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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TV Aug 31. 2021

아… 나의 선생님

도리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①

어느 주말 오후, 아내와 함께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거의 10년 만이었다.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지만, 한번 선생님은 영원한 선생님인가 보다. 수화기 너머로 "나다, 나 누군지 알지?"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난 순식간에 중학생 시절 학생으로 되돌아가 나도 모르게 급 공손해지고 말았다.


“아아…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렸네요. (수화기에 대고 굽신굽신)” 


그런데, 죄송한 마음에 건넨 내 첫마디를 선생님은 가볍게 씹더니, 다짜고짜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너, 어디 산다고 했지?

“집은 몇 평이지? 전세냐 자가냐?”

“아직 집도 안 사고 뭐했냐?”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다면서? 아직도 병원에 계시냐?”

“돈도 못 벌 텐데, 아버지 돈은 있으시고?”

“수입은 얼마나 되지?”


갑자기 선생님은 왜 이런 것들을 내게 묻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라면 쉽사리 하지 못할 민감한 질문을 너무도 당당하게 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했다. 통화하는 내내 ‘뭐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꼭 답해야 할까?’ 하는 의문들이 순간순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런 내 속마음과는 다르게 현실의 나는 마치 누군가에게 조정당하기라도 한 듯 꼬박꼬박 선생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옆에 있던 아내는 그런 내 모습에 기겁을 했다. 당연하다. 단지 과거에 담임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것을 순진하게 대답하는 내 모습은, 평소의 냉철하던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으니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통화하는 내내 아내는, ‘왜 그런 개인적인 것까지 바보처럼 대답하고 있어? 예전에 선생님이었으면 다야? 도대체 뭘 믿고? 제발 그만둬! 그건 미친 짓이야!’ 하는 말을, 그 강렬한 눈빛에 담아 내게 보내고 있었다.


아내의 그 강렬하고도 강렬한 눈빛을 아무런 보호구도 없이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난감도 그런 난감이 없었다.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통화가 끝나는 즉시 난 아내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왔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음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지만, 그럼에도 이미 당황할 대로 당황한 난 아무런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절망 속에서 한없이 허우적대고 있을 즈음,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집에 계시면, 내가 한번 놀러 가도 되지?”


선생님의 그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선생님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바쁘게 돌아가던 내 모든 사고는 갑자기 정지했다. 왜냐고? 통화하는 내내 품고 있던 모든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려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나는 10년 전 만났던 선생님의 모습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그때 학교를 퇴임한 상태였는데, 그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예전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퇴임 후의 허탈감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사정이 있는지, 선생님은 오직 술 마시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상황이 머릿속에 겹쳐졌고, 한 가지 가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 선생님은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싶었구나. 그래서 내게 그렇게 괴상한 질문을 했던 것이구나.’


요즘 시대의 시선에서 본다면 너무도 이상한 일일 테지만, 당시 선생님은 자주 우리 집에 찾아와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는 했었다. 물론 당시에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둘 사이에 뭔가 통하는 데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결고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아버지와 선생님은 여전히 자주 만나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술친구가 필요했던 선생님은, 예전 그때의 일을 기억해 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았다. 갑자기 만나면 당연히 어색하겠지? 그러니 어찌할까? 어색하지 않으려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럴 때 아들에 대한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문제는, 공백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연락하지 않았던 그 10년의 공백을 무리하게 한 번에 매우려다 보니 당연히 질문이 이렇게 해괴망측해질 수밖에.


선생님이 내게 전화한 이유, 그리고 왜 그토록 당황스러운 질문을 했던 것인지, 그 모든 의문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이해됐다.


그런데,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채고 “유레카!”를 외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를 덮쳤다. 아, 맞다.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아내를 잊고 있었구나!


“오빠, 지금 무슨 짓이야!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그런 무례한 질문을 해도 돼? 그리고, 그런 질문이면 그냥 얼버무리면 되지, 얼마를 버는지, 부모님은 어떻게 사시는지 꼬박꼬박 답할 필요가 있어? 정말 평소의 오빠 같지가 않았어. 도대체 왜 그랬어?”


하아… 아내가 하는 말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계속되는 아내의 잔소리를 묵묵히 감내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밤새 죽도록 시달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아내를 탓할 수 없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세상이 각박하여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 심지어 가족에게도 사기를 치고 해코지를 하는 세상이 아닌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인연을 맺어 왔든, 오랫동안 인연이 끊겨 이제는 타인이 되어버린 그를 어떻게 함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않을 그런 개인적인 일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실대로 주절댔으니, 아내의 입장에서는 심히 걱정스러웠을 수밖에.


실제로 내가 살아오며 겪은 세상은 마냥 선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측은지심이 생겨 힘든 가운데 애써 친절을 베풀어도 오히려 상대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우는 허다했고, 아무리 과거에 100번의 호의를 베풀어도 딱 한번 거절하는 순간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두고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일을 쉽게 망각하는 동물이고, 자신의 이익 앞에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이 사람의 습성이니까. 오죽했으면, 옛말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는 말이 있을까? 물론, 잘난 듯이 말하고 있는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그런 세상이라 하더라도, 가끔은 바보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선생님과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미술을 담당하고 계셨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잘못된 길로 엇나가려는 학생들을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무단결석한 학생이 있으면 집에까지 찾아가 어떻게 해서 든 학교까지 끌고 왔고,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밤늦게까지 함께 남아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과한 열정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집요하고 무서운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난 비로소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처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난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야 하는 이유도 몰랐고, 딱히 바라는 목표도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어느 날, 조용히 내게 다가와 은밀한 게임을 제안했다. 성적을 두고 하는 선생님과 나만의 게임이었다. 마치 놀이를 하듯 선생님과 게임을 하는 동안 내 성적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도 생겼다. 결국, 1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내가 승리했다. 내기로 걸었던 전교 10등 안에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계기가 순수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때 선생님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배움의 즐거움을 알 수 있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봐도, 도저히 그렇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그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선생님은 내 삶의 은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받은 은혜는 그만큼 너무도 컸으니까.


만약, 내 삶에 이 정도로 선한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마음속에 항상 빚을 지고 있다면, 아주 가끔은 바보 같이 손해를 감수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거나, 잘못된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

그것이 사람의 도리일 테니까.




10년 전 내 결혼식 날.


결혼식을 마치고 하객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식당에 갔을 때, 마치 주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구석에 홀로 앉아 술을 홀짝이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변해버린 그 모습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했고,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냥 모른 채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망설임을 떨쳐 버리고 선생님에게 다가가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선생님,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제야 내가 다가온 것을 알아챈 선생님은,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나를 앞에 앉혀 두고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제자였는지를 술기운에 커질 대로 큰 목소리로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 있던 내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였다. 선생님은 마치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에 대해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여전히 발음은 불분명했지만,  표정만은 이전과 달리 생기가 돌았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선생님에게 여전히 자랑스러운 제자구나.’


술에 취한 와중에도 나를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해 주시는 선생님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 마음이 너무도 따뜻하고 감사해서 살짝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 선생님을 모른 채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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