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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배우가 차려준 아침밥

by 신지승

파주 임진강 게스트하우스 두 아이와 여행 중이었다.

아침 공용주방 겸 거실, 어젯밤에 잠시 본 적이 있는 한 남자가 요리를 한다

가득한 요리 냄새 때문에 창문을 살며시 열어 놓았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꽤 길어진다.

기분도 살짝 나빠지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두 사람을 위한 밥상이 차려졌다.

그 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을 불러 앉힌다.

"다른 사람과 같이 식사하기 위해 차린 것 같은데 왜 우리 아이들을?"

"아닙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의 제사를 위해 차린 것인데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배우였다.

그날 임진각에서 뮤지컬 원더티켓이라는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였다.

대사가 있는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배우의 꿈을 안고 사는 젊은 친구였다.

밥 한 끼의 감동이 이토록 미안하고 아릴 줄 몰랐다.두 부모님의 명복을 빌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그날 밤 처음 야외 뮤지컬 공연을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되었다.

아마 나와 아이들은 유명한 등장인물보다 무대 위의 그를 찾으려 더 노력했던 것 같다.

비약하자면 수평적 문화가 서열적 피라미드를 극복헐 단초이다.

이렇게 멋진 삶을 사는 행복한 아들이 안긴 영화 같은 아침

난 왜 이토록 멋진 삶을 살지 못할까? 항상 쫓기며 뛰어다니며 울부짖으며 원하며 외롭고 우울하게 살았을 뿐이다.

나는 언제 행복해질까? 행복은 자기만의 문화를 가진 이들의 감성이다.

애써 행복해지기 위해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 영화는 내가 차린 그들을 위한 저녁밥이었다고...

하지만 온전히 그들을 위한 밥상은 아니었다. 반은 나를 위해, 반은 그들을 위해

그게 솔직한 것이다. 누구를 위해라는 말은 얕은 정치가들이나 하는 말이다.

정치다운 정치는 새로운 이상향을 제시해야 하고 만들어 내야 완성된다.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를 떠올린다.

보그다노프는 예술이 정치에 우선해야 하며. 정치적 변화만으로는 진정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할 수 없으며 문화적 혁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논쟁하다 레닌에 의해 관념론적 이단으로 비판받아 축출되었다.

한국적 문화(삶의 방식)를 글로벌 감성으로 세계를 공략할 의지가 팽배한 이 시대에 보그다노프의 프롤레트큘트와 예술·문화의 혁명적 힘이 선행하는 문화혁명론을 다시 뒤적여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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