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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만들어 가는 여행

by 신지승

무려 20일이 넘는 여정이었다.

'개인방은 제공할 수 없고 언제든지 불편하면 동행할 의무가 없다. 한국의 로컬을 최소의 계획과 즉흥적인 프로그램으로 종횡할 것이다. 이동 수단은 버스와 기차 만을 이용한다 "

초청자에게 사전에 공지된 중요한 규칙이었다.

한국의 작은 마을을 다니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창작적 영감과 한국 로컬에 대한 그들의 시선을 지역과 교환하며 주민들이 초청감독의 영화를 보고 글로벌 감각을 키우며 교류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낮은 자의 잔치가 필요하고, 없는 자의 웃음이 필요하고.... 나 또한 잔치를 그리워했고 웃음을 필요로 했다. 내가 꿈꾸는 여행이기도 했다. 이제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이들과 불편한 노부모를 아래층 위층 오고 가며 돌봐야 하는 처지라 아이들의 방학 때만 영화제는 가능했다. 지역을 벗어난 전국 단위의 영화제는 어디에서든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개인 후원자와 전국의 지인들에게만 기대어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인천공항 만경정에서 그들을 맞았다

내 처지에서도 나름 시간과 경비등 엄청난 출혈이 동반되는 것이라 아이들에게라도 경험의 기회를 주어야 남는 게 있겠단 생각에서 였다.

나를 후원하고 나와 연결된 지인들 중심의 지역의 단체나 그룹에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 물론 그들 중에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분들이 많아 최악의 경우 찜질방 투어가 될 것임도 사전에 알려 주었기에 마음이 불편할 필요는 없었다.

호텔보다는 찜질방에 있었고 유명한 레스토랑보다는 이름 없는 골목에 허술하게 감추어진 식당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인간미야 말로 그들이 다시는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서로서로가 익명의 도구가 된 사회. 그 풍경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적인 정과 사랑하면 그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한국의 구석에 있는 오래된 마음을 마주하고 싶었다.


"완도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왔네

나이 들고 나와 고향말투가 바뀌지 않아"

"싸우는 듯한 부산말투보단 나아요 "

반찬 하나 더 주고 아이들 음료수까지 챙겨주던 다대포 식당의 이름은 '태양으로 가자'였다

언제 다시 찾아가 그 가게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물어볼 참이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메뉴판 가격표도 없고 계좌입금할 통장 찾는데 몇 분이 걸린다.

"계좌번호 하나 적어서 붙여놓으세요"

단 2번 찾아간 식당에는 왜 딸아이 안 데려왔냐 묻는데

한 달에 20번 넘게 오고 가는 도시의 가게에선 매번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는 이유는 뭘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 하니

오스트리아에서 온 이승만대통령의 프란체스카를 기억해 내는 경주 황리단길 86세 할머니

미처 가지지 못한 지식이 그 자리에서 불쑥 나올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혼자 병원 가는 길에 만났는데 곧 버스를 타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운가 보다

말도 더 하고 싶고 자신의 정을 드러낼 쉽지 않을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떠벌렸다

"한국 최고의 찜질방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그런데 가는 곳마다 최악이었다.

어제 해운대에서 만난 찜질방은 최악이었다. 카운터 직원, 남녀 사우나 관리인을 합쳐 세 명이 할 일을 단 한 사람이 도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유를 알았다. 코로나를 지나며 좋은 찜질방일수록 24시간 영업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이제 최고의 찜질방 투어는 포기해야 할 듯하다. 내가 꿈꾸던 ‘즐겁게 밤을 새우는 멋진 찜질방’은 당분간 현실에서 사라진 환상일 뿐이다.


그야말로 한 편의 판타지 드라마였다. 나와 아이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 이상이었다..


베트남 틴, 프랑스 토르 스페인 아르투로 일본 코헤이 태국 낫타삭 말레이시아 에이에 중국 그리스

호주의 라데야 헝가리, 이란 , 네덜란드 , 미국의 알래스카 곰친구 이노 , 브라질 하파엘 등등

4년 동안 40여 개국이 넘는 나라의 감독들이 찾아왔다.


물론 문화가 다른 각 나라의 감독들이 모이다 보니 최소 20일이 넘는 여정동안 갈등과 오해도 있었다.

나와 지역의 희생과 배려를, 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외면하는 듯한 감독들,

한국인들의 손님에 대한 배려와 희생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을 왜 저렇게 미친 듯이 하겠어 ?

돈 때문일 거야 나라나 지자체에서 돈을 엄청 받아서 그걸 남기려는 목적일 거야!"

누군가가 나에게 보여준 그들의 은밀한 채팅, 그들은 내가 돈 한 푼 버는 것 없이 이 영화제를 하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하였다.

아마 전 세계적인 국가지원의 관행으로 인한 인간이 뿜어내는 열정과 배려를 불신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다.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더욱 모를 수밖에 없다.

5년간의 국제마을영화제와 20년간의 마을영화제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하고 독특한 탈도시 한국 로컬 영화제, 이 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를 이어가고 싶지만 항상 웅장하고 크고 화려한 영화제만 풍성해진다.

큰 돈에 의존하지 않고도 십시일반으로 이루어지는 가치의 영화제 하나는 누군가의 희망, 누군가의 기다림을 채워줄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크면 클수록 그림자가 크다. 작고 소박해야 비로소 다가올 수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다. 모든 것이 갖추어지면 인간의 추억은 그만큼 작아진다 . 모자람이 보여야 다가오고 완벽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사람들도 많다. 모자람과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영화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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