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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Feb 10. 2021

괜찮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어

당당히 나를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③

“야~ 너 예전에 살짝 왕따였던 거 알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첫해. 우연히 연락이 된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과 연말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한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내가 정말 왕따였다고? 전혀 몰랐는데? 언제 내가 왕따를 당했지? 아마 그 얘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영영 모를 뻔했다. 이쯤 되니, 내 성격이 무던한 것이 아니라 무딘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그랬어? 난 정말 몰랐는데? 아하~ 내가 왕따였었구나… 미안해. 난 정말 몰랐어.” 하고 대답하며 깔깔 웃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 친구의 다음 말이었다.


“역시 그럴 것 같더라. 왕따를 시키긴 했는데, 그때도 너는 모르는 것 같았거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친구의 표정에 나는 정말 배꼽 빠지게 웃고 말았다. 난 나를 유쾌하게 해 준 그 친구에게, 애써 왕따를 시켰는데 몰라줘서 많이 서운했겠다고 말하고는, 미안하다며 어깨를 다독여 줬다.


그런데, 나중에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낌새가 약간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왜 난 그걸 기억하지 못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그 일이 내 관심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고등학교 당시 내가 가장 관심을 쏟은 곳은 당연하게도 공부였다. 뭐, 학생이 그것 말고 관심을 가질 게 있나?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 풀려면 한 시간 정도는 우습게 지나갔으니, 다른데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게다가,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한 친구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런데, 굳이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몇몇의 기분에 맞추려고 내가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었을까? 모두와 친해질 필요도, 그럴 시간도 없는데? 그들이 뭘 하든 무슨 생각을 갖고 있든 당시 나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으니, 당연히 기억을 못 할 수밖에.




본의 아니게 왕따 커밍아웃(?)을 하게 된 이 일화를 일부러 꺼낸 이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다른데 관심을 두느라 미처 왕따를 당하는 것조차 몰랐던 것처럼, 어쩌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심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들은 그 제한된 총량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에게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내 좁은 식견으로 봐도, 이 가설이 마냥 허황된 가설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런 일들을 겪거나 들은 적이 많았다. 예를 들면, 매일 함께 만나던 친한 친구가 어느 날 연애를 시작하더니 갑자기 연락이 뜸해진 경우나,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경 쓰면서 정작 가족에게는 소홀한 경우 같은 것 말이다. 이 모두가, 한 번에 쏟을 수 있는 관심의 총량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과다하게 관심을 쏟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 한다. 성급한 일반화 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쏟는 ‘관심의 양’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 않은가?


이렇게 관심의 양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이 가장 관심을 쏟는 것은 무엇일까? 내 경우에는 두말할 것 없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대학 졸업식은 다가오는데 취업이 안돼 힘들었을 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을 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을 받아 억울함에 치를 떨었을 때, 오래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져 실연의 아픔에 몸부림칠 때, 그때 내 머릿속은 온통 나뿐이었다.


그런 경험을 겪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나라는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내가 했던 행동이나 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인간은 모두 똑같을 테니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와 모여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뭔가 큰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때 마침 바쁜 일이 끝나 달리 할 일이 없었고, 그런 와중에 남들이 모두 모여 그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별생각 없이 한마디 거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 후 그에 대한 생각은 이미 내 관심사에서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왜? 딱히 나와 크게 관계가 있는 일도 아니었고, 난 나 대로 내 할 일을 해야 했으니까.


“인간에게 허락된 관심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대부분의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 쏟기에도 벅차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남들의 시선에 너무 얽매여 있던 내가 조금 불쌍했다. 내 오리 궁둥이를 남들이 알아채고 비웃을까 봐 일부러 셔츠를 꺼내 엉덩이를 가리고 다녔던 학창 시절의 내가 불쌍했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사가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말 한마디도 조심했던 내가 불쌍했다. 남들은 그리 괘념치 않아할 일을 가지고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했던가?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그때 좀 더 당당히 엉덩이를 내 보이고, 좀 더 당당히 내 생각을 말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막연한 나만의 상상에 갇혀 난 그러질 못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스러울 때,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괜찮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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