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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Jan 22. 2021

회사에서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가 된다

비록 비즈니스 관계로 맺어졌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적이고, 이타심과 배려심이 많은 빛과 소금 같은 소중한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상사의 두터운 신뢰와 업무 성과를 보유한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99%의 대부분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교수이자 저명한 작가이기도 한 애덤 그랜트는 이들을 Giver라고 표현했다(약 25%). 이들은 실제로는 동료의 심리적 안정감과 업무 성과에 도움을 주지만, 조직에 오래 잔류하지 못한다. 물론 그랜트는 인정받는 1%의 Giver가 되라고 제언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만만해 보이면 가차 없이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회사 내에서 이들은 세렝게티 초원의 초식 동물처럼 잡아 먹히고야 만다. 이들은 본인의 선행(?)을 티 내지 않는다. 심지어 업무도 곧잘 하지만, 어필을 잘 못했거나 사악한 사내 정치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 당신이 만약 그런 사람을 리더로 만났다면 그 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곧 그 사람은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확률이 높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리더를 만날 가능성은 아쉽지만 희박하다.


스스로 일을 잘하는 것과 평가를 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연초에 주어진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도, 그 과정에서 평가자에게 보여준 부적합한 태도나, 돌발적으로 발생된 추가 업무 수행 결과에 따라, 또는 수만 가지 평가자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우선 아무리 동일한 평가기준을 가졌더라도 동일 인물에 대한 리더의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가자의 경험, 평가 기술, 가치관 등 그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까지 더해지면 정말 답이 없다. 게다가 대다수의 기업 구조는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비즈니스적이지 못하다. 가장 이상적인 조직을 상상해보자. 모든 직원들의 정보, 퍼포먼스가 모든 구성원에게 OPEN 되고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의  리더 혹은 PM(Project Manager), 나아가 동료들이 관련 업무 경험과 능력이 출중한 A를 팀에 영입하고자 한다. A에게 기대하는 아웃풋의 목표 수준을 제시하고 A는 성과를 제공한다. 아웃풋에 대한 만족도를 실제 고객이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약속된 보상을 제공한다. 이러한 성과, 경험들은 A의 DB가 되고 모두에게 공개된다. 팀은 A의 성과에 따라 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고, 반대로 A는 불합리한 평가를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도 있다. 마치 이적 시장의 프로 축구팀 선수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마추어 축구, 무소불위한 감독의 권한 등 여러 제약 조건들이 존재한다. 우선 팀 구성에 리더, 특히 구성원의 자율성은 없으며, 리더가 보상의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심지어 동료의 평가는 평소 친분에 따라 결정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노력들은 존재한다. 페이스북 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문서라며 언급했던 'Culture Deck: Freedom and Responsibility'에서 우리는 넷플릭스의 평가 제도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들은 평가 오류를 줄이기 위해 '360'이라는 사내 소프트웨어를 통해 수시로 동료와 매니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소 2주에 한 번은 성과 피드백을 포함한 매니저와의 1:1 미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제도는 Keeper Test이다. 구성원들이 이탈하는 경우 부당한 이유는 없었는지, 혹은 리더십 차원에서 더 노력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하며 해당 Test에 실패할 경우 4개월치 급여를 지급받고 해고당한다. 다른 IT 선도기업과 국내 일부 기업도 평가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수시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MBO(목표관리) 혹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와 관련하여 '당연히 일을 잘하니깐 좋은 평가를 받지!'라고 이야기한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는 해당 사람이 보유한 현재 역량도 중요하지만 미래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즉 현재의 고평가자가 그동안의 성공경험을 기반으로 더 높은 보상과 더 넓은 조직에서의 성장을 위해 몸담았던 조직을 떠날 수도 있고, 현재와 같이 지속적인 성과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면 현재는 저평가 자이더라도 높은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은 미래에 더 높은 아웃풋을 창출해 낼 수도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 이곤젠터(Egon Zehnder)의 고위 고문인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즈-아라오즈(Claudio Fernández-Aráoz)는 HBR 기고문에서 많은 기업에서는 이른바 고성과자(High performer)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이들의 역량 개발과 빠른 승진을 지원하지만 현재의 핵심인재가 미래에도 지속된다는 예측은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즉, High potential에 집중하라는 제언을 던진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 waterhouse Coopers)가 2014년에 68개국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는 자사의 모든 직급에 걸쳐 현재의 핵심 기량이 미래에도 여전히 사용 가능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독점 연구에  따르면 임원의 56%는 앞으로 자사의 고위급 관리자 확보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보리스 그로이스 버그(Boris Groysberg) 교수 역시 임원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조사에서 이들이 이와 유사한 우려를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종합해보면 대부분의 리더, HR 담당자들은 개인의 업무 성과 외에 헌신 혹은 자발적 조직 시민행동, 다른 구성원의 업무 성과에 기여,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포텐셜) 등에 대한 평가에는 소홀하다. 사실 해당 부분은 정확한 관찰과 측정, 평가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선후배, 동료들에게 건강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미래 조직을 선도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인재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운영 중인 상대평가 방식은 GM평가 모델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배분율(특정 조직 성과에 따라 등급별 평가에 제한을 주는 제도)이 반영되는 이 상대평가 제도는 총 인건비 관리, 성과중심 조직문화 등을 이유로 과거에는 유용했으나 이제 새롭게 변화된 시장, 고객, 나아가 구성원들에게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는 시스템이다. 팀 내에 최상/최저 등급을 반드시 1명을 배정해야 하는 조직 내에서 동료들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고자 이른바 다면평가(상사, 구성원, 동료 간 평가)를 도입하는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 과연 얼마만큼 냉철하게 경쟁자를 평가하겠는가? 이는 객관적인 평가를 저하시키고, 의도적인 부정적 피드백을 양산시킬 수 있다. 이처럼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여주기 식으로 바꾸는 제도적인 노력은 현실에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제 본론이다. 너무 멀리 돌아서 온 느낌도 있지만, 우선,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겸손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언젠가 나의 노력을 리더 혹은 조직이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을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 전략방향,  Rule과 프로세스를 준수하며 주어진 직무에서 전문성을 쌓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다만, 본인의 헌신과 기여, 성과와 요구, 심지어 불공평한 평가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당한 리더의 요구와 지시 혹은 비인격적인 관리감독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리더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직 그리고 당신의 리더는 절대 여러분을 100% 파악할 수 없다. 오직 당신이 반복해서 말하고, 직접 보여주는 성과와 가능성을 평가할 뿐이다. 당당하게 자신을 나타내라. 그동안 침묵하며 받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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