면 봉지 속에 종이로 된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난 오랜 고민 끝에 그 라면을 집어 들었다.
150원짜리 라면이었다.
라면을 사들고는 희희낙락 거리며 집에 갈 때까지, 난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집에 돌아온 내가 어머니에게 해맑게 남은 잔돈을 내밀었을 때, 어머니는 내 손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을 하고는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고 많은 라면 중에 왜 하필이면 이렇게 비싼 라면을 사 왔냐고 말이다. 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물론 다른 라면에 비해 조금 비싸기는 했다. 당시 라면은 보통 100원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낼 일인가에 대해서는 어린 마음에도 의문이 들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곧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혼내는 동안 너무도 서럽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난, 결국 팬티 바람으로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당시에는 동네에 나처럼 벌거벗겨진 채 쫓겨나 울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집에서 쫓겨난 내가 갈 데가 있을 리 없다. 난 대문 앞에 벌거벗은 채 쪼그리고 앉았고, 서러운 마음에 한참을 울었다. 억울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다시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허락하기 전까지 집에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난 그저, 어서 어머니의 화가 가라앉기만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내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나는 대문 앞에서 앉아 한참을 그렇게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 보니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진다.
당시 무엇이 어머니를 그토록 화나게 한 것일까? 하고…
어렸던 나도, 그리고 얼마 전까지의 나도,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의문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내가 겪었던 그 일은, 그저 조금은 억울했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일까? 조금만 깊게 생각했더라면, 분명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왜냐하면, 맹세컨데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머니가 내게 그렇게 화를 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봤을 때, 자식으로서 가장 먼저 들었어야 했을 당연한 의문을, 당시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나는 전혀 하지 못했다. 항상 환한 웃음만 짓던 분이 그렇게 울며 화를 내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 당연한데도…
그리고, 이제야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처럼, 글을 쓰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고서야…
당시, 20대의 어렸던 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부업을 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인근에 있는 얼음공장을 다니기도 했다. 어머니가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이 딸린 여자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어머니에게는 소중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떠돌며 돈을 벌었지만, 번 돈을 가지고 노름을 하거나, 큰 사업을 위해 쓸 곳이 있다며 몇 달이고 생활비를 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가끔 어머니를 찾아와 윽박지르고는 어렵사리 모은 돈을 힘으로 누르고 빼앗아 가버리기도 했다.
온 힘을 다해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누구보다 의지가 되어야 할 남편은 오히려 당신을 힘들게 했을 뿐이었다. 당시 어머니에게는 온 세상이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기운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존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자식들이 있으니 당신은 힘을 내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위태롭게 살아가던 어머니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자식조차도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세상에 당신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 누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머니가 느꼈을 그 외로움과 서글픔, 그리고 절망감이란?
내가 건넨 거스름돈 200원을 보고 갑자기 북받쳤을 어머니의 서러움이 새삼 절실히 느껴진다. 힘들게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던 당신은, 왜 이렇게 삶이 힘드냐며 하늘을 향해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마저도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힘들게 하는 현실이 어머니를 그토록 화나게 하지 않았을까? 울고 싶게 만들지 않았을까?
라면은 그저 방아쇠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참고 참았던 울분을 마침내 터트리게 된 방아쇠. 어린 나를 큰소리로 혼내고, 집 밖으로 쫓아내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아팠을까? 순간 너무나 화가 나서 쫓아냈지만, 철없는 자식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고 또 얼마나 자책했을까?
라면을 사 달라고 조르는 나를 보며, 한참을 머뭇거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어쩌면 어머니가 건네 준 그 500원은, 당시 어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