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영화처럼 충분한 예산이 주어진다면 , 마을영화도 참여자에게 경제적인 수익도 안길 수 있고
아마 뭐가 다르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초초저예산에다 참여자에 주어지는 경제적인 보상이 없는 그야말로 자발적인 열정만으로 임하는 마을영화를 대중영화들과 그 만듦새와 재미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예산을 초월하여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작품을 위해 나름 애쓴다.
그 땅의 숨결을 , 사람의 호흡을 담는 방식의 영화는 매뉴얼화 하기에는 불가능하며 수치화할 수 없고, 단순한 '재미있다/재미없다' 식 평가를 내릴 수는 더욱 없다. 간혹 솔깃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우리 군(郡)에서 정부 정책지원금을 받았는데, '당신이 그렇게 꿈꾸던 마을영화를 100개 정도 만들 예정이다 '라고 했다. 100개의 마을을 순차적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마을영화의 거점으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시작부터 이상 했다. 나는 이미 20년 동안 전국 100개 마을의 마을영화를 이미 만들었기에... 굳이 그 이상 뭘 더 만들었다고 그 당시에는 경제적 이유외에는 그렇게 크지 않었다.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더 필요해야 하는 것이다.
내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로 찾아왔고 같이 관련 교수들과 세미나도 진행했다.
오래전부터 이런 류의 제안을 받다 보면 협의가 아니라 그들의 기획방향을 오픈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채 자료만을 계속 요구하거나 시간을 끌다가 아예 연락을 미루거나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의 노하우만 필요로 하면서 그들의 자체 매뉴얼을 확보할 때까지 소비적인 도구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기에 항상 웃으면서도 그들의 숨겨진 의도와 심성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을 주민미디어교육의 과정으로 삼아 축제화시켜 내려는 전략의 차이도 존재했다.
그 사례 중의 하나가 한국의 거대 모 포털이었다. 공동제작이라는 합의를 하고 그 합의 정신에 따라 제작비도 반분하고 저작권을 공동으로 하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언론 홍보는 그들의 프로젝트로 치장되었다. 나의 5톤 트럭 앞에서 나를 제외시키고 그들의 프로젝트 언론 홍보 사진으로만 둔갑했다.
조직이 강하면 강할수록 안하무인 할 수밖에 없다. '그만둡시다'라고 하자 자기들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함께 합의한 타이틀을 당분간 사용하도록 허용해 달라고 했다.
그 뒤 대학생 자원봉사를 통해 그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미디어교육이 아니라 고차원의 지역 맥락화 창작이라는 대의와 창작축제로 향해 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개별적 차원의 미디어기술과 다른 공동창작의 높은 성취를 경험하고 느끼기에는 전문 창작자의 존재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고 있는 전문성의 영역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그 한계로 인해 몇 년을 방송신문 홍보 우려먹기를 하다가 결국 그 사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순수한 열정과 사업적 목적과는 견뎌내는 시간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마을영화제에 참여한 모 국회의원으로부터도 구체적인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 영화제를 우리 지역의 대표영화제로 삼고 싶다는. 비서진의 몇 차례 자료 요청을 몇 번 거절했다. 몇 년 뒤 그 국회의원은 비리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국회의원은 나름 문화애 대한 안목이 뛰어났는지 몰라도 2010년 당시에는 정치권과 연결되는 게 썩 마뜩잖았다.
물론 결벽증적인 대응이기는 했다. 그 후 많은 정치인들이 마을영화제와 참여하기도 했다. 강원도까지 찾아온 문광부장관부터 인천 마을영화제에서는 박찬대 의원이 축사를 했고 직접 출연한 이 0식 당시 강동 구청장, 강동구 통키뮤직공간에서 외국초대감독들과 술자리에 참여하기도 한 진 0 미국회 의원등
모 지역문화재단 이사장이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해 "우선적으로 10개 지역부터 시작해 보자. 그런데 추경예산을 신청해야 한다"라고 했다. 물론 그 뒤 추경예산이 확보되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연기되었고 곧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사장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나름 손가락 안에 들 큰 도시의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보통 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일을 문화단체와 구청이 일체화되어 직접 '우리 구(區)에서 마을영화를 동마다 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구청장과 관련 인사들을 몇 달 동안 만났는데,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념과 연관되어 '주민 스스로 만드는 마을영화에 관심이 컸다.
생활인들이 미디어기술을 배우고 그들이 기획한 이야기는 미디어교육기관에서 또 관련 축제행사로 소화하면 하면 그만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을 구 단위의 행정축제로 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축제형 콘텐츠는 그들 내에 숨겨진 고도의 철학적 인문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발현해 내는 고도의 협력 기술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중의 인문학적 통찰과 성찰을 단계적으로 보이지 않게 끌어올리는 창작 체험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 완성도가 아니라 고도성을 위한 전문가들의 동반 창작이 필요하다. 그래야 외부 축제참여자나 주민들의 깊은 카타르시스와 지역화두로 끌어올려진다. 그런데 애초의 약속과 달리 나에게 한 작품만 먼저 실험해보자고 한다. 제작비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오고 가는 차비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모욕적이기 까지 했다.
"그게 당신들이 나에게 줄 전부인가? 그럼 굳이 내가 당신들에게 쇼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수많은 영상 데이터나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걸 참고해라. 비록 많은 예산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보여주어도 될 수준의 로컬성과 창의성, 과정의 협력성, 공동생활적 이야기라는 창작의 깊이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뿐 아니라 지역 교류형 콘텐츠가 되고 지역의 축제용으로 역할할 수 있다. 그걸 위해선 공동 창작이 필수다 "
아테네의 디오니소스극장에 모일 수 있는 참여의 열기는 DIY의 스스로 만들기의 진정성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 이제는 집에서 혼자 볼 수 있는 상품 영화처럼 만들 예산확보도 가능하지 않기에 새로운 초저예산 민초, 인문, 축제를 위한 가치적 블록버스형 콘텐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미디어축제도 지금은 구청장이 바뀌어 없어졌다. 특히 사전에 공동 제작프로젝트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다가 나 스스로 좌절감만 가진 경험이 외부의 제안에 대해 거리 두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우리 군(郡)에는 버려진 폐군(軍) 부지가 많다' 폐군부지를 마을영화센터로 바꾸자는 군 기획실의 제안이었다.
그때는 굳이 한 지역을 거점 삼아 마을영화를 제작해 나가는 단계가 아니라 , 국가 간 양극화, 국가 내 양극화라는 글로벌적인 고민을 통해 국제마을영화제를 이미 추진하고 있었던 때라 나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군수가 바뀔지도 모르는 지역에서의 장기적 플랜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없지 않았다.
지역 내에 거점을 마련하여 그 공간을 유지하고 키우는 일은 매우 소비적일 수도 있다. 그 큰 공간을 유지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로 많은 이들의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염려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공간이 주어지고 운영비가 주어진다고 해서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역의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들의 무기력을 본다면 자칫 임시적인 지역의 준공무원의 역할만 하고 귀한 시간을 소진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만일 내가 할 수 있다면 영화 장르 하나가 아니라 국악이나 미술 문학 등과 장르복합 예술센터로 지역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싶다고 역제안을 했다. 많은 단체들이 운영한다면 언제든지 하나의 단체가 나가도 큰 데미지가 없을 수 있다. 그 제안에 대해 그들은 가타부타 없이 차음의 제안을 철회했다.
나에겐 이동성이 없는 공간은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이동 버스 한대의 효율성에 미치지 못한다.
마을영화는 단순한 작품 만들기가 아니라, 공동체와 삶의 기록이며,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폐군부지를 마을영화센터로 바꾸는 것보다 , 주민과 이야기, 그리고 삶의 미학을 기까이 찾아다니는 일이 더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00군(郡) 100개 마을에서 마을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공언했던 지자체는 역시나 다를까, 구체적인 계약 전인데도 갑을 위치를 가지려 했다. '보내준 영화는 다 보았는데 다른 영화도 파일을 보내주세요!' 왠지 짜증이 났다. 어떤 피드백이나 토론을 할 여지도 주지 않은 관계로 이어질 것 같아 먼저 연락을 차단했다.
서로의 대화와 합의가 충분하지도 효율적이지 않았고, 이게 나의 이익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가 매달릴 필요도 없다. 내용이 없는 관계는 언제나 원점이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마을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삶의 이야기를 발굴하며, 공동체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진정한 협력은 일방적인 요구나 화려한 약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서로의 철학과 방향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공정한 조건에서 함께 성장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진짜 창작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서,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에서 시작된다.
난 만개의 글로벌 영화제작 프로젝트를 추진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본의 아니게 의기소침햐지거나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나의 마지막의 풍경이 과연 어떨지 상상하고 있다.
모든 세상사가 다 처음에는 달콤하고 유혹적인 제안들이 시간이 가면서 쓰디쓰고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