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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여기서 담배를 피웠다(1)

촬영예정 도시골목서사극 +주민참여극

by 신지승


부산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이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강원도 인제에서 지내고 돌아온 날

2층 현관 앞 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통 하나,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 담긴 길쭉한 통조림 통과 그 위에 뚜껑으로 덮혀져 있던 빈 참치캔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부산을 떠날 때 분명히 청소를 하고 떠났을 것 같았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다음날 아침 어젯밤의 통조림 통 위에 놓여 있던 참치캔은 이층 난간 위에 놓여 있었고 담배꽁초가 이곳저곳 흩트려져 있었다

밤사이 바람이 세게 불긴 했었다. 아무리 바람이 불었다 해도 얕은 참치캔이 좁은 난간 위에 기막히게 놓여 있었다니, 바람의 곡예치고는 절묘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전봇대에 둥지를 틀고 있는 까마귀 떼들의 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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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까마귀 한 마리가 상가 앞의 과자봉지나 가판의 떡을 잽싸게 낚아채가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의 부리는 먹이를 쉽게 놓치지 않았으며 도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각 좋은 까마귀가 굳이 닫혀 있는 담배잿통을 헤집을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바닥에 흩뜨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담던 나의 눈에 이상한 게 잡혔다

내가 피운 담배가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다른 담배를 사거나 피워 본 적이 없다

내가 피운 담배를 모를 일도 다른 담배를 피울 리 없는 나로선 누군가가 잠겨졌을 1층 대문으로 들어와 2층 현관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 더 이상 부정 할 수 없는 증거를 확인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매서운 나의 관찰력은 사실 직업적으로도 갈고 닦여진 것이다. 난 2층 난간 맞은편에 있는 보일러 통 한 면에 있는 보일러 등유 업체 스티커를 발견했다.

분명히 스티커가 바뀌어져 있었다.

보일러 등유를 마지막으로 넣은 업체가 아니라 분명 다른 업체의 스티커였다.

최근 부산을 떠나기 전 보일러 등유를 넣으면서 다른 가게 스티커가 붙어있는 보일러 통의 스티커를 떼고 자기 스티커를 꺼내 붙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서로 웃고 짧은 대화를 나눴기에 쉽게 착각이나 혼동을 할 수는 없었다. 집을 떠나기 전 일주일도 안되기에 기억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제 모두가 도시가스를 쓰지만 오래된 구옥들은 도로에서 골목으로 가스관을 연결하기에는 어렵다. 가스관 설비경비가 혼자 부담하기는 고액이라 어울려 부담해야 하는데 겨우 3 가구만 남은 좁은 골목의 구옥들은 보일러로 난방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날 부산으로 돌아온 날 밤 대문을 잠그지 않아 열린 대문으로 들어와 스티커를 붙이고 남의 집에서 담배를 피웠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남의 집에서 담배잿통의 뚜껑을 열어 난간에 놓고 담배를 피웠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밤늦게 왔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고 있기에 혹시 싶어 그날은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누군가가 담배를 피웠다면 우리 모두가 자고 있을 깊은 밤이었을 것이다. 스티커를 붙인 날과 담배를 피운 날이 다를 수 있다. 장시간 집이 비었다는 것을 알고서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고 그 피운 담배꽁초는 예의 바르게도 꽁초통에 차곡차곡 넣었다는 것이다. 혹시 그는 이 공간을 도시 속의 해방구로 여기고 울창한 아파트 숲 속의 휴식처로 즐겨왔던 건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온통 사방이 아파트들과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그런 공간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없어진 물건도 없었고 가져갈 귀중품도 없는 집이다. 집 안으로 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스스로 불필요한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히게 할 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스티커를 붙인 사람과 담배를 피운 사람이 다를 수도 있다 . 뻔히 스티커로 인해 자신에게 향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한다는 건 화를 스스로 자초하는 우둔한 짓이다. 일단 CCTV를 달아야 한다. 일단 급한 대로 아래층의 CCTV를 가지고 와 바닥에 은밀하게 숨겼다. 그리고 이충 난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핸드폰으로 지켜보다 잠이 들은 지 일주일 만이었다. 그런데 CCTV주인공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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