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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드라마

봉천동 마을영화 분 2014년 극 다큐

by 신지승

# 시골마을에서 촬영을 하고 시간이 나면 이발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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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면 단위의 이발소는 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거나 올곧이 그 지역의 풍경을 느껴보기에는 좋다.


서울 봉천동에서 영화를 찍기로 했다. 허름한 이발소 하나 찾아 들어갔다.

이발사는 손님의자에 앉아 두 팔을 끼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듯한.

반가워하기보다는 왜 왔는가? 진짜 왔는가? 싶은 눈빛을 내게 보낸다.

"뭐 싸울 것 같아요 " 서먹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여전히 분위기가 까칠하다. 멋들어진 이발소에서 이런 대접을 받았다면 내 성격에 가만 안 있었을 텐데. 그만 참고 넘어가야 한다.

도대체 이발료는 얼마일까? 내 사는 시골 면 이발소는 12000원이기에 그 기준으로 이리저리 셈을 해본다.

1만 원 아니면 그래도 서울이니깐 15000원은 할 거야?

오른쪽 선반 위 tv에서는 북한에 세계 3위의 어마어마한 석유와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는 평생 처음 듣는 이야기를 패널들이 주고받고 있다..

-얼맙미까?

-6000원 순간 믿기지 않았다.

-너무 싸네요.. 이발사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웃는다.


#

옥천시내, 가장 허름한 이발소를 찾는다.
허름한 곳이 사람 냄새가 난다는 오랜 믿음에서 이곳저곳을 찾는다.
근데 이름이 00 이발소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들어가니 텅 비었다.
방안 쪽에서 고스톱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반쯤 열린 문으로 한 사람이 일어나지도 않고 바라본다.
- 이발합니까?

패를 보다가 마지못해 일어난다.
역시 이름이 좀 이상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되돌아 다른 허름한 이발소를 찾아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화투생각에 빠진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이발소 오래되었죠?
-내가 초등학교 마치고 시작했었죠
-초등학교 마치고 이발사를 했다고요?
믿기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이발소에서 잔심부름하며
졸업하자 마자 일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중간에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예식장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옥천 시내에 예식장이 3개였는데 30분마다 한 팀씩 받았단다.
돈을 원 없이 벌 것 같았던 그 사업이..
근데 법적으론 50분 만에 한 팀을 받아야 하는데 그만 돈에 눈이 멀어..

그런게 3개 예식장이 합작하여 관례적으로 진행하던 것이었는데 그만 재수 없게 자기만 경찰에 걸렸단다.
하도 억울해서 다른 두 예식장도 30분 만에 하던 걸 알바사서 신고했는데 , 두 예식장은 비수기에 영업정지를 내리는 바람에.. 결국 자기만 예식장 사업을 접었다
할 게 없어 다시 가위를 잡았다.
돈 잘 벌 때 아이들 공부시켜 후회될 건 없다.
난 그냥 그 자체로 너무나 멋지고 이름답다는 느낌이 몰려오는 건 뭣 때문일까?

옥천에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의 정지용생가가 있다.

주유소에도 마트에도 현수막으로 시구가 흩날린다.

"비둘기는 무엇이 궁거워 구구 우느뇨,

오동나무 꽃이야 못 견디게 향기롭다."

이 모든 게 한 사람의 시인 탓이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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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미리로 깎아주세요!"

길어버린 머리를 다시 12미리로 되돌려야 한다.

일을 하기에는 지금의 머리는 너무 길다.

모든 몸의 불순물이 응집되고 몸의 화기를 가두어봐야 도움 될 것 없다 싶어 , 좀 길어볼까 하며 석 달을 버틴 시간을 포기했다.

들어갈 때부터 12미리.. 12미리 와리깡이 없으니 대게 9미리와 3미리를 더해야 하는데 감시를 잘해야 한다 간혹 정신이 없어 9미리만으로 깎아버리는 사람이 있기도 했으니깐..

긴 장발의 머리를 12미리로 바꿔달라는 소리에 "군대 갑니까?" 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나이가 몇인데 군대를 가요? 그냥 더워서 "

그런데 아직 와리깡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길어 대강 깎고 나서 와리깡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가위소리만 요란하다.

아! 이 사람은 가위기술자다. 그래도 귀밑이나 뒷 머리에는 불가피하게 와리깡을 댈 수밖에 없을 텐데도

마지막까지 와리깡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도 몇 배로 걸리고 그 수고스러움을 마다 하지 않는 이는 누구인가?

거울로 다시 이발사의 얼굴을 확인한다.

부산 대학교 앞 이발소 다

이제는 화려한 대학가 앞의 상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학생들은 다들 미장원으로 가버려 고객을 잃어버린 이발소 하나가 부산대학교 네거리 지하에 있었다.

지금도 잘 있는지 모르겠다.


#

시골의 이발관은 사랑방을 넘어 나에겐 극장 같다..


내 5살에 천자문을 시작해서... 7살에 천자문을 뗐다라는 소리에 얼굴을 돌려 이발사의 얼굴을 보았다.


거울로 보는 것으론 뭔가 부족한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아들 딸이 5살이라서 그래서였는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5살에 천자문을 시작한 이의 인생이... 어떻게 살아왔을까?


올해 81살 34년생


-고향이 어디세요?


-평안남도


-언제 내려오셨어요?


-일사후퇴 때


-왜요? 혹 지주 나 기독교 집안?


-군대 안 보내려고 부모님이 나만 내려보냈어.. 17살 때


이리저리 다니며 엄청 고생하다가 양평에 머물러 34년을 살았어


해마다 이산가족 만남을 신청했지만 안 되네


-고향.. 가고 싶지요?


-이젠 여기가 새 고향인데 뭐


돈도 부모도 형제도 없이 고아의 운명이 되어 새로 가족을 일군 그에게


이 세상과 그 시간이 얼마나 가혹했을지


-이산가족 상봉 때 외사촌 형을 만났어. 그 외사촌 형이 가평에 살다가 새결혼을 했는데


그전에 북한에서 아들 하나 있었는데 젤 먼저 자기 아들 소식 들은 게 없냐고 묻더라고...


내참 부모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고 아들 잘 있더냐고 그런 소식 못 들었냐고..


인생이 그런가 봐


외사촌 형이랑 새로 결혼한 와이프는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라 북한에서 결혼 한지도 모른데..


그리고 난 뒤 아들 못 보고 그렇게 몇 년 전에 죽었어....


7살에 천자문을 뗀 영특한 한 아이는 양평의 어느 시골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


뜻만 가지고 산 추상의 역사보다 살아있는 이들의 삶들이 더 아쉬운.. 3월 1일.


-언제 저랑 같이 영화나 찍어시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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