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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결투– 어느 국제영화제의 하루

by 신지승


아마 총이 있었다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도 남았을 것이다. 총이 없었기에, 우리는 대신 핸드폰을 들어 서로의 얼굴을 겨누었다. 서로 상대의 공격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우스꽝스러운 결투였다. 그 결투 앞에서, 7개 나라에서 온 감독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국제적 행사가 아니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규칙과 인간관계, 그리고 문화적 긴장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처음 만난 감독들이 20일 동안 한데 모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영화제를 열고, 각자의 촬영까지 소화해야 하는 여정.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궁한 이야기의 창고일 수밖에 없다.

사건의 시작

읍에서 시민들과 영화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영화제 참여를 위해 80km 떨어진 지역에서 온 여자 지인이 잘 방이 없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자신의 집으로 운전해서 되돌아가겠다는 여자를

인근 다른 숙소를 수소문해서 그곳에서 머물도록 했다.

그런데 잠시 대화 중, 그녀는 "내일 아침, 외국 감독 00과 제 지역으로 함께 떠나기로 했어요. 그게 괜히 영화제에 실례가 되지 않겠지요?" 내가 그녀를 다른 숙소로 배려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경고음. 영화제 규칙상, 언제든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이탈은 가능하지만 다시 영화제 일정에 복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최종 책임자인 나에게 일언반구 없이 무단 일탈을 감행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예의가 아니다.

사실 그 외국 감독은 1년 전에도 한국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와 함께였다. 2박 3일 동안 겪은 그의 불투명한 성격과 자기중심적 기질을 이미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참여가 불안했다. 그러나 간절한 부탁과 인연을 앞세운 그의 수 차례의 요청에 마지못해 허락한 것인데. 그때 이미, 다가올 이후 시간을 나는 불 보듯 예상할 수 있었다.

갈등의 전개

다음날 그에게 물었다. "우리와 남은 15일, 어떻게 할 건가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는 동행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불투명성에 대해 규칙에 대한 협조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어버렸다.

결국 나는 영화제 규칙에 따라 오늘부로 동행 중단을 요청했다. 그는 강하게 거부했다.

"오늘 아침, 그녀와 ○○지역으로 떠나기로 약속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가까운 곳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며 성인 남녀의 사적인 문제라며 개입을 거부하는 그의 태도. 하지만 나는, 이 사적인 문제의 파급력이 영화제 안전과 공동체 분위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끝까지 그는 중도 탈락을 거부했고, 나는 재차 동행 중단을 통보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결국, 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만약 당신이 동행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제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결국 혼자 숙소를 떠났다.

반복되는 패턴

이런 무단 일탈은 종종 있었다. 늦게 합류하고, 개인 일정을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합류하겠다며 당일 스케줄을 들이미는 감독. 사전 합의 없이 자신의 편의를 관철하려는 행동을 인정한다면, 로컬 노매드 영화제의 취지와 분위기는 훼손된다.

그들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문화적 색채를 머금은 개인이자, 감독이라는 직업이 주는 자기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과 개성이 일반인과는 분명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게 된다.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저는 밤 10시 이후에는 어떤 행사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몇 달 전부터 협의한 내용에는 그런 이야기가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론 그런 사생활이 있다면 초청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밤 10시는, 서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동체를 다지는 시간들이 당연 많은 시간대였다. 그의 개인 사정 때문에 전체 스케줄을 맞추어야 하고 내가 받을 스케줄에 대한 강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자유롭고 흐르는 듯한 영화제를 원했던 나로서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류의 개인적 영역 고집은 특이하게도 특정 국가에 집중되곤 했다. 두세 번의 경험 이후, 나는 그 나라 출신 감독들은 이후 영화제에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

통역과 소통

사실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서 갖추어야 할 표준을 많이 위반하고 있다. 우선 통역이 없다는 원칙을 사전에 분명히 한다. 모든 대화는 영어로 하되 한국에서는 구글 통역이나 보디랭귀지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그 이유는 영화제의 특수성에 있다. 주로 시골을 다니다 보니 영어에 능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통역을 대동하고 다녔을 때 주민들이나 할머니들과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통역과 대화하고 통역과 같이 다니기만 했다. 그런데 통역이 없다 보니 서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구글 통역을 활용하고 웃고 얼굴과 표정 웃음이 더 활성화되더라.

소통이란 정확함만큼 그 모자람이나 불충함이 오히려 서로의 인간적인 거리를 좁히게 만들었다. 학술세미나도 아닌 다음에야 차라리 그게 더 취지에 맞겠다는 생각을 힌 뒤로 전문 통역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 할머니들이 영어 하나 더 하고 그들이 한국말 하나 더 배우게 된다.

물론 사전에 철저하게 알린 후인데도 어느 나라의 감독은 이 와중에 전문 통역동행을 요구하였다. 사실 지역 어디 가도 웬만한 생활 영어 하는 사람들 만나거나 구하기는 쉽다. 그들끼리도 소통에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전문 통역을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동행 통역가에 대한 요청을 이제 와서 구하기도 쉽지 않고 들어줄 책임도 없다며 그것이 중요한 조건이면 자유롭게 이후의 일정을 선택해라고 했다. 결국 그 여자 감독은 그다음 날 아침 혼자 떠났다.


중국 감독은 구글 통역기로 시장 사람들과 대화했고, 일본 감독은 직접 통역기를 들고 다녔다. 그들의 어설픈 소통 덕분에 오히려 주민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타국 언어를 배우고, 주민과 소통하려는 태도가 존중받는 순간이었다.

그 나라에 오면 그 나라의 최소 생활언어를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많은 나라의 감독들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려는 번잡함과 주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보다는 그들끼리 편한 영어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얼굴과 표정으로 느끼는 소통이었다.

끄트머리 국제마을영화제는,

규칙과 자유, 개인과 공동체, 문화적 차이와 소통의 한계가 얽힌 현장이었다. 20일간의 제한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창작자들과 함께 일시적 여행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한계와 어려움은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나의 국제적 감각을 훈련하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이 영화제를 왜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를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전 세계 거의 비슷한 형식의 영화제가 수백 개다. 도시의 호텔에서 길어야 3-4일 , 길면 10일 머물다 가버리는. 한국적 색채와 가치의 차이로 만들어가고 탈도시, 시골 노인과 아이들과 교류하는 영화제의 특성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이 영화제를 원하는 작은 마을들과 함께 외국영화인뿐 아니라 국내외 일반인들과의 한국로컬동행영화제로 확장시켜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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