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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Jan 25. 2021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도 돼

당당히 나를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②

대학교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무심코 거울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유난히도 내 얼굴이 못생겨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난 여드름은 밤새 더 늘어난 것 같았고, 낯빛도 무척이나 칙칙해 보였다. 평소 미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봐 줄만 한 얼굴이라고 자부(?)했는데, 이렇게 못생겨지다니. 한참 얼굴에 신경 쓰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속상했다. 그래서,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못생긴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너 요즘 나쁜 생각을 정말 많이 했구나? 착하게 살려고 좀 더 노력하라고. 그래야 얼굴이 예뻐지지.”


누군가는, 에? 무슨 말이야? 나쁜 생각하고 예뻐지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으니까. 착한 생각을 하면 얼굴이 예뻐지고, 반대로 나쁜 생각을 하면 얼굴이 미워진다고 말이다.


생각이 이렇다 보니, 내 대학시절의 모습이 어땠겠는가? 당연하게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친구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그저 이렇게 하자면 이렇게, 저렇게 하자면 저렇게 하며 지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딱히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이유가 없었다고 할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소심한 성격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정작 해야 할 말을 담아두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단지, 워낙 무던한 성격이어서, 당시 나로서는 사실 뭘 어떻게 하든 별 상관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고, 고민이 있다면 상담해 주면서, 그렇게 착하게 살고자 했다. 말했듯 마음은 얼굴에 나타나니까.


그런데, 착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얼굴 미용(?)에는 분명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생각만큼 그리 도움이 되질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착하지 않으니까. (물론, 나도 포함해서…)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며 잘 대해 주었을 때, 상대도 그에 맞춰 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그런 마음이라면, 세상은 참 따뜻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남녀 간의 연애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처음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면 상대방도 같은 호의를 보이며 서로 사귀게 된다. 하지만, 이 관계가 항상 지속되지는 않는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호의는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도 불평등이 생긴다. 결국, 누군가는 이런 불평등한 마음을 약점으로 잡아 이용하려 들거나, 심지어 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일까지 생기기도 한다.


보통의 일상적인 인간관계나 직장생활에서는 또 어떤가? 호의를 베풀면, 처음에는 모두가 그 호의에 고마워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호의는 당연해지고, 때로는 단 한 번의 서운함에 그동안의 호의가 모두 허사가 되기도 한다. 항상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체로 개인의 이익 앞에서 호의는 이처럼 무력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착하지만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은 심할 경우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내가 뭘 해도 저 사람은 아무런 말도 못 할 거야.”라며 어느새 만만한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다.


사람은 왜 이럴까?


어렸을 적부터 내가 배워온 세상과는 사뭇 달랐다. 은혜를 아는 착한 사람이 되어라. 불쌍한 사람은 도와주어야 한다. 착하게 살면 언젠가 복이 온다. 이렇게 모두가 나보고 착하게 살라고 가르쳤지만, 내가 살며 겪어온 세상은 착하게 살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호의는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돼 버리고, 심지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착하다는 것이, 함부로 대하고 무시해도 될 만큼 만만하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런 생각의 괴리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역시나 착하게 산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고, 쉬운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이 세상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리고, 자식에게 “너는 꼭 나쁘게 살아라.”하고 가르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미용(?)에도 좋지 않고… (사실,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단지, ‘착함’에 대한 정의는 다시 내려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착한 행동이라 여겼던 행동이나 태도가 확실히 ‘착한 행동’이었을까? 혹시나,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었거나, 소심함은 아니었을까? 내가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이럴 가능성 때문이었다.


착하게 살라는 의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살라는 의미이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둔함을 의미하니까. 그러니, 친절에 대한 대가가 오히려 부당함이라면, 당연히 그 부당함에 맞서 당당히 화를 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턱대고 버럭 화를 내는 사람처럼 이상한 사람이 또 있을까? 본인이야 그 순간 부당하다고 느꼈기에 화를 냈겠지만, 남이야 어디 그런가?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이고 사정일 뿐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저 우스운 사람이고, 어쩌면 상종하지 말아야 할 분노조절 장애자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니, 화를 내더라도 어디까지나 잘 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다시 말하자면, 화를 낼 때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할까?


누군가는 화내는데 무슨 품격이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화에도 분명히 품격이 있다. 품격이 별건가?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법칙에 맞게 화를 내면 그것이 품격이지. 그래서, 내 경우 부득이 화를 내야 할 상황이 오면 품격 있게 화를 내기 위해 어렵더라도 다음 세 가지를 먼저 생각하려 했다.


첫째, 먼저 화가 난 원인을 특정하고자 했다. 상대의 태도 때문인지, 손해 때문인지, 아니면 괜한 자존심 때문인지, 도대체 뭣 때문에 내가 그렇게 화가 난 것인지를. 그 이유는, 많은 심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화를 내는 이상, 확실한 효과를 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예전 기억을 더듬어 내가 어떤 때 화를 냈는지 생각해 보면, 대부분 뭔가 상대에게 내 생각을 강하게 표현해서 사과나 어떤 이익을 얻어내고 싶었을 때였다. 다른 방법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그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무작정 화를 내서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열불이 나는데, 상대는 그런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거나,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대들기도 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그것은 화난 이유를 하나로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정작 화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이것저것 다른 일까지 트집 잡아 한꺼번에 화를 내니, 내가 화난 이유를 상대가 헷갈려하거나, 오해할 수밖에. 한 번에 못하면 비효율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화가 난 원인 그 하나만 가지고 화를 내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경험상 그랬다.


둘째, 화가 난 대상을 한정하고자 했다. 특정 사람에게 화가 났다면 그 사람에게, 특정 정책에 대해 화가 났다면 그 정책에 한정해서 화를 내는 편이 훨씬 나았다. 괜한 사람이나 밥상에 화풀이해 봐야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었으니까. 학창 시절의 일을 돌이켜 보면, 부부싸움을 하고 출근한 선생님에게 괜한 트집을 잡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그 선생님을 이렇게 욕했다. ‘저 선생님 진짜 돌+아이네…’라고.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엄한데 화풀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셋째, 화를 내더라도 욕설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부당함에 맞서 내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화를 내다보면 간혹 언성이 높아질 수는 있는데, 그럴 때 분노에 사로잡혀 심한 욕설을 해서 좋게 해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 내가 화를 냈던 이유는 어느덧 온데간데없어지고, 괜한 감정싸움으로 번져 아무것도 얻어내는 것이 없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싸움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니 방식도 달라야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처럼, 화가 난 이유와 대상을 명확히 하고, 욕설이 아닌 논리와 근거로 화를 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품격 있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닐까? 음…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은 참 험하고 각박해서 착하게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인간의 본성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험상 그랬다. 그런 세상 속에서 착한 본성을 지키면서도 세상을 꿋꿋이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역시나 부당함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앞으로도 계속 부당함에 맞서 품격 있는 화를 내며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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