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벌기보다 잘 쓰기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⑦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는 우리에게 쓰는 모든 것을 아꼈다.
정말 우리는 열심히도 아꼈던 것 같다. 수입이 적었던 우리가 생활하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을 아꼈고, 외식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보다 좀 더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당시 우리들은 이런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린고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 쓰는 것은 한없이 아꼈던 우리지만, 가족과 남을 위해서는 전혀 아끼지 않았다.
아내의 친척 중 한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일이 있었다. 처갓댁 식구들과 자주 왕래를 해 왔던 분이셨기 때문에 충격이 매우 컸었다. 어른들은 불운한 일이 닥쳤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도움을 주고 싶은데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 모습을 보고, 아내와 나는 지금은 우리가 써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아 온 돈 300만 원을 장인어른께 주었다. 그 친척이 웃어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는 것보다는 장인어른이 주는 것처럼 하는 편이, 받는 입장에 서나 주는 입장에서나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오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왔고, 치료를 위해 계속해서 병원을 전전하고 있었다. 오랜 병원 생활은 모두를 지치게 했고, 치료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병원생활을 접고 돌아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때, 아내는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는 부모님을 위해 화장실을 개조해 드리자고 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는 재활병원과는 달리, 집은 장애인에게 적합한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지금은 써야 할 때라면서 그렇게 말했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집에 들어온 부모님은 바뀐 화장실을 보고 너무도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큰돈을 다 써버리면 우리는 더 힘들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써버린 만큼 더 생활고에 허덕여야 하고, 힘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렇게 쓴 돈은 어떤 형태로 든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신기하게도 비어 버린 통장 잔고만큼 새로운 돈이 어디선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남을 위해 돈을 쓰면 하느님이 바로 채워주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는 아끼면서, 남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는 우리들에게 주는 신의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세월이 흐르면서 회사를 옮겼고, 우리는 점점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도 늘어났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으니, 조금은 여유를 즐겨도 되지만, 그렇게 여유가 생겼을 때에도 우리는 씀씀이를 늘리지 않았다. 아내는 한 번 늘어난 씀씀이는 결코 줄이기 어렵다며 씀씀이가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집을 사고, 살림살이도 늘려 나갈 수 있었다. 우리가 늘어난 수입에 따라 씀씀이도 같이 늘렸다면 우리 생활은 아마도 처음 그대로였을 것이다.
아내의 생각처럼, 우리가 커진 수입과는 별개로 기존의 생활을 유지했기 때문에 조금씩 저축을 늘려 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잘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자기야.
많이 벌어도 우리보다 저축을 적게 하는 집이 많다고 했지?
우리가 아끼며 생활하지만 써야 할 곳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현명하게 쓰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