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TV Apr 10. 2021

더 받지도, 덜 받지도 말자

당당히 나를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④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었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타인의 행복을 순수하게 기뻐해 주고, 항상 진실되며 절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못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데도 내가 한 일이 아닌 척, 마음속으로는 질투심에  미칠 것 같은데도 겉으로는 아닌 척, 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상사라 말을 섞는 것조차 싫은데도 함께 이야기하며 즐거운 척, 그렇게 자꾸만 척을 하며 스스로를 속였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난 정말 무서웠다.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비난할까 봐 무서웠고, 혹시나 그 잘못으로 인해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어떤 피해를 입을까 봐 겁이 났다. 남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는 내 속 좁은 본심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불안했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 혹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초조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속마음을 숨긴 채, 척을 하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도대체 뭐가 그리도 겁이 났던 것일까?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수는 없었을까?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보다 차라리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는 없었을까?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쓸 시간에 내 실력을 좀 더 키우려 노력할 수는 없었을까? 무엇보다 마음속에 드는 그 모든 두려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었던 당당한 나로 살 수는 없었을까?

그런데, 사실 이런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절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나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당당한 나로 살 수 없이유... 그것은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무리한 내 “욕심”때문이었다는 것을.

욕심이란 참 묘했다. 자꾸만 진실한 속내를 감추게 했고, 남을 쉽게 비방하게 만들었으며, 변명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 싶게 만들었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얻고 싶다는 생각과 이대로는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나를 자꾸만 초조하게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런 내 모습은, 예전부터 내가 바라던 당당한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참 부끄러웠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볼품없게 느껴졌고, 초라해 보였다. 무엇보다 내게 절망적이었던 점은, 그런 모습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음에도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선택했는데도, 원하는 것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 하나 좀처럼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원하는 것을 얻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나는 항상 무척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했다. 이 실수를 어떻게 덮지? 어떻게 빠져나갈까? 저 사람의 힘이 필요하니까 싫지만 웃어야 하겠지? 날 좋아하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선물을 주면 될까? 미움받으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했다. 무척이나 피곤했다. 남들은 쉽게 얻는 것 같은데, 나에게만은 좀처럼 허락해 주지 않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나 싶었다.

그리도 아등바등해야 하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뭐든 해야 했다. 어떻게 해서 든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이라는 녀석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는 것밖에는 없었다.

“더 받지도, 덜 받지도 말자.”

내 것이 아닌 것에 괜한 욕심을 부리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자. 대신, 내가 정당히 받아야 할 것만은 절대 놓치지 말자. 한 마디로 말해, 남의 것을 욕심내기보다 나에게 충실하자. 뭐, 그런 뜻이었다.

뜻만 본다면 마치 뭔가 깨달음을 얻어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만약 정말 인생을 달관했던 것이라면, 그런 말을 수시로 나 스스로에게 되뇔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나는 단지 필요했을 뿐이었다. 시시때때로 고개를 드는 무리한 욕심을 어떻게 든 다독이고, 다시 당당한 나로 살기 위해서. 더 이상 예전의 초라해 보이는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 말은, 그냥 나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역시 쉽지 않았다. 그 말을 되뇌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갈등이 일었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과 진심으로 축하해 줘야 한다는 마음이,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다는 욕심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그렇게 서로 공존하며 다투고 있었다. 그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더 받지도, 덜 받지도 말자. 괜한 욕심을 낼 필요는 없어. 넌 그저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돼. 다른 사람은 관계없어. 작은 것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아. 그것이 행복이야. 심호흡을 하고 여유를 찾아. 언젠가 너에게도 기회는 와. 단지, 너의 순서가 오지 않았을 뿐이야. 그러니 초초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어. 너는 그저 흔들림 없이 네 길을 가면 돼.’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하던가? 처음에는 따로 놀던 내 마음도 계속되는 노력 끝에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히 그 주문 같은 말을 되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로 지금까지 몸에 베인 욕심이 금방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내가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말보다는 그 말을 되뇌는 동안 겪었던 경험들 때문이었다.

“더 받지도, 덜 받지도 말자.”는 엉터리 같은 주문을 걸며, 애써 내게만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던 때였다. 처음에는 내 마음을 다독이는데 온 힘을 쏟고 있어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문득 느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갑자기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팀장은 나를 무척이나 승진시키고 싶어 했고, 내가 느끼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주변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걔가 그랬을 리가 없어.” 하며 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들이었다.

이상했다. 내가 욕심을 부렸을 때는 그렇게 멀어져만 갔던 것이 정작 손을 놓자 나에게 다가왔으니까.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이라고는 단지 욕심을 버리고 여유를 찾으려 노력한 것뿐인데, 단지 그것만으로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이리도 변해 있었으니까. 의도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결국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구나. 그렇게 확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은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얻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한 후에 여유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세상의 이치를 생각해 봤을 때, 인생은 언제나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변수가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는 했다. 그래서, 뭔가를 집요하게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그렇지 않다고 못 얻는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인생에는 운이라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업의 채용면접만 봐도 그랬다. 능력 있고 스펙이 좋다고 항상 면접에 합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부서의 팀장이나 팀원과 성향이 맞지 않아서, 때로는 면접관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혹은 어쩐지 금방 퇴사해 버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에, 유능한 사람들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랬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고, 남과 비교하며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었고, 기다림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세상의 이치에, 남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방송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에게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을 때면, 대부분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잘 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외골수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당연한 결과이지 그게 어떻게 운 덕분이냐고. 모두 그저 상투적으로 하는 말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왠지 빈말이 아니었을 것 같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언제 올지 모를 그때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지 않았을까? 그러니, 운이 좋았다는 그 말은 결국 빈말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누가 처음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처럼, 인생은 조바심에 무리한 욕심을 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기다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가 앞으로도 나를 당당한 나로 있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더 받지도, 덜 받지도 말자.

오늘도 나는, 내가 찾은 이 엉터리 같은 마법의 주문을 걸며 당당하게 여유와 기다림을 즐긴다.

이전 04화 괜찮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