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여행 끝에 만난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그건 나의 여린 심성으로 인한 것이다
2018년 불이 나 주차장을 떠돌아다닐 때 속초 새마을에서 한 할머니를 찾았다.
새마을은 67년 해일로 인해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급하게 만든 마을이다.
-7길 골목에 앉아 있는 머리 빡빡 깎은 할머니, 금강산쪽이 고향이라던데요 ,
-누구지? (옆의 사람에게 ) 그런 사람 알아?
의외로 금강산 할머니를 아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다.
속초 시장에서 생선 장사했다는데요
3년 전 80살이 넘은 할머니는 골목에서 처음 만난 낯선 가족들에게
북한에 두고 온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쩍거렸다.
처음에는 치매인가 싶었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도 아니었다.
유머 넘치는 할머니는 차라리 생선팔던 속초수산시장에서 사람들을 웃게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때가 너무 그립다고 했다.
좁은 골목에 내리쬐는 , 겨우 한 줌의 햇빛아래서의 기억
그 할머니를 다시 보고 싶어 30분 걸리는 양양시장에서 뻥튀기를 가득 사 왔다.
아이들과 함께 골목에 앉아 2015년 6월 그때를 서로 기억하리라 상상했건만...
혹시 그 대 처럼 골목에 나와 쭈그리고 있을까 싶어 오고 가며 기다렸다
7길 골목집 앞에 햇빛이 내려쬐는데도 골목은 적막하기만 했다
도시마을의 가난한 풍경은 여행자에게는 보기 나쁘지 않다.
마당도 없는 집에 한 달 동안 가득 모아놓은 병을 1톤 트럭으로 옮기면서 우쭐하며 자랑하던 할아버지
8평의 단층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3층건물을 혼자 만들려다
결국 자신의 꿈 이루지 못하고 죽어 마을의 폐가로 남겨버리고 간 사람.
지하실까지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다 북한 단파방송 듣는 간첩으로 오해받아 신고받는 소동까지 일으키기도 했단다. 이제는 마을의 길고양이 근거지가 되어버려 귀신집처럼 버티고 있는 건물은
나에겐 아쉬운 감동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이 마을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속초라는 도시의 경로당은 농촌의 경로당과는 달랐다..
경로당은 마을노인들의 중심공간이 아니라 한 그룹의 아지트라고 쑤근거렸다
어떤 이는 복지관으로 가고 어떤 이는 무료급식소로 가는
겹쳐지는 이는 겨우 한둘이었다.
무료급식소는 10시 30분 경로당은 12시에 점심을 먹다 보니
아무리 밥 해 먹기 귀찮아도 그 짧은 시간에 2끼를 굳이 먹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
먹는 것으로 끼리끼리가 형성되고
농촌 마을과는 달리 “전체 모여”라는 분위기가 옅을 수밖에 없는
속초라는 도시의 풍경은 "영화 한 편 찍어 볼까요?"라고 덤비기에는
쉽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결국 나의 열정에는 그 성문을 열어 주었다.
경로당의 누군가를 유독 싫어 그 경로당에는 가지 않는다는 사람은
밥 때문에 새로운 경로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군을 모으고도 있었다.
며칠 다녔는데도 마을의 갈등과 반목, 질시의 역사가 깊고 세어.. 갈길이 아득하다.
나무도 탈 때에도 제각기 소리가 다르다. 모양까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잣나무, 낙엽송, 소나무, 참나무
낙엽송은 유달리 펑펑거리면서 불똥을 내뿜는다.
밤나무는 독한 가스내면서 타고 잣나무는 시커먼 연기를 동반한다.
사람들도 자기 이야기할 때 각기의 소리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란다.
집요하게 자기 이야기 들어달라고 상대를 찾아다니고 사람 모아야 하는 부류 중
정치가 나 예술가, 작가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남의 이야기하면서 돈까지 가지고 오란다며 웃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굳이 사람을 애써 찾아다니지도 못하고 누군가가 다가오면 그때서야 활화산의 용암 같은 뜨거운 울분을 토해낸다.
간혹 그냥 듣고 있기에는 시간도 마음도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다.
며칠 동안 할머니를 보지 못하였지만 냉큼 집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기에는 두려웠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기다리기만 했다.
아는 지인이 하는 펜션의 베란다에 나오면 많은 것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마을 골목 3-4개와 횡단도로, 오른쪽으론 롯데 리조트
가운데는 바다가 보인다
그러나 잠자리는 편하지 않았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단층민박은 걱정이 앞섰다
바다입구에는 해일대비를 위한 안내판과 집결지표기가 나와있는데 안전하다는 곳이 마을언덕 위 2-3군데뿐이었다.
아무래도 바다와 가장 가까운 마을의 최전방에서 사는 건 당장 오늘내일에는 오지 않을 것 같은 해일이지만 걱정이 산이 되고 공포와 불안의 존재에게 편한 잠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방이 넓었지만 전기장판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일정한 온도에 맞추어져 그 온도로 내려가면 딸깍 거리며 전기가 돌아가는 원리하고는 전혀 다른 5분 단위로 딸깍 딸깍거린다.
밖의 차가운 밤공기가 비비고 들어오는 벽의 외풍 때문인지..
6개로 구성된 전기장판의 딸깍 거리는 소리는 아예 천정에서 나는 쥐소리만큼이나 사람을 미치도록 신경을 끍었다.
잠을 설친 덕분에 아침 일찍 마을골목으로 나왔다.
-아저씨 무하나 사 가세요
-일찍 나온다고 돈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근데 이건 뭐예요?
-아 일이 많아 빨리 가야 되는데 왜 이리 사람이 없지?
이걸 팔고 또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며 조급함이 역력하다
나의 질문은 너무 쉬워 답을 안 하는 분위기인가?
배추 두 포기, 무 겨우 몇 개를 손수레에 실은 아머니는 (할머니도 아줌마도 아닌 ) 사람도 없는 아침
경로당 앞에 초조하게 발을 둥둥 거리며 서 있었다.
경로당 앞에는 번개시장이 열린다.
주로 마을 사람 노인들을 상대로 한 난전인데 내가 알기로도 시간이 좀 이르다.
나보다 더 마을 사정을 모르는 이 아주머니의 정체는 뭔가?
-할머니들 아직은 안 나와요. 아침 먹고 연속극 보고 나오죠.
-농사지은 건데 빨리 몇 개 팔고 가려는데 시카마라도 하나 사가세요!
-진짜라니깐요. 돈 없어요. 근데 시카마가 뭐죠?
-멕시코 감자라는데
순간 살펴보니 농협 가격표까지 붙어 있다.
이런 먹고살기 위한 거짓말은 추하지는 않지만 아침부터 마음이 시리다.
아주머니는 어차피 팔지 못할 것 같다며 시카마를 깎아 내입에 넣어준다 평생 처음 먹어본 멕시코 시카마
설상가상 어느 골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가보았더니
동사무소에서 수급자를 위해 쌀 한가마를 주고 갔는데
주인이 집 앞에 놓고 잠시 옆골목에 갔다 온 15분 사이에 깜쪽같이
없어졌단다.
한 사람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쌀이 없어졌단다. 우리 마을이 언제부터 이랬나 무섭다 "
며 소란 소란을 피웠다
낯선 사람은 나뿐인데..... 속으로 웅웅 거리는 "나 안 그랬어요 "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갇혔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갑자기 들어온 담임선생이 아이들을 책상 위에 올라가게 해 눈을 감긴다.
-누구야 00 물건 훔친 게 항상 마음 약한 나는 공포와 불안 때문에
내가 그 아이의 물건을 훔쳤을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공포와 폭력은 사람의 상상을 왜곡하게 한다. .
-저 사람은 누구야?
-마을 촬영 왔습니다 그래도 마을취재용으로 들고 다니는 카메라가 나를
지켜주긴 준다..
왜 하필 골목의 cctv가 고장 나 있었는지.. 그것을 아는 발 빠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카메라가 의도하지 않게 원경에서라도 단서가 잡힌 게 있는지 돌아와 아침 촬영한 것을 꼼꼼히 살폈다. 혹시 그 시카마 아주머니일까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금강산 할머니... 집으로 찾아가 보아야 하나.. 며칠사이 그 많던 뻥튀기는 아이들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옷장수 아머니에게 금강산 할머니를 아는지 물어봤다.
-그 할머니 올해 봄에 죽었어요 그런데 그분을 어떻게 아세요?
마을 사람들하고도 거의 이야기 안 하고 사신 분인데....
나는 그리움, 외로움으로도 사람이 말라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그 할머니는 엄마를 보고 싶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그렇게 바짝바짝 말라 사라진 것이리라.
그렇게 연기로 다시 태어나 그리웠던 어머니를 하늘에서 만나시길
내 처지에서 이들 스스로 삶이 축복이라고 느끼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의 삶을 예술적으로 기억하고 승화시키는 것, 웃음으로 뒤돌아 보게 하는 것 그리고 이 팍팍한 삶에서도 모질게 견디고, 꿋꿋하게 삶속의 모욕의 흔적을 날려버리는 의식을 소란스럽게 치러내는 것
그래도 삶이 축복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예술과 만나는 것.
누가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삶의 축복성을 스스로 가진 사람들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그 삶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내고 후세에 기억하도록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완성된다."라고.
그것을 위해 정치인은 더 넓은 정책의 그릇을 , 예술가는 그것을 끊임없이 환기하도록 이슈를 만들고, 의사들은 그 의미를 곱씹을 시간을 최대한 벌어주기 위해 공적인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삶도 나에게 축복이 되길 위해선 이 숙제를 끝내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