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한고집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필코 관철하려 한다. 적절히 타협할 만한 일인데도 꺾이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미치지만,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굳이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을 지나 오르막을 십 분이나 걸어야 하는 00도서관을 고집한다.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수학학원을 가야 하기에 오전 열 시에 집 근처 작은 도서관으로 가기로 약속했건만, 갑자기 약속을 어기고 00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겠단다. 칸막이 쳐진 00도서관이 좋단다.
이 도서관조차 오지 않겠다던 아이를 우연히 데리고 온 사람은 나였다. 학교 시험이 있을 때에는 집 근처 스터디카페를 다녔다. 시험이 끝났으니 굳이 비싼 스카보다는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함께 가보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게다가 다른 '작은 도서관'보다 사람들의 북적거림도 적었다 . 조용한 작은도서관은 부산대학교 바로 앞 사거리에 있는데도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쉬운 건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관이라는 것. 일요일에 갈 수 있는 곳은 공립도서관밖에 없다. 그렇게 오게 된 이 00도서관이 '작은 도서관'보다 딸아이는 더 좋아했다. "아빠, 스카보다 더 좋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돈도 좀 아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래, 그럼 방학 전까지는 '작은 도서관'에 다니고, '작은 도서관'이 쉬는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여기로 오자."
그렇게 약속을 했지만 딸아이는 '작은 도서관'은 아랑곳없이 학교를 파한 평일에도 00도서관 가기를 고집한다. 덕분에 나는 꼼짝없이 00도서관이 마치는 열한 시까지 도서관에서 딸아이를 기다려야 한다. 남자 열람석은 이층, 여자 열람석은 삼층이다. 사층은 남녀 성인열람석이기에 각기 따로 이층과 삼층에서 떨어져 공부하다가, 저녁 식사 시간에는 지하 식당에서 만난다.
딸아이와 저녁을 먹고, 딸아이와 별을 보며 함께 걷는 것은 나로선 정말 감격적인 일이다.
사실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것도 딸아이의 고집 때문이다. 잠시 여행 중 들른 부산 할아버지 댁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의 봄 방학 전, 학교를 다니는 많은 도시 아이들을 보고는 딸아이가 강원도를 떠나기로 혼자 결정했다.
전교생 두 명뿐이었던 자신의 6학년을 아마 그때서야 지옥이라고 생각했던 듯, 결사항전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버텼다. 사실 강원도 분교에 다니는 그 두 명도 남매였고, 13살 평생 또래 여자친구도 없이 보낸 딸아이의 끔직한 시간을 알기에, 일주일 동안의 시위를 경제적 대책이 없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작은 도서관이 나쁘진 않았는데, 00도서관이 더 좋아."
자기 삶의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려는 아이 앞에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존엄의 자리를 찾으려는 결사항쟁의 의지가 나에게는 있기나 한 걸까?
오늘 1시, 요양병원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각기 따로 휠체어로 집으로 모시고 왔다. 다행히 집과 요양병원이 집 골목을 나와 신호등을 건너면 있는 가까운 곳이라 수월하고 쉬이 가능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으로 외출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바람을 쐬고, 집 냄새를 맡고,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감각을 몸에 다시 기억시키는 일. 그게 인간다운 삶이건 당연하다. 마음 같아선 두 분이 3년만 더 버티어 준다면 그 시간동안 내 할 일을 그간 못다한 ,죄의식 없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4 시에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딸아이가 있는 도서관으로 왔다.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집에서 혼자 버티는 것 보다는 효율적이다.
잠시 졸음이 왔다.
9 시 22 분, 이제 2층 열람석은 열 명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쪼잔한 만족은 스스로에게 안기는 날이다.
오늘 도서관 식당에서 본 마네의 〈피리 부는 아이(The Fifer, 1866)〉처럼 어떤 서사없이
그냥 '존재하는 존재 ' 그런 하루로 만들어 준 딸아이의 고집. 이제 남은 문제는 게임에 빠진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