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사글셋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일반적인 형태의 사글셋방은 아니었다. 원래는 주인세대만 살아야 하는 오래된 1층짜리 주택이었는데, 주인집에서 안 쓰는 방을 분리해 세를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주인집 거실과 우리가 사는 방 사이에는 엉뚱하게도 방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주인집에서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거실을 통해 우리 방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집 구조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만족하고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은 무척 어렸기 때문에 따로 방이 필요하지 않았고, 작은 부엌과 연탄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창고까지 있었으니까. 나는 그 집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살았다.
당시 주인집에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녀석은 주인집 아들답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많은 것들을 갖고 있었다. 장난감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옷도 나처럼 누군가 입던 옷을 물려 입은 것이 아니라 항상 새 옷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그 녀석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분, 차이, 돈, 물건에 대한 가치, 이런 것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나에게 있어 그 녀석은 그저 내 또래의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단지 나에게 없는 물건을 갖고 있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도 갖고 싶다며 부모님에게 달려가 떼를 쓰거나, 힘으로 뺏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주인집 아들과 나는 대체로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그 녀석이 전에 못 보던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그 녀석 말로는 부모님이 새로 사줬다던가? 뒷바퀴에 조그마한 보조바퀴가 양쪽에 달린 네발 자전거였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새로 산 자전거를 보는 순간 무척이나 타보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집 아들에게 다가가 나도 한 번 타보자고 나름대로 정중히(?)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좀처럼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 타보자는 데도 좀스럽게 끝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 실랑이를 하다 보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힘으로 자전거를 빼앗으려 했는데, 갑자기 그 녀석이 나를 밀쳐내는 것이었다. 갑자기 화가 났다. 억울하기도 했다. 그저 한 번 앉아보자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안될 일인가? 오기가 생긴 나는 있는 힘껏 그 녀석을 밀쳐 땅에 엎어트리고 자전거를 빼앗았다. 그 녀석은 주저앉아 서럽게 울더니 곧장 저주(?)를 퍼부으며 자기 엄마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했던 자전거를 타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 기분은 곧 곤두박질쳐야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크게 혼이 났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주인집 아주머니 앞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화가 무척 많이 난 듯했다.
정말 의외였다.
평소 난 주인집 아주머니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나를 보며 귀엽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고, 내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웃어넘기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가끔 우리 집에 간식거리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어린아이한테 자신을 예뻐해 주는 사람만큼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난 변해버린 아주머니의 모습을 낯설어하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 앞에 선 어머니는 연신 미안하다며,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내 머리를 잡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 녀석에게 어서 사과하라고 엄하게 나를 꾸짖었다. 나는 분한 마음에 하기 싫었지만, 별 수 있나? 미안하다고 말하라니까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내가 사과를 했음에도 어머니는 연신 아주머니에게, 그리고 그 주인집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앞으로 단속을 잘하겠다고 했다. 난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왜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나에게만 사과하라는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싫었던 것은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내가 저지른 일인데, 왜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 왜 엄마가 머리를 숙여야 하지?’
아마도 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 보면 어머니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어머니라고 마냥 나에게 화를 내고 싶으셨을까?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내 변명조차 들어 보지도 않고? 당시 어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현실을 이제는 이해한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모르기는 해도, 내가 집에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집주인 아들은 분명 울고 불며 자기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겠지? 그런 귀한 아들의 우는 모습을 보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어머니에게 내 존재가 그러하듯 아주머니에게도 분명 귀한 아들이었을 텐데. 그러니 아무리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였다 하더라도, 한낱 세입자의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었으리라. 아무리 철없는 아이의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무슨 험한 말을 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은 이미 끝난 뒤였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 외에는 없었을 거라는 것을. 왜냐하면, 비록 낡은 방 한 칸에 불과할 지라도, 그래야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제는 그 삶의 무게를 어머니와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