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 다큐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오늘도 하루 종일 EBS만 틀어 놓고 있고 싶을 정도다.
세상에 이런 문턱 낮은 영화제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문턱을 낮추어도 높혀도 찾아 볼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 TV만 틀어도 되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 영화제 자체가 다양한 삶들에게는 다양한 의미로 다가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행사 일 수도 있다.특히 OTT 상황에서는 봐야 될 영화도 너무 많다 . 영화제의 영화들은 이전보다 더 외로울 수도 있다 .
그들의 일상과 삶 속으로 아주 가까이 오래동안 깊이 들어 갈 수 있다면 .조금 모자람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의미가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2012년 나는 EIDF 제작 지원 심사 현장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작품은 종전까지 다큐멘터리의 대상이었던 평범한 다수를 을 극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데 있다. 기존 다큐멘터리는 우울과 고통 상처만 직시하려 한다. 기존의 다큐는 이슈와 화두를 끄집어낼 수 있을 소수만을 줄기차게 따라다닌다. 난 그들의 웃음, 예술적 잠재력, 관계, 집단속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와 개인을 두루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는 이들의 숨겨진 꿈도. 그래서 극영화이면서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영화에서는 그 경계는 없다.
"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EIDF 사전제작지원 프로젝트' 본선 진출작을 결정했다.
장편 부문 진출작은 '바람처럼, 예지와 나'(감독 이승준), '영등포 역전을 돌아서면…그 동네, 안동네'(감독 이창준), '영화와 마을'(감독 신지승), '오백 년의 약속'(감독 안재민), '춘희막이'(감독 박혁지) 등 5편이다.
1차 심사를 통과한 5명. 그중 3명에게 제작지원금이 주어진다
올해 EIDF 사전제작지원 프로젝트 총 지원금액은 1억 1000만 원으로 장편다큐멘터리 부문 EIDF-KCA(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펀드 선정작 1편 7000만 원, EIDF-BCPF(방송콘텐츠진흥재단) 펀드 선정작 1편 3000만 원, 그리고 단편부문 EIDF-BCPF 펀드 선정작 2편 각 500만 원이다.
최종 지원작은 제9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2012) 기간 중 공개 피칭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어떤 스토리텔링인지 예측은 해야?
나: 이 질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작업은 마을 사람들의 사람들의 개성과 표현 범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오랜 시간 마을에 머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를 예측하지 말아야 한다 (기획서는 읽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 부분을 가장 우선적이고 차별적으로 제시한 기획서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분명 내 기획서를 읽어보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가 이 기획의 핵심이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그 사람을 알아가면서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예측하는 건 나의 창작에서 가장 큰 잘못이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왜 내가 그 마을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 할까? 나의 작업은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구상하기보다는 평등한 창작자로서의 만남이 우선이다 .
(이건 현대 다큐멘터리의 관찰주의를 넘어서는 태도이다. 관찰조차 대상화와 거리를 전제한다 )
심사위원-세 개 마을 다해야 해요?
나- (참 애매한 질문이다. 왜 세 개의 마을을 해야 하는지도 기획안에 분명히 있었다. ) 그건 네 선택이다.
당신들이 기획안을 선정했다면 그것의 맥락을 왜 이해하지 못해서는 안된다.
심사위원: 마을 주민에게 연기를 잘 가르쳐야 되겠죠?
나: 그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그들의 개성과 맛이 상실된다
나는 연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그 자체로 캐릭터이며 연기자로서의 표현을 안고 가는 것이다
심사위원: 작품이 안될 수도 있지 않아요?
(작품이란게 뭔가 ? 그것은 잘 난 사람, 성공 한 사람 ,대중의 관심와 호기심을 견인하고 유지해 나갈 ,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 어떤 사회적 화두나 가치의 발견 뭐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럼 그 반대도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이면 어떤가 ? 따지고 보면 그것은 종이 한장 차이도 안된다.그리고 그것을 미리 예단하겠단 것인가? 나에게 보증이라도 해라는 협박인가 ?)
나: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의 문제이다.(이건 완전 내 작업과 기획안에 대한 무지를 넘어 그야말로 존재부정이다. 작품이란 기준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나는 애써 겸손을 유지해야 했다)
... 안 나올 수도 있지요. 뭐 꼭 매번 로또 대박을 맞아야 하나요?
아 토론도 재미도 없고 수준도 형편 없다.
그래도 수년을 해온 작업인데 그야말로 초보적인 수준을 왔다 갔다 한다.
주로 방송만 해오던 이들이 가진 관습적 사고가 그 방송 외의 개념에 대해 수용할 능력이 없음을 파악하면서 결국 나는 그들이 왜 방송이 아니라 , 게임의 법칙을 깨는 영화라는 장르를 붙잡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심사 전 이 모든 것을 이미 예견이라도 한 듯이 관객석 맨 뒤에 내 캠코드를 세팅해 놓았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세워준 고마운 이들을 위해 싸움 본능을 애써 삼켰다.
그리고 결국 나는 심사를 거부한다는 말을 단상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내려 왔다.
하지만
카메라 없다고 생각하라는 방송 다큐멘터리의 슬로건보다 카메라 앞에 수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역할에 대한 나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 깨우침을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ebs 피디
저 사람들은 채널에 있는 사람들이라, 당신의 개념을 수용할 수 없다라며 위로해 준 '철까마귀' 감독 박봉남감독
'정말 멋진 생각이다'라며 명함을 건네는 mbc '아마존의 눈물' 감독
내 피칭의 좋은 점, 잘못된 점, 일일이 지적 해준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감독.
(이 성규 감독은 그로부터 몇 년 뒤 간암으로 생을 마쳤다.)
오늘 당신 가슴을 향해 날아온. 칼끝을 나도 보았다.. 언제 간 빛을 봐야 할 텐데 아쉽다' 그동안도 외로웠을 텐데... 라며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ebs 다큐영화제 피디
물론 그 외는 '웬 객기 부리는 배부른? 놈'이란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내 아들 딸 에게 자랑스럽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창작 행위 자체의 민주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리얼리즘이란 건 도대체 뭘까 ?
주민들을 연기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개성과 표현을 그대로 예술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존 다큐나 극영화가 지워버린 것 아닌가? (심지어 다큐에서 대상에게 연기를 하기를 요구하고 연출까지 한다 )
비전문가는 창작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 뛰어난 창작성이 아니더라도 1의 창작성을 열 사람의 창작성을 모으는 집단 지성과 같은 집단 공동 창작의 왕성함을 상상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
무한 경쟁의 현대사회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앞서 대변하고 고발한다는 사람들
가능하면 뽑을 사람 3명이면. 3명 뽑아 차등 지원 하는 피칭을 하는것은 어떨지 .그래야 발전적인 창작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난 2명을 이길 이런 경쟁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오래전에도 이런 일은 나에게 많았다
"마을영화, 시골사람들 도구화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그럴 리 없지만.. "
"시나리오도 없이 들어가면 어떻게요?"
조용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지만 계속 시나리오 준비해 가란다
이런 질문을 해서 나를 흥분시켜 자리를 박차고 고성을 지른 일들
실컷 지원선정해 놓고 이제 와서 자기들이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내가 자기들 아바타로 착각하나?
배고프고 배알 없는 애들 모아놓고 닭모이 같은 지원금 앞에 놓고 지들 정책 아바타화 시키려 하는 것이 지금의 정부 정책 지원금이다
그리고 끝나면 설문조사랍시고 로또 복권 몇 번 샀는지 간접홍보시키는 경악할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더라
어느 한 심사위원 인 교수는 2년 만에 사과를 하기는 했다
"그때는 잘 이해 못 했다. 당신이 영화의 커뮤니티를 가장 잘 살리고 있다"라고. 물론 자신이 주었던 모독에 비하면 자신은 거의 양반 수준이다. 그게 무식한 먹물들이더라
그 교수 ,나이도 나보다 어렸고 유학파였다. 여전히 나에겐 치욕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성실한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성규 감독과의 대화가 지금 생각난다.
신감독님.. 전 생각이 좀 다름다. 우선 감독님이 오해를 하고 계신다. 사회적 운동의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펀딩에선 감독님의 의도가 공감된다. 그러나 EIDF 펀딩은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 하는 제작지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유통과 마케팅 가능성이 높은 다큐에 대한 제작지원입니다. 그렇다고 그걸 상업적인 다큐로 봐도 안됨다.
심사위원들이 방송을 기반으로 하기에 그런 식의 질문이 나온 게 아닙니다. 영화 다큐와 방송 다큐를 구분하여 생각하는 건, 한국의 현상일 뿐입니다. 그건 감독님의 오해이시고요. 어제의 피칭에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은 국제무대에서의 피칭포럼에 비하면 정말 공손한 질문들이었습니다. 그 어떤 피칭이라 하더라도 제작이 완료되는 것에 대해 날카롭게 묻는 질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어제 피칭에서 모 심사위원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에 일정 저도 공감은 합니다만, 그 정도는 그 어떤 피칭에서도 자주 있는 일상입니다. 다큐도 영화처럼 열린 결론과 닫힌 결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의 기획은 열려있는 것이었지요. 글 타고 하여, 스토리텔링이 없이 촬영할 순 없습니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감독님의 오독이 전 느껴졌습니다. 그 어떤 다큐라 하더라도 예상되는 스토리텔링이 없이 제작되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일부 있고 그러한 다큐에 대해 제작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 경우 그러한 구상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합니다.
어제 감독님의 피칭은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셨습니다. 인지할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펼치는 미학적 혹은 창의적 생각들을 감독님의 머릿속에서 꺼내야 하는데, 감독님의 피칭은 그런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모든 작품들에게 지원 결정을 할 수 있지 못한다. 그 가운데 몇 개 혹은 하나를 선정해야 합니다. 콘셉트가 분명하고 감독의 의지와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제작 결과물이 잘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에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방에서 두 팀이 어제 피칭을 했지만, 제 예상대로라면 둘 다 이번 제작지원에 선정되지 못할 검다. 그래도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어떤 작품이 선정될지 짐작하고 있는 저로선 그 작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객석에 앉아 있는 제가 봐도 그 작품들이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음 한다. 꾸벅~~~
나 신지승 :
예. 일단 어제의 결론, 과정에 대해선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전 사회운동적 차원의 펀딩을 받은 적이 있더라도 사회운동적 작업을 하는 사람이ㅡ아닌 제 나름의 창작방법론을 통해 창작하는 사람입니다. 관객 ㅡ시장을 목표로 하지ㅡ않는다고 창작이ㅡ아니라 사회운동이라고 하시는 것도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자본의 틀 밖에 존재한다고 모두 사회운동이 아닙니다. 난 이미 오래전부터 탈 자본 탈 상품 탈 극장의 창작을 선언 한 사람입니다 . 잠시 내가 제도방송과 영화를 기웃거린게 잘못입니다. 이미 선정된 기획안의 선에서 질문을 해야 하고 그 개념의 근저에까지 질문이 들어오는 건. 토론의 수위가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이것은 설득과 합의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차후에 논쟁 보다 눈 좀 더 찬찬히 편한 대화로 함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꾸벅~~~
만나기로 하였지만 약속을 서로 지키지 못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병상에 머물다 갔다 .
극영화는 인형극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인형은 배우로 바뀌고 그들을 조종하는 줄이 사람에 따라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줄은 여전히 감독이라는 권력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보이는 내면연기라는 건 집중과 가상의 캐릭터에의 몰입적 매력일 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이미 시나리오라는 프레임 범위 안에서 허용되는 1인치의 공간뿐이다
배우의 연기스타일은 인형극의 조정자처럼 감독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이름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정말 자유로운 극을 돌려주는데 관심이 있다. 드라마는 카메라의 대상이 아니라 카메라를 응시하고 카메라를 제압하는 의지이다. 개성이라는 그들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웃음으로 잠시라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그 비극을 마무리할 수 있는 출구를 고민한다
조선시대 풍속화는 그들의 계급적 억압과 상처와 고통을 숨기고 외면하는 것일까? 그들이 양반 화가들의 이름도 모르게 하는 익명의 계급무리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말 ,그들의 얼굴, 그들의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고 연기하게 했다면 그들의 일상이 조금 더 행복하고 생생하지 않았겠는가. 마냥 마당극의 추임새만 늘어놓지도 말고 당당하게 세상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서야 해 . 방송이나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새로 쓰는' 주인으로서 욕망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