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얼굴을 만나다(6)
"휴전선에서 10KM에 있는 이 끄트머리마을에 외국감독들이 찾아왔어요"
여기서 이렇게 버텨 살아온 90년 인생을 외국감독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영어는 못하지만 기죽지 않고 구글통역기로 외국감독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한 편의 연속 드라마처럼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마을 경로당에서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핸드폰으로 수시로 사진을 찍으셨다. 나이가 당시 89살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활기찼다. 그런데 남자들이 회관에 들어오면 기가 죽어 구석에 쪼그려 아무 말도 안 하신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내가 경로당으로 들어오자 손님 대접 한다고 할머니들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한다.
다들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이라 나이가 가장 많지만 그분이 대표로 일어났다.
물을 끓이고 봉지 커피를 풀어 그 종이컵을 들고 나를 향해 오는 박부녀 할머니
그런데 할아버지는 대뜸 "쟁반에 받치고 와야지 이게 뭐냐"라고 역정을 낸다. 나를 극진한 손님으로 대한다는 과장된 행동이기도 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 안절부절못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모욕적일 수도 있는 그 상황 앞에도 싱글벙글. 다시 쟁반을 가지려 오려는 걸 내가 일어나 냅다 커피종이를 잡아챘다. 그것이 첫 대면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5살은 적었다.
아 시골 마을의 질서가 나이순이 아니라는 걸 때 알게 한 사건이었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집에서 자랐다
그녀가 13살 때 먹고 살길 막막한 할머니가 재혼한 어머니 곁으로 보낸 이유는 먹여 살리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재혼한 어머니집에 가서 새아버지에게 살갑게 대하는 법을 그녀의 할머니는 은밀하게 계산하면서 키웠을 것이라고 도 이야기했다
"그때가 해방되는 해였으니깐..."
그래서 그랬을까 지금까지 항상 억지로 흥에 겹도록 자신을 유지시킨다
새아버지집에서 어머니랑 새아버지랑 동생들이랑 어울려 살았던 적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는데
겨우 3년 만에 그녀는 마을 사는 청년이랑 결혼을 해 가족을 떠났다.
나는 그녀의 삶에 흥미와 깨달음을 많이 얻는 편이다
"책과 비디오는 나에게 추상과 거짓을 가르쳤구나 직접 가서 부대껴보니 지식이 한낱 장식에 불과하고 진짜 배워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었구나 "
"내가 본 역사, 영화 심지어 책까지 그들의 삶의 구체성을 알려주지도 다가가지도 못했구나 어찌 이런 깊은 환타지속에 살았던가? "
심지어 정치, 종교, 문명과 문화 예술에 대한 적개심까지 치밀어 올랐다.
"참다운 인간종이란 이런 류의 사람들이었구나.. "
그 뒤 나는 도시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았고 도시 물먹은 지식나부랭이들을 색안경 끼고 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 종족이 될 가능성은 없는, 마냥 그 주위를 어설렁거리는 또렷한 편견을 가진 새로운 종족일 뿐이었다.
그녀는 79년 8개 대대 군인들을 위한 상가들을 만들기 위해 무료로 땅을 내준다는 말에 옆마을에서 이 새마을로 찾아왔다.
80년대 '동부전선 라스베이거스'로 불린 이 마을과 천도리에는 다방 16개, 나이트클럽 1개,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으로 가득했다
마을의 앞줄은 식당과 유흥가 뒷줄은 홀로 밀주와 돼지 키우기로 삶을 이어가는 마을 내에서 계급이 나누어지도 했다.
어느 겨울 마을대피소에서 그동안 마을사람들과 찍은 영화를 앞세워 마을영화축제를 하기로 했다.
마을 노인분들이 그동안 노래프로그램에서 배운 노래를 긴 연습 없이 같이 하고 우리가 차려 놓은 음식을 같이 먹고 영화를 보는 그런 행사였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기념 티 한 장 정도였다. 당연히 외부 지원이 없는 개인 사비를 내어 만들어지는 행사였다.
그런데 화까지 내며 대피소 마을영화제에 경로당 차원에서 참여를 하지 않겠단다.
그리고 앞으로 경로당에 밥 먹으러 오지 말란다. 졸지에 잘해 보려는 의도가 무슨 오해에서 이런 사태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회장과 언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거들고 나선다.
"먹고살려고 들어 온 사람에 너무 한다" 며 우리는 어떤 보상 없이라도 참여하겠단다
노인회장은 예상치 못한 반란과 항명 앞에 더 화를 내며 끝까지 행사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뒤에 안 이야기이지만 노인회장은 마을영화제가 여기저기서 돈깨나 받은 줄 알았다. 지원사업이 여기저기 많으니 그런 지원을 받아 제 몫은 챙기고 마을 사람들을 들러리 끼어 넣은 그런 행사로 판단했던 것이다.
나는 그 배경을 충분히 문서와 더불어 이야기했다고 했지만 결과는 이후 나에게 힘든 마을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ps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으셨다
박부녀의 인생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yTitu_tQI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