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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타지마할과 피라미드

by 신지승

친애하는 친구

지난 이야기 이후, 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시도해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나는 당신 나라의 마을에서 , 그리고 당신과 함께 한국의 마을에서 두마을 이야기의 마을극영화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 방식은 현재 OTT의 세계관객 중심 상상력이나, 스타 배우 중심 드라마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지닌 감각, 지역성, 서정성을 다시 환기하는 작업입니다.
자신을 ‘관객’으로만 여기는 이 시대에, AI 대중창작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창작자의 자리를 다시 묻고 제안해보는 실험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누가, 어떻게 그들 속에 깊이 잠든 이야기와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가 함께 시도할 진정한 창작이며,

그 목적은 자본 중심의 획일화된 관객 만들기에서 벗어나,
삶과 지역의 깊이에 닿는 창작 감각을 되살리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작업을 일회성의 예술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만들어갈 글로벌 문화 교류의 새로운 흐름,
전세계 1만개의 마을과 한국의 마을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무하고 무력하고 우울한, 가난하고 낮은 이들의 탑을 쌓아가는 과정일 겁니다 .

시간이 자나면 지날수록 지금 흥행한 대박상업영화 한편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 질 것이고 지금 아무도 관심이 없는 마을주민들과 만든 돌탑영화는 가장 질기고 오래 남을 영화라는 것에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1만개 .황당하고 불가능한 목표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 저는 20년동안 100개의 마을을 다녔을 뿐입니다 .

하지만 작은 불이 큰 불이 되는겁니다. 글로벌 OTT들에게도 제안을 하였습니다 . 하지만 그곳에만 기대지 않겠습니다 .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작업에 참여한다면 기꺼이 받아들릴 겁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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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와 연결된 50여개국 영화감독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 공동 기획안작성을 위하여 사전공동작업과 공동선언을 제안하였다. 이제는 거대한 글로벌 차원으로 대응해야만 로컬리티의 위기에 대해 경각하고 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이다 .

마을돌탑영화로 피라미드보다 타지마할 보다 더 크고 의미있는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타지마할과 피라미드의 디지털 돌탑을 만들어 나가보려 한다 .

이름 없는 이들의 삶과 존재를 위한 ‘기념비적 공간’, 1만개의 마을,만개영화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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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디지털 돌탑: 권력자들의 거대한 착각에 대한 성찰


TV에서 세계적인 관광지를 소개하며 위대한 건축물이라고 감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집트 사막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를 바라볼 때마다 허무한 웃음이 나옵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수만 명의 노예와 당대 최고 기술이 동원된 거대한 무덤인 피라미드는 인류의 경이로운 건축 기술과 뜨거운 예술적 열망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뒤에 숨겨진 폭정과 착취의 역사를 지울 수 없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거라 믿었겠지만, 정작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또 하나는 그 거대함 뒤에 가려진 강제와 희생입니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그 피라미드를 짓는 노동자였다면, 우리는 그 거대함에 마냥 감탄할 수 있을까요?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22년간 2만 명의 장인이 참여하여 지은 아름다운 흰색 대리석 묘당인 타지마할은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상징으로 추앙받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왜 사랑받지 못하고 역사에서 지워졌을까요? 만약 나의 아들이 그 타지마할의 건축을 맡아야 했다면, 그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고통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아직도 대중들의 환호가 메아리칩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검투사 시합과 다양한 대중 오락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은 황제들이 '빵과 서커스'로 민중을 달래며 권력을 유지했던 장소입니다. 5만 명을 수용하던 그 웅장한 경기장은 로마 제국의 힘을 과시했지만, 결국 제국은 무너졌고, 이제 그곳에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모른 채 셀카를 찍는 관광객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나의 친구가 콜로세움의 검투사였다면, 우리는 그 화려한 경기를 보며 마냥 즐거워할 수 있었을까요?


강제와 착취의 시대는 끝났는가

결국 이 거대한 유적들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나는 강한 권력을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거대한 건축물도 남길 수 있다"는 것이죠.


고령화와 지구촌 부의 양극화 같은 글로벌 현안들이 심화되는 21세기에, 권력자 한 사람의 의지로 수만 명을 동원할 수 있던 시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대중들 역시 완벽한 검증자는 아닙니다. 때로는 자극적이거나 편향된 정보에 쉽게 현혹되기도 하며, 깊이 없는 유행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디지털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었지만, 동시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이 가려지고, 피로감을 유발하는 '관심 경제'의 덫에 빠지기 쉬운 새로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강제노동으로 돌을 나르던 시대는 자발적 참여로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대로 바뀌었고, 무력으로 사람을 모으던 시대는 공감으로 마음을 모으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기념비


혹시 지금도 어딘가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세워 자신을 기념하려는 권력자와 자본가는 사라졌을까? 진정한 불멸은 물리적 크기나 물질적 화려함에 있지 않다고 자족하는 것도 만족 스럽지 않습니다 .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남는 것은 권력이나 돈이 아닙니다. 따뜻한 손길, 진심 어린 위로, 함께 나눈 웃음, 서로를 향한 배려.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영원한 기념비가 됩니다.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기념비는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연결과 공감에서 탄생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개인들입니다. 과거 어떤 황제도, 어떤 정복자도 꿈꾸지 못했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겁니다. 우리는 이전 어떤 황제보다도 더 오래 살고, 더 풍부한 문화를 누립니다. 황제들이 평균 40~50년을 살 때, 우리는 80년을 삽니다. 황제들이 궁정 악사 몇 명의 연주나 검투사 시합을 보며 즐거워할 때, 우리는 전 세계 모든 장르의 음악,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게임 등 훨씬 더 깊이 있고 흥미로운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황제들이 궁정 화가 몇 명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루브르에서 메트로폴리탄까지 모든 미술관을 가상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황제들이 궁중 요리사의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그 황제들보다 낮다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왜 우리는 스스로를 황제보다 못하다고 여길까: 플랫폼의 그림자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강력한 능력을 가진 우리가 스스로를 무력하다고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황제들이 가져본 적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황제들이 꿈꿔본 적 없는 지식에 접근하면서도, 황제들이 경험해본 적 없는 문화를 향유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부담과 지구촌 부의 양극화로 인한 소외감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력감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여기에 더해, 거대 플랫폼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우리 안에서 우리는 '좋아요' 개수를 세며 만족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만 소비하며, 정해진 템플릿 안에서만 창작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갇히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머물며, 유튜브 추천 영상에 중독되어... 우리는 스스로를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로, '이용자'로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황제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황제보다 작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최대의 비극이 아닐까요?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무력감이 아니라,거대 플랫폼의 구조적 지배와 알고리즘이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은밀하게 통제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착취'일 수 있습니다.


이제 황제의 자리에서 생각해야 할 때: 새로운 영토의 개척

우리에게는 알렉산더의 말보다 빠른 광속 인터넷이 있고, 나폴레옹의 대포보다 강력한 디지털 미디어가 있으며, 칭기즈칸의 기마대보다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보다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대 플랫폼이 정해준 틀 안에서 관심을 구걸하듯 끌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야 합니다. 황제들이 신하들에게 명령했듯이, 우리도 기술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황제들이 영토를 확장했듯이, 우리도 디지털 영역을 확장해야 합니다. 황제들이 후세에 유산을 남겼듯이, 우리도 미래에 의미 있는 것을 남겨야 합니다.


플랫폼의 소비자에서 영토의 개척자로: 돌탑영화의 비전


우리에게는 더 큰 야망이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건축가가 될 수 있고, 모든 이야기가 건축 재료가 될 수 있는 우리만의 영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거대 플랫폼이 제공하는 임대 아파트에서 벗어나, 우리가 직접 설계하고 건축하는 디지털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고령화 시대에 소외될 수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연결의 장을 제공하고, 부의 양극화 속에서 잊히기 쉬운 평범한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진짜 기념비, 돌탑영화: 만 개의 영화 프로젝트


돌탑영화는 바로 이런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파라오가 노예들을 부려 피라미드를 쌓았다면, 우리는 시민들과 함께 디지털 돌탑을 쌓아 올립니다. 황제가 장인들을 착취해 무덤을 지었다면, 우리는 창작자들과 협력해서 살아 있는 기억의 집을 짓습니다. 권력자들이 강제로 사람들을 모아 콜로세움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자발적 참여로 모든 사람이 주인공인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씩 돌을 얹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그런 방식으로,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거대한 집단 기억의 드라마탑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유산: 만 개의 영화 프로젝트


천 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21세기를 돌아볼 때, 그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요? 또 다른 피라미드? 또 다른 콜로세움?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건네던 작은 손짓들, 일상 속에서 피어나던 소소한 감동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버텨낸 연대의 기억들을 보게 될까요?


돌탑영화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권력이 아닌 사랑으로, 강제가 아닌 자발로, 착취가 아닌 협력으로 진정한 21세기의 기념비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 개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20년간 100개의 마을영화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전 세계 100개국에서 100명 감독들만 호응하고 달려든다면, 1만 개의 마을영화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고대 로마의 콜롯세움의 대중오락을 20세기 파시즘이나 전쟁영웅 숭배의 문화로 그리고 OTT의 거대 자본 드라마로 이어지는 글로벌 문화에서 작고 무력한 개인들과 마을의 신화를 세계의 감독들과 함께 들어 올리는 로컬영화축제라는 세계적 영화의기념비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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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영화--창작의 철학과 가치를 담은 용어 / 마을영화 -창작의 주체단위와 배경/만개영화-글로벌 영화프로젝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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