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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Dec 03. 2019

누가 우리를 배신자로 만드는가?

국민 영화 '타짜'를 다들 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일월드컵의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인 2006년 9월 개봉하여 당시 엄청난 흥행과 화제가 되었던 레전더리 명화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5백만이 넘는 관객이 극장에서 관람을 했고,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 79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마 이 시기를 전후로 이른바 '섰다'(영화 내 화투를 이용한 게임 방법, 포커의 한국 버전)가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여러 명장면(지금 생각하시는 그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과 명대사가 있었지만 필자는 고니의 어설픈 협박에 박무석(타짜, 곽철용 부하)이 맥주 몇 캔 마시는 그 짧은 순간에 배신을 결심했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충분히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맥주 몇 잔 마시는 그 짧은 사이에 배신을 결심한다. 당시에는 "역시 사기꾼은 의리가 없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누가 그를 배신자로 만들었는가?"


잠시 영화에서 벗어나 현실 세상을 되돌아보자. 최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90년대생이 사회초년생의 젊은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고 다.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재능, 무엇보다 젊은 감각을 보고 있자면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필자는 나이 든 밀레니얼 세대 : 인생 선배님들께는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제가 감히...). 필자의 유년시절이었던 90년대.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지 싶은 3층짜리 작은 빌라에서 친조부모님 같은 옆집 노부부와 삼촌 같은 위층 아저씨, 친형제 같은 아랫집 이웃들과 자주 왕래하고, 함께했던 기억이 난다. 90년대의 공기는 그렇게 훈훈했던 것 같다. 회상에서 벗어나 2021년 현재, 지금은 쌀쌀한 공기가 느껴진다. 과거 이웃 간 나누었던 훈훈한 대화와 배려는 층간소음 갈등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실제로 이웃 간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정말 세상이 흉흉해져서 그런 걸까? 대검찰청 통계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강력범죄(흉악)는 24천 건에서 36천 건으로 50% 이상 증가했고, 사기범죄는 205천 건에서 241천 건, 성폭력범죄는 16천 건에서 무려 2배나 높은 32천 건을 기록했다.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교통범죄(328천 건↓) 등을 제외하고, 확실히 우리 사회가 흉흉해진 것은 사실이다('19년까지 통계분석 결과).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옛말이고, 이제 '남보다 못한 이웃'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에서도 '남보다 못한 동료와 리더'가 존재한다. 정신적 스트레스(직장인의 73.3%, 2016년 통계청)는 기본이고,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코로나가 대유행인 시기에는 이러한 거리감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일교차가 클수록 감기에 걸리기 쉽듯 따듯한 집과는 달리 우리의 일터는 대체로 차갑고 냉정하기 때문에 더욱 아픈 것 같다. 과거 회사와 회사, 부서 간 경쟁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 요즘은 개인 간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어설프게 도입한 동료평가 제도는 서로를 험담하고,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리더와 구성원은 더 이상 '애정'이 아닌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나의 적(위험)은 바로 나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또 한 가지 씁쓸한 현실은 군대에서는 타인을 위해 희생한 숭고한 이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훈장을 주지만, 우리의 일터에서는 희생이 아닌 이익을 안겨다 준 사람들에게 Profit(인정과 보상)을 준다. 우리의 싸움 상대가 경쟁회사에서 팀 그리고 개인으로 세분화되었고, 어느덧 함께 일하는 동료를 경쟁자(위험)로 각인하게 되었다.


소속 회사, 팀의 성과보다는 개인의 성과가 더욱 중요해지고, 리더, 동료와의 신뢰와 협력은 자연히 저하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사람이 미워진다. 결국에는 이직을 결심하거나, 리더 나아가 조직에 복수심을 품은 배신자(?)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선도기업들은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의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최고의 팀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한 Google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요한 요인이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Create a Safe community, Be carageous(불가능, 실패에 대한 용기), Create Equal Opportunities(기회의 공정성) 세 가지를 Inclusive leadership으로 정의, 리더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국내 기업 사례로는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이 대표적이다. 매주 화요일 점심에 진행되는 대표-사원 간 격이 없는 대화, '실패는 당연하고 성공하면 다행'이라는 조직문화 역시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을 향상해주는 방법 중 하나이다(요즘 유행처럼 여러 기업에서도 타운홀 형태로 대표-사원 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형태로 진행되어 그다지 도움은 되고 있지 않다).


[신뢰의 우리(울타리)]

영화 타짜 속 박무석의 입장이 되어, 여러분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그의 배신은 이제 충분히 납득이 되실 것이다. 성과(승률)가 제법 좋은 그였지만, 어쩌다 발생한 실패(돈을 잃으면..)에 리더(곽철용)는 격려보다는 '너 이번에도 지면 변사체가 된다'는 경고(질타)를 했고, 조직 내에는 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동료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를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에게는 불확실한 고니와의 승부보다 배신이라는 행위가 보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선택이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로 유명한 Simon sinek은 'Cicle of Safety' 이론을 통해 구성원 간 신뢰·협력은 안전한 조직에서 발생하며, 해당 구성원들은 '내가 희생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나를 도와줄 것이다'는 강한 믿음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안정감을 구성원들이 가지기 위해서는 조직의 리더가 공정한 기회와 교육 및 훈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만에 하나, 몸담고 있는 조직에 이러한 신뢰의 울타리가 없다면, 이 조직에는 도저히 믿고 의지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복수 혹은 이탈을 꿈꾸고 있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울타리가 없는 평야에서 내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인가. 일방적으로 강요받거나, 평가받는 것에 상처 받거나, 자존감이 무너져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정말 좋아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경악을 금치 못하는 단어 중 하나가 '우리'라고 한다. 나의 아내이지만 '우리' 아내로 소개하고, 3대 독자이지만 '우리' 엄마라고 한다. 우리는 혼자일 때보다 서로 신뢰하고 협력했을 때에 더욱 강하다. 아마도 진정한 적은 나의 리더, 동료를 불신하고 배신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아닐까? 그렇기에 리더 그리고 조직은 단단한 팀·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신뢰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안에서는 모두가 관심을 받고, 공평한 기회를 누리며,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의의 실패에는 질타보다는 격려를, 도전에는 박수를 쳐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지속한다면 언젠가 이 울타리는 외부의 위험에서도 리더 그리고 구성원을 포함한 팀 전체(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성벽이 될 것이다. 지금 후배님들의 일터에는, 혹은 앞으로 가자고 하는 회사에는 이러한 신뢰의 울타리가 존재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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