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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꿈엔들 잊힐리요

마을돌탑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by 신지승

더위가 한창이던 양평의 어느 마을이었다. 마을의 골목길, 마당처럼 개방된 도로 위.

주변에 낮은 담장과 기와지붕이 있는 집들이 보이고, 뒤편으로 옥수수밭과 나지막한 산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카메라옆으로 , 옅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들이 보인다. 긴장이 없는 웃음, 그러나 그 안에 묘한 집중이 스며 있다.
파란색 방수 천막이 길가에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본격적인 촬영 전 미리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을 하고 있다. 분홍색 바구니 두 개.

한 남자는 손에 붐 마이크를 쥐고 아주머니는 슬레이트를 쥐고 대사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웃고 있다.

멀리 촬영이라고 쓰인 5톤 트럭 뒤에 팔에 아이를 안고선 여자,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 입술의 모양만으로도 흥겹다.
검은 케이블이 뱀처럼 바닥을 기어가 초록색 파라솔 앞까지 뻗어 있다.

어느 방향에서든 이야기의 조각들이 흩어질 것만 같다.
사람들의 여유로운 몸짓, 집중이 어려 있는 눈빛.
무엇인가 진행되고 있고 , 그 낮은 움직임의 파장을 바라보는 낮의 빛깔이 이 마을의 골목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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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은 각기 다를 것이다

정답다,이상하다. 촬영의 규모가 작다, 크다로 가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을이 빚어낸 성찰과 축제의 영화

아파트는 크고 단독 주택은 작은가? 아파트의 자기 집은 작고 아파트의 단지는 크다.

상업 영화 촬영 현장은 거대하다. 수십 명의 스태프가 계급처럼 나뉜 역할을 수행하고, 누구도 그 경계를 넘지 않는다. 배우는 주연과 조연으로 나뉘고, 이름 없는 엑스트라는 화면 밖에서 숨죽인다. 모든 질서는 감독에게로 모이며, 창작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촬영이 시작되면 마을의 소리는 철저히 제거된다. 개 짖는 소리, 밥 짓는 냄새, 아이들의 웃음은 'NG'의 원인이 되고, 질서요원이 통제선을 치며 주변은 침묵으로 봉인된다. 현실은 배제되고, 영화는 현실을 대신한다. 그곳에서 삶은 '연출된 환상'으로 정제된다.

하지만 방수천막 위의 마을은 다르다. 이곳엔 통제선도, 질서요원도 없다. 대신 서로의 눈빛이 약속이다. 웃음이 터져야 영화는 힘을 얻는다. 우리는 삶의 소리를 지우지 않고 웬만하면 품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리얼리즘이다.

오디션도, 캐스팅도, 대본도 없는 '돌탑 영화'

돌탑 영화에는 거대한 세트는 없지만, 마을의 풍경이 세트가 된다. 즉흥은 준비 위에서 춤춘다. 우리는 대사를 만들고, 리허설을 하고, 카메라 각도를 정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마을 영화에는 오디션도, 캐스팅도, 정해진 대본도 없다. 방수천을 치고 난 뒤 대사를 만들고 상황을 만든다. 나는 그다음 장면과 그 이전의 장면을 염두에 두면서 방수천 장면을 준비한다.

돌탑 영화는 참가하는 개인에게서 이야기가 나온다. 마이크를 잡은 농부가 배우가 되고, 채소를 다듬던 아주머니도 배우가 되고 창작자가 된다.


억지로 꾸며내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는 대신, 이 영화는 얼굴, 호흡, 목소리, 웃음처럼 삶의 진솔한 모습을 담는다

배우는 한 명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배우다. 이야기는 한 사람에서 또 다른 사람으로 이어진다. 누구도 스스로를 '엑스트라'라 부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역할이다. 잘하는 사람이나 끼가 강한 사람이 극을 주도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다.

영화는 성찰이며 축제다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생활하는 사람이자 지금 함께 하는 창작자를 위한 영화이다.

그리고 미래 세대들에게 남겨질 영화다. 지금 글로벌 감성에 젖어버린 이들은 그 영화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의 가치는 크고 작음으로 나눌 수 없듯이, 대박, 흥행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서로 담아 갈 것인가가 제일 중요한 영화의 태초의 발원을 간직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가 그리워... 꿈엔들 잊지 못한다.

한국의 심성을 닮은 , 글로벌 자본을 버텨낼, 미래의 로컬리티를 만들어 낼 작은 공동체의 활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장르가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무력해져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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