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든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부정적이고 인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상하게도 남을 볼 때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단점이 먼저 보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잘잘못을 따지며 비난하거나, 쓸데없이 간섭하거나, 때로는 내가 옳다며 누군가에게 자꾸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많았다.
부하직원의 일만 해도 그랬다.
내게는 부하직원이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명에게 유독 신경이 쓰였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하는 짓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인정하고 배우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일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 다가가 도와주면 자존심 상한 듯 뚱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랬다. 평소 동료들에게 데면데면하다가 자기가 필요할 때만 친한 척하는 모습이나, 자신이 마치 대단한 권력을 가진 듯 목을 빳빳이 세우고 동료나 후배들에게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좀처럼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 부하직원에 대한 내 인식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에 대한 불만을 내게 자주 토로하고는 했으니까. 과연,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사인 나로서는 그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그렇다 치고, 내 부하직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으니까. 나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고쳐야 한다.” 하며 때때로 조언하기도 하고 반대로 달래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회사 업무는 어느 정도 치고 올라왔지만, 그가 갖고 있는 단점들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자신의 단점을 인식하고 조금씩 바꾸면 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이 이상 어떻게 더 해야 그 부하직원이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다. 설상가상으로 관계마저 나빠졌다. 시도 때도 없이 지적을 하니 관계가 좋아질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상당히 오랜 기간 애를 먹고 있던 어느 날, 아내와의 일이 내 뇌리에 떠올랐다.
아내는 때때로 우리가 연애하던 때의 일을 얘기하고는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칭찬’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아내에게 “자기는 정말 대단해. 무엇이든 잘해. 정말 훌륭해.” 하고 칭찬을 자주 했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나는 아내에 대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느낀 대로 말한 것뿐이었다. 아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이 눈에 그리도 선명히 보이는데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아내는,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 아내의 자존감은 완전 바닥이었고,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비관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런 자신에게 정말 사소한 것까지 잘한다고 칭찬을 남발하니 놀린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진정성 없어 보이는(?)’ 칭찬도 계속해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내 생각과는 달리 난 대단한 사람일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내게도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는지도 몰라.’ 그렇게 말이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로서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바닥을 치던 자존감은 어느새 높아졌고, 예전의 소심하고 비관적이었던 아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을 한번 바꿔 보기로 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다 여겨지는 사람에게도 많든 적든 단점은 분명히 있다. 문제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그 수많은 장점보다는 단 하나의 단점에 눈이 먼저 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분명 장점이 보인다. 장점이 무척이나 많아서, 혹은 장점만 눈에 보여서.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여러 가지 사정과 상황이 더해지면서, 점점 그 단 하나의 단점이 눈에 무척이나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 많은 장점들을 한순간에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말이다.
그 부하직원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모두, 그가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에 눈이 먼저 갔기 때문이 아닐까? 완벽한 사람이 없듯, 단점만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너무 단점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닐까? 그때 나는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에 집중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랬다면 그 부하직원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장점에 눈이 먼저 갔을 때, 내 곁에 있던 아내가 변했던 것처럼.
애써 사소한 장점을 찾고, 거기에 조금의 과장(?)을 보태 칭찬해 보기 시작했다.
“몸이 무척 재빠르니까, 이런 일도 금세 해내네?”
“보고서에 깊이 고심한 흔적이 보여.”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조언, 정말 잘하고 있어.”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게는 그가 갖고 있는 단점들이 눈에 밟혔지만, 애써 무시하고 장점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부하직원을 볼 때마다 단점이 눈에 밟혀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데,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찾아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콩깍지 쓰고 그를 바라보는 것.”
알다시피, 처음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좋게 보인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쉼 없이 재잘거리는 모습도 활달한 성격으로 보이고, 이것저것 간섭하는 것도 나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장점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콩깍지에 씐 덕분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일부러 콩깍지에 씐 채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그럼, 그 많은 단점들 속에서도 그가 갖고 있는 좋은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꾸만 색안경을 끼고 단점을 찾으려는 내 마음을 돌리기 위해 생각해 낸 나만의 고육지책이었다.
어떤 면에서 스스로를 애써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내 기준에만 단점으로 보일 뿐, 분명 좋은 면이 있을 거야.', '내 기준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 않아?', 다양한 기준이 있는데, 내가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어.', '어쩌면 내 기준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 수도 있어.' 그렇게 내가 갖고 있는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혹은 그의 입장에서 행동을 판단해 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장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이전보다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었고, 비로소 칭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칭찬하기를 몇 개월 계속하다 보니 놀랍게도 내 아내의 경우처럼 그에게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처음 변화가 시작된 것은 관계였다. 나를 어려워했던 그가 어느 순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부하직원과 나 사이에 있던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는, 내가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들이, 딱히 지적한 적도 없는데도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동료를 대할 때 보이던 거만한 모습도 줄어들었고, 내 도움을 받았을 때 보였던 뚱한 표정도 사라졌다. 책을 사고, 강의를 찾아 듣는 등 스스로 뭔가를 배우려는 모습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보였고, 당연히 표정도 무척 밝아졌다.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하자마자, 그렇게 쉽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에게 보였던 좋지 않은 모습들은, 어쩌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스스로의 보호막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구나, 그동안 나는 그를 존중해 주지 않았던 것이구나. 그리고, 그도 그런 나의 마음을 느꼈던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콩깍지를 쓰고 사람을 보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장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람을 존중하는, 그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