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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May 12. 2023

"옛다, 단술이다"

고모님을 보내고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아마 대여섯 살 때였겠지요

명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모님이 와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단술을 내놓으라 떼를 썼습니다.


감주(甘酒), 또는 식혜(食醯)라   불리지만

경상도에서는 단술이라 불립니다.


얼마나 떼를 썼으면 온 식구들이 달래고 얼러도 

도통 말을 듣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이야 시장만 가도 구할 수 있고

그 조차 힘들면 슈퍼에만 가도 인스턴트 식혜를 구할 수 있을 텐데

그 당시에야  시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단술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난리 통에 고모님이 홀연히 나타나

다들 물리 치시고 찬밥 한 술 떠오시더니

찬물에 풀어놓고 설탕 한 숟가락 휘휘 저어

"엤다 단술이다. 고집은 누굴 닮았누"


아마 설탕도 귀하던 시절인지라

맛있게 먹고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명동성당/ 기억 속에 명동성당은 늘 최류가스와 함께 있습니다.



구순이 넘어서도 정신 꼿꼿이

정갈하게 사시던

고모님이 소천(召天) 하셨습니다.

딸만 넷을 낳는 바람에 평생을 죄인처럼 사셨지만

그 딸들 아래 북적북적한 손주들의 운구를 받으며

증손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가셨습니다.

한 교회를 70년 가까이 권사로 섬기시며

신앙인의 모범을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이제 고모님의 기억을 쫓아

후손들을 또 따라 배울테지요.

"고모님 단술 맛나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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