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이 주는 참혹한 아름다움

Ai와의 불편한 동거는 이미 시작되었다.

by 여운


오전에 짬을 내서 그림 한 점 마무리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거리, 석양에 물든 가을 거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성큼 다가선 가을을 미리 맛보고 싶어

시작한 그림 한점.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습니다.


topgunkk_old_street_fall_romantic_sunset_dd9ae142-20b7-4a51-a093-68851a6ea839.png Ai프로그램 midjourney를 이용해 직접 만든 그림






Ai가 제작한 그림으로 미국의 한 미술공모전에 1등 상을 수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한 미술 공모전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그림이 1등 상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CNN에 따르면 게임 디자이너 제이슨 앨런 씨(39)는 지난달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디지털 합성사진’ 부문에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제출해 1위에 올랐다.
문제는 앨런 씨가 작품을 직접 그리지 않고 AI 프로그램 ‘미드 저니’를 이용해 그림을 ‘생성’했다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미 예술계에선 “창의성(creativity)의 죽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8f07acdf2ae9c501cbf9f12735818894c479b147.jfif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미술대회'디지털 아트. 디지털 합성사진'부문에 1위에 입상한 '미드 저니'를 이용해 생성한 작품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Ai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똑같은 프로세서로 같은 작업을 경험해 보고 싶어 졌습니다.

Midjourney라는 문제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몇 가지의 제시어를 주자

Al는 4가지의 그림을 동시에 그리기 시작했다. 30여 초의 시간이 흐르자 4가지의 그림을 보여주고 내게

맘에 드는 그림의 업스케일링. 혹은 같은 제시어의 다른 버전을 작업할까를 물어 옵니다.

몇 번의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몇 번의 반복 과정을 통해 위의 그림을 얻었습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사용된 시간은 5분 남짓.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작업한 그림 그러나 제 그림 맞습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Al가 만든 예술작품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작곡과 같은 영역은 물론 인간의 손맛이라는 그림의 영역까지도

한계는 이미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관념 속에 Al의 작품은 인간미가 없고 차갑고 감동이 없다고

예상들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감동도 주고 영감도 주고, 심지어 소통도 합니다.


Ai는 저와 작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짜증 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걸친 수정 요구에도

군말 없이 프로그램을 순식간에 돌립니다.

끝없이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인간은 선택만 합니다.

작업도구로도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결국 Ai의 작품은 주어진 데이터를 통해

딥러닝을 진행한 결과이며 따라서 결국 모방 물이기에 창의성은 없다고,

과연 그럴까요,

인간의 창의성 역시도

결국은 경험과 무의식이 만드는 수많은 레퍼런스의 부산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히려 Al는 인간보다 상상할 수 없는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양의 차이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방률을 따진다면 인간의 모방률 보다

Ai의 모방률이 훨씬 더 낮은 수치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럴 경우 창의성(이라 보이는)은 오히려 Ai가 더 높아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희망 의도성, 의식성, 목적성 이런 것은

여전히 인간들만의 것일까.

이 역시 회의 적이다. "최초의 의도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라는

닭과 달걀의 진부한 질문을 생략한다면, Ai 역시 정체성과 주체성을

자신의 방식으로 학습해 올 것이며 우리는 그것조차 여전히 구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Ai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 의식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Ai그림 한점은 참혹하게 아름답습니다.

내가 지니지 못한 스킬과 다양한 레퍼런스를 충족시켜 줍니다.

그래서 참혹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결국은 Ai에게 스킬도 창의성도 따라잡을 수 없다면

과연 예술은 살아있을 것인가라는 질문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창조적인 예술 애호가 들은 여전히 부족한 스킬과 레퍼런스를

스스로 극복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밀키트를 통해 쉽게 요리할 수 있지만. 여전히 재료를 사서

다듬고 조리하는 일에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행복의 다른 말입니다.

클릭 몇 번에 사진을 연필화로 바꾸어 주는 앱은 차고도 넘치지만

예술 애호가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인내, 절망의 기억이 녹아 있지 않는

결과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노력과 인내 절망이 교차하지 않은 그림은

내게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Ai의 작품에 자존심 없이 눈물 흘리고 감동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Ai와 감정의 소통을 느끼는 좌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


이는 타협이 필요해 보입니다.

도구로서의 Ai의 영역 확장을 우리가 어디까지 받아들이는가 의 문제.

우리는 이미 키오스크에 요구에 응대하고, 음성메시지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식점에 등장한 서빙로봇에게 나도 모르게 감사를 표시하곤 합니다.

어쩌면 문제는 Ai가 아니라

Ai를 바로 보는 인간의 시선, 이용하는 인간의 본성이 문제일 것입니다.


Ai에게 위로받는 시대

불편한 동거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여.

Ai에게 위로받지 않아도 될 건강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사회만이

Ai에게 정복되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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