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나리의 미소 2008 70분
2005년 겨울, 논 위에 종이박스로 만든 거대한 극장을 세웠습니다. 가로 15미터, 높이 5미터나 되는 그 극장은 수탉의 형상을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이 극장을 만들게 된 계기에는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수탉 한 마리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시간, 그리고 서울 암사시장에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던 한 할머니와의 만남은 단순한 기억 그 이상이었습니다.
수탉과의 동행은 나에게 관계의 따뜻함을 가르쳐주었고,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 할머니와의 만남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품위와 나눔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에게 인간에 대한 새로운 존경과 공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 두 경험은 종이극장의 탄생 배경이자, 내가 예술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스스로 확인하게 해 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해 겨울, 양평 용문산의 외딴 산속에서 강원도와 전라도로 영화를 찍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함께 있던 예닐곱 마리의 닭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 수탉 한 마리만 남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수탉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나는 5톤 탑차 트럭의 지붕에 엉성하게 닭장을 만들어 수탉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강원도 태백에서 충청도 공주, 전라도 화순까지 이어진 긴 여정이었습니다. 마치 세상을 떠도는 순례처럼, 수탉 꼬꼬와의 동행은 나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달래주었고, 동시에 나와 사람들을 잇는 다리처럼. 꼬꼬라 이름 붙인 수탉은 어디를 가든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마을사람과도 자연스레 어울릴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쩌면 예술가로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역할을 수탉 꼬꼬가 대신해준 셈이었습니다.
겨울은 농촌에서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새로운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골의 겨울은 적막합니다. 논밭은 동면에 들어가고, 사람들도 따뜻한 방 안에 머무르며 긴 겨울을 견딥니다. 그러나 가난은 겨울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하루를 쉬면 생계가 막막한 도시 노인들. 특히 암사시장에서 폐지를 주우며 하루를 이어가던 한 할머니의 모습은 내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매일 새벽까지 리어카에 종이박스를 가득 실어 고물상에 팔았지만, 번 돈은 고작 몇 천 원에 불과했습니다. 하루는 우리 쌍둥이 남매에게 그 돈을 건네며 "주는 건 받아야 돼"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종이극장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폐지를 모아 극장을 짓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논 위에 세운 거대한 수탉 모양의 종이극장의 관객석은 버려진 사과박스와 플라스틱 박스로 만들었습니다. 극장 안에서 마을 사람들은 방방곡곡에서 만든 영화들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 풍경은 마치 겨울 논 위에 펼쳐진 작은 시네마 천국 같았습니다. 하얀 수탉 모양의 극장은 겨울 논의 적막함은 마치 마법처럼 따뜻함과 생기로 가득 찬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울 논 위의 극장은 묘한 추억을 남겼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에게서 폐지를 사 모아 극장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커져버린 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종이박스 공장에서 박스를 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얀 종이박스로 완성된 종이극장은 폐지를 줍던 할머니의 삶과 한 마리의 수탉의 추억 그리고 그 추억을 기억하려는 의지, 누군가의 상상력과 농촌의 할머니와 아이들의 손길이 더해진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커다란 닭의 몸속에 들어와 영화를 보며 신기함과 즐거움을 만끽했고, 어른들은 잠시나마 추위를 잊고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온기를 느꼈을 겁니다. 닭모양으로 만든 종이극장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상력의 바통을 건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검색하다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기억에서 머물지 않았던 정기석소장의 글입니다
" 지인 중에 유목민처럼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마을영화만 찍고 사는 '마을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삶과 일과 놀이가 하나 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도구이자 무기로 '영화예술'을 하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 '먹고사는 공포나 불안감'에 방해받지 않고 어떻게 예술작업에 집중할 수 있을지 볼 때마다 걱정이 든다. 그때마다 저렇게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예술가는 정부나 사회 같은 공공(Pubic)에서 마땅히 보상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난겨울 양평 용문면의 텅 빈 논바닥에 가설한 '종이박스 극장'에 마주 앉아 그를 쳐다보며 나는 또 하염없이 걱정했다. 부디 먹고사는 일의 불편함과 성가심으로부터 그를 해방시켜 주도록, 부디 용기 있는 지혜를 그에게 주도록, 그전에 국가와 정부가 그의 소중한 마을영화를 지켜주도록.
거듭 기도하고 기원한다. 마을영화를 하는 신지승 감독처럼 '진짜 문화예술인'들이 자본의 방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유치한 블랙리스트에도 오르지 않고, 사람 사는 마을의 모습이나 세상의 풍경 같은 장엄하고 거룩한 미장센(mise-en-scene)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4FNRwLjOh8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