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잠든 동안

by 여운


2021년 10월 말 갑작스러운 심장통증으로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았습니다.
현재 건강히 회복 중에 있으며
이 글은 그 당시 기록과 그림,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쓰는 글입니다.






"환자분 의식이 돌아오시는가요?"

"제 목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을 까닥해 보세요"


긴 어둠을 지나 빛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저 멀리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의식을 움직여 봅니다. 손을 들어보려는데, 눈을 떠 보려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몇 번의 의식을 깨우는 소리를 들으며 점점 더 의식이 명확해집니다.

대답을 해야 합니다. 몇 번의 노력 끝에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의식을 깨우던 의사는 이미 멀어져 졌습니다.

미명이 밝아 옵니다.


깨어났다고, 계속해서 사인을 보냅니다. 손가락을 끝없이 까닥거립니다.

'여기 좀 보세요'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취 후 수술시간을 포함하여 서른 시간이 넘어서 깨어났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된 수술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나고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졌습니다.


닦을 수도 없는데 눈물이 자꾸만 흐릅니다.

눈을 감아도 눈물이 흐르고

눈을 떠도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이 흐를수록 의식은 맑아집니다.

의식이 점점 또렸해 지고 밀물처럼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아픈지도 모를 통증이 끝없이 엄습해 옵니다.

극심한 통증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 내에 삽입된 인공호흡기의 이물감은 숨 쉴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수술 전 의사 선생님이 주의를 주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의식이 돌아오면 회복 정도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면 할수록 인공호흡기의 제거가 힘듭니다. 숨 쉴 때마다 호흡기를 꽉 깨물고 버티셔야 합니다. 그래야 인공호흡기를 빨리 제거할 수 있습니다."


견뎌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인공호흡기의 통증을 견디게 하기 위해 손을 침대에 묶어놓는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호흡 한번 한 번이 이렇게 까지 힘든 것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한번 숨 쉰 후 다시 찾아오는 숨 쉬는 시간까지 찰나의 행복. 그 무한한 고통과의 지루한 반복이 시작되었습니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 고통과 정면 승부 하기로 했습니다.

의식 속에는 오로지 인공호흡기의 통증 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이 고통만 벗어나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침상에 묶인 손을 풀었지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옵니다.

인공호흡기의 고통에 가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통증이 찾아옵니다.

15분마다 스스로 주입할 수 있는 진통제의 버튼을 꼭 쥐고 침상 건너편 시계만 바라봅니다.

15분만 참으면, 15분만 참으면...... 16분만 참으면. 17분만 참으면......

스스로 진통제 투입시간을 늘려가려고 노력합니다.

몇 시인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시곗바늘이 15분이 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끝없는 반복. 눈물은 흐르다 마르고 또다시 흐르다 마릅니다

그렇게 시간은 빠듯 빠듯 갑니다.


물 한 모금을 먹으려고 간호사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한참 동안 눈동자를 간호사의 동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고통과의 싸움, 인간의 존엄 따위는 이미 스스로 내팽개치고 오직 살려는 의지가 생겨납니다.

침상에서 자세라도 한번 고치려면 간호사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눈동자만으로 간호사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벽에 걸린 시계, 손에 쥐어진 진통제 버튼. 시선은 간호사에게

낮이 가고 밤이 가는지 중환자실에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들만 낮게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죽음의 시간 동안 함께 해주신

성령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통증을 느낄 수 있음에 흘리는

감사의 눈물이 끝없이 흐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간 줄 모릅니다.

첫 식사가 나왔습니다. 간호사는 내 손이 가 닿지 않는 곳에 식판을 두고 갑니다.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손 닿지 않는 침대트레이에 얹힌 식판을 내쪽으로 당기는 일.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내쪽으로 당겨 숟가락을 잡았습니다.

살기 위해 먹겠노라 다짐하며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내 눈에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아마도 고통스러웠던 식사 이후, 급격히 회복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마취제 버튼과 벽에 걸린 시계와의 끝없는 싸움이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렇게 이틀밤, 낮을 보낸 후

마침내 오후에 일반 병실로 이동할 수 있을 거라 전해 줍니다.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일반실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도록

담당선생님이 내 귀에 전화기를 대어 줍니다.

" 오후에 일반실로 내려간답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서 이야기합니다.

전화기 너머 아내의 흐느낌이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편 80:7




수술을 마친 후 담당의사는
보호자들에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려주었고
남은 처치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아내와 딸이 중환자실을 찾아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잠시 면회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작은딸은 의식 없는 아빠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
빠른 회복을 기도 했다고 한다.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의식이 없이 그렇게 30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내가 잠든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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