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난다. 학창 시절부터 워낙 친했던 사이인지라, 멤버 모두가 유부녀 유부남이 된 지금까지도 만남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 한번 모임을 시작하면 항상 새벽에나 들어오니 개중에는 반대하는 배우자가 있을 법도 하건만, 희한하게도 그들 모두가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주 만나라고 등 떠미는 편이었다. 나와 지낸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이어온 소중한 인연이, 단지 결혼했다는 이유로 끊어지는 것을 난 결코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꼭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솔직히 오직 친구에게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고민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남편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고민… 예를 들면, 나에 대한 뒷담화 같은?
어쨌든 그날도 나는 모임에 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퇴근하고 아내가 없는 텅 빈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 간단한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조금 쉬고 있는데, 갑자기 ‘삑삑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불쑥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내 첫마디였다.
평소 모임이 끝나면 밤길이 걱정돼서 아내의 연락을 받고 데리러 가고는 했는데, 그날따라 연락도 없이, 게다가 평소보다 일찍 왔으니,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하지만 금세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집에 들어서는 아내의 표정은 뭔가 재미난 것을 본 아이 마냥 한껏 들떠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들어서기 무섭게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는 나를 자기 앞에 앉혀 놓고 모임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절주절 풀어내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을 쏟아내는 탓에 아내의 말은 중구난방이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대체로 시댁 식구들과 엮이면서 생긴 서운했던 에피소드나 배우자의 무심하고 답답했던 태도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뭐, 결국은 결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뒷담화라 할까? 아무튼 나는, 그런 아내의 이야기에 푹 빠져,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말해 주기도 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신나게 이야기하던 아내가 어느 순간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오빠는 생각이 참 특이해.”
어?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이 참 특이하다니 무슨 뜻이지?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의미인가? 틀렸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상하다는 뜻인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말한 걸까? 온갖 생각이 한순간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서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로 한 것인지 아내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생각이 특이하다니 무슨 의미야? 틀렸다는 거야? 아니면 좀 이상하다는 거야?”
그러자, 내 반응에 무척 당황했는지 아내가 손발까지 써가며 허둥지둥 부연설명을 했다.
“아니, 내 말은 오빠 생각이 잘못됐거나 이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빠 생각이 모두 맞는 말이고 다 좋은데, 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그런 거야.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할까? 어쨌든 나는 오빠가 그렇게 생각해 주고 이해해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아내의 이런 친절하고도 칭찬 섞인(?) 설명을 들은 나는, “음… 결국은 좋은 의미로 얘기한 거였네?” 하며 곧바로 좋다며 속없이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당시 나라는 남자는, 참 단순하고 칭찬에 무척이나 약했던가 보다.
사실, 아내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이 일화는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그저 친구와 만나고 온 아내가 나를 보고 문득 “특이하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런 아내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재미마저 없다. 누군가,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얘기하고 있을까?’ 하며 불만을 표해도 딱히 변명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가장 먼저 꺼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내와의 이 짧은 대화가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내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오해는 금방 풀렸지만, 그 후로도 “특이하다”는 아내의 말은 좀처럼 뇌리를 떠나질 않았다. 아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불과한데도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말속에서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하나의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할지언정 결국은 모두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맞춰가며 살아온 부부 사이에서도 이처럼 생각이 나와 다름을 느끼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나와 다를까? 모르기는 해도, 내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다양한 생각과 기발한 관점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세상에는 옳고 그름을 떠나 굳건한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으니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당연한 귀결로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많은 생각들 중에 내 생각이 가장 옳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인생에 대한 조언을 담은 책이나 명언들이 샐 수 없이 많다.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선현들부터 현대의 유명인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해”, “이렇게 사는 것이 옳아”, “이 방법이 좀 더 나은 방법이야”, “이것이 삶의 정답이야” 하고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와 달리 매우 특별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여러 면에서 남보다 나은 사람들이어서?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분명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각자의 생각과 삶의 방식은 모두 다를 수 있고, 자신들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그런 글을 썼던 이유는 뭘까? 물론, 본인이 아닌 이상 정확한 이유를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분명 이런 생각으로 글을 남겼을 것만 같다.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이런 방식도 있음을 단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그것을 공감하고 안 하고는 그저 선택일 뿐이라고.
만약 그렇다면, 평범한 나 또한 그들처럼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것이 설령 남과 다른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생각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유명한 석학이나 선현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써보는 것도 어떤 면에서 나름 의미있을 테니까.
그래서 난 글을 한번 써 보기로 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한 평범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시선. 좀 더 거창한 표현으로 다시 말하면, ‘나만의 다섯 가지 인생 지침(?)’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내가 쓰려는 이 글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필연적으로 지극히 편협한 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제목도, 그냥 인생 지침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다섯 가지 인생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