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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May 28. 2021

원치 않는 가르침

남을 존중하는 사람이고 싶다 ②

나에게는 좀처럼 낫지 않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은 병세가 많이 호전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왠지 완치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병은 다른 병과 달리 나이가 들면 들수록 증세가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그 고질병은 바로, 누군가를 자꾸만 가르치려 드는 병이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증상이 바로 말이 많아진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말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며 무한 반복한다는 것인데, 이 병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치매 환자보다 주변 사람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음을 자각한 것은 최근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기(?)에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말기 환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넘어가자. 착각이라도 좋으니 그냥 초기였다고 믿고 싶다.) 만약 지금보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발견했다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좀 더 빨리 알아챌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미처 인지하질 못했을 뿐, 이 병에 걸릴 조짐은 이미 20대의 풋풋한 대학시절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시작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멋모르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리저리 치이며 1년을 보내고 난 후, 난 새로운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도 선배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웃으면서 “선배님~, 선배님~”하며 나에게 다가오는데, 처음에는 그 모습이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어찌나 당황스럽고 어색하던지... 그때의 그 느낌은 뭐랄까 무척이나 이질적이었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이 그럴까? 내가 선배라는 사실을 자각한 후 나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후배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어떤 책임감과 함께,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만은 어른스럽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고,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먼저 알아채고 명쾌하게 해결해 주면 얼마나 멋질까? 그것이 바로 선배로서의 위엄이고 책임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그런 생각이었던가 보다. 


그리하여, 나는 후배들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풍성한 가르침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지, 너처럼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하는 것 잘 보라고! 도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해?”

“연애는 이렇게 하는 거야. 자, 내가 하라는 대로 해봐.”

“그건 잘못된 거야. 넌 그 생각을 뜯어고쳐야 해.”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어. 내가 해봐서 알아.”

“이게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당시 후배들을 향한 내 마음은 정말 순수했다. 그저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그런 내 순수한 마음이 통했는지, 후배들도 나의 주옥(?) 같은 가르침에 하나같이 고마워했고 무척이나 잘 따랐다. 뭔가 뿌듯했다.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낸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뻤다. 흥에 겨운 나는, ‘나를 믿고 따르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다시금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때 그 후배들은 정말 나를 고마워했을까? 아니, 그전에 내가 했던 말들이 정말 도움이 되기는 했을까? 


처음에는 분명 그랬을 수도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 최소한의 정보를 얻고 난 후에도 내 가르침(?)을 과연 고마워했을까? 도움이 되었을까? 내 과거 경험들에 빗대어 짐작해 봤을 때, 아무래도 그랬을 것이라 확신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공부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공부 습관을 길러야 해.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눌 줄도 알아야 해.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람은 항상 넓은 시야를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해. 부자가 되려면 경제관념이 정립되어야 하고, 돈의 흐름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해. 자기 계발에 항상 투자를 해야 해. 인맥을 넓혀야 해. 젊을 때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 그 경험이 모두 너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거야... 이렇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스승을 자처하며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 가르침들은 모두가 나를 위한 것이었고, 하나같이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겪어야 했을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그로 인해 느꼈을 절망과 후회, 그리고 아쉬움. 그런 감정들을 내가 똑같이 겪지 않길 바라는, 따뜻하고도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소중한 경험들을 대가조차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베풀어주었으니, 그 마음 씀씀이가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나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그 주옥같은 가르침(?)을 매번 들었지만, 그중에 내가 받아들인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듯 흔적도 없이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한마디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는 말이다. 사실 그때의 내 속내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 귀로 흘리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그냥 짜증 나기만 했다. 


내가 만약 그 모든 가르침(?)을 진정으로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보다는 조금 더 나은 어떤 삶을. 하지만 난 지금도 그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때로 되돌아가 다시 그 가르침을 받더라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제까지 누군가의 조언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던 경우는, 언제나 내 경험과 맞아떨어졌을 때뿐이었으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열심히 대화를 듣다 보면 내가 모르는 말도 들릴 줄 알았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돌아오는 그날까지 난 오직 내가 알고 있는 단어만 들을 수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따분하기만 했던 책을 누군가는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했다며 극찬했고, 금리를 올린다는 뉴스에 난 대출이자를 걱정한 반면 누군가는 주가에 미칠 영향까지 걱정했다. 


그때 내가 남들만큼 알고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좀 더 유학생활을 알차게 보내거나, 누군가처럼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고, 오른 금리에 주가를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였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고 나를 위한 것임은 알지만, 왠지 내 마음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은 그들의 것일 뿐, 내 경험과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의 경험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결혼은 미친 짓이야. 너는 절대 하지 마.” 하고 누군가 조언했을 때, ‘너는 했으면서 왜 나는 못하게 해? 그래서? 나보고 홀아비로 늙어 죽으라고?’ 하며 속으로 딴생각을 했던 건 내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한 지금이야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격하게 공감하지만, 미혼이었던 그때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건 내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여보, 그저 예시일 뿐이니 오해 마세요. 저는 당신과 함께해서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당시 내 후배들도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내가 했던 그 모든 말들은 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나와 다른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이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공감되지 않으니 도움이 되었을 리도 없다. 나중에 나와 같은 경험을 쌓은 후 우연히 내 말을 다시금 곱씹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에는 선배가 말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했던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만약 그때 내 가르침(?)에 진정으로 고마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게 보인 선배의 관심이 좋았던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동안 누군가를 위해서 한 것이라 굳게 믿었던 내 모든 말들이 사실은 단순히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했던 일은 아니었을까? 그런 기분에 취해 상대는 원하지도 않는 가르침을 제멋대로 내리고는,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이제 기다림을 배울까 한다.


내가 내 경험과 맞아떨어졌을 때야 비로소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내 말이 의미를 갖기 시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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