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구조가 되고 , 구조가 관계를 낳을 때
자선을 넘어, 구조로 이어진 신앙의 실험.
‘요셉의 창고’는 오늘의 교회가 어떻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응답입니다.
자료의 수집, 저술이 다소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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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연재저술은 유튜브채널 "유목민이야기"(https://www.youtube.com/@%EC%9C%A0%EB%AA%A9%EB%AF%BC%EC%9D%B4%EC%95%BC%EA%B8%B0)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추석연휴로 월요일 연재가 빠졌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길고 긴 가뭄 끝에 곡식이 떨어진 시절, 마을의 밥상이 비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절박한 생명의 문 앞에서 우리는 지난 회차,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베이비박스라는 침묵의 구조를 통해 생명 그 자체를 품는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생명이 이어가야 할 삶의 양식을 지키는 또 다른 교회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호남평야의 끝자락, 전남 함평의 들녘. 이곳은 수천 년 이어져 온 풍요의 땅인 동시에, 고령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 불안정이 드리운 시대적 흉년의 현장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생명이 이 땅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의 삶을 지키는 구조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함평교회의 “요셉의 창고”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교회의 구조적 응답입니다. 이는 자선(Charity)이 아닙니다. 곡식이 아닌 신뢰를 비축하고, 가진 것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눔을 시스템화한 공동체 생존의 비전입니다. 흉년의 시대에 교회가 ‘생명을 살린 요셉의 창고’로 기억되기 시작한 순간, 한국교회 공동체 회복의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
함평은 전통적인 농업 중심지로서 공동체의 생존이 곧 농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떠나고, 남은 이들은 급격한 기후 변화와 불안정한 소득 양극화 속에서 삶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 땅에 100년 넘게 뿌리내린 함평교회는 마을의 중심이었으나, 고립된 영혼들을 모두 품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요셉의 창고’의 시작은 세 가지 절박한 현실이 교차한 지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첫째,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한 독거노인과 취약계층의 고립 심화였습니다. 문을 닫은 행정 복지망 사이로 굶주림은 소리 없이 스며들었습니다. 둘째, 농산물 잉여 문제입니다. 한쪽에서는 식량이 부족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잉 생산된 농산물이 폐기되는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셋째, 교회 공간의 전환입니다. 본관 뒤편에 자리했던 오래된 창고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리더십의 근본적인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요청 앞에서 교회는 창세기 41장 요셉의 서사를 다시 읽었습니다. 요셉이 풍년의 때에 곡식을 비축한 목적은 개인이나 왕국의 축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다가올 흉년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신앙적 비전이었습니다. 함평교회는 자신들의 창고를 단순히 물품 보관소가 아니라, 사랑과 생명을 비축하는 요셉의 곡간으로 선언하고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창고가 단순한 푸드뱅크와 구별되는 지점은 그 철학적 원칙에 있습니다. 함평교회는 나눔을 행하는 방식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저장은 나눔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이들의 신념은 세 가지 원칙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첫째는 존엄성입니다. 물품을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도움을 받는 이들의 명단을 비공개로 하고, 원하는 물품을 익명으로 예약하여 수령할 수 있도록 하여 수치심을 최소화했습니다.
둘째는 지역성입니다. 창고를 채우는 농산물은 주로 함평 지역 농가에서 공정 가격으로 선구매하거나 기증받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생산과 분배가 같은 마을 안에서 순환되는 생태적 공공성을 확보한 것입니다.
셋째는 투명성입니다. ‘요셉의 창고’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헌금과 현물의 흐름은 공동체에 공개됩니다. 신뢰가 곧 자원이라는 믿음 아래, 투명성은 공공 사역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적 원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구조는 구약의 만나의 원리, “오늘 필요한 만큼”의 신앙을 오늘의 삶에 외화(外化)하는 강력한 증언이었습니다.
교회가 나눔의 철학을 품을 때, 그 신앙은 구체적인 시스템이 되어 작동합니다. 함평교회의 창고 운영은 수집 → 보관 → 배분 → 연계 → 공개의 순서를 따라 정교하게 움직입니다.
매주 주일 오후,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은 창고로 모여듭니다. 장년 성도들은 지역 농가에서 수집된 농산물을 품목별로 분류하고, 청년들은 소분 포장과 라벨링 작업을 맡습니다. 냉장창고 문을 열고 식자재의 신선도를 관리하는 이들은 **‘곡간지기’**라 불리는 평신도 봉사팀입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 대신 기쁨의 섬김이 묻어납니다.
가장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만들어두는 ‘72시간 긴급키트’는 이 사역의 심장부입니다. 이 키트에는 쌀, 즉석 반찬, 필수 생활용품과 함께, 반드시 위로의 성경말씀이 적힌 엽서가 포함됩니다. 육체의 양식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까지 나누려는 섬세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운영의 지속가능성은 연계에 있습니다. 함평교회는 지자체 푸드뱅크, 사회복지협의회, 학교 복지팀은 물론 지역 농협과도 긴밀히 협력합니다. 교회의 선한 의지가 행정의 전문성을 만나 시너지를 내는 모델입니다. 또한 재정 투명성을 위해 ‘요셉의 창고’ 전용 계좌를 운용하고 지정헌금과 현물 회계를 분리하며, 결과를 월례 보고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지난 1년간 수백 가구에 이르는 지역민에게 수 톤의 물품이 전달되었지만, 교회는 이 숫자 그 자체보다 이 모든 것이 신뢰와 관계가 낳은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나눔이 구조로 정착될 때, 그 구조는 공동체 내부의 권위적 관계를 동역의 관계로 재건하는 통로가 됩니다. ‘곡간지기 위원회’는 목회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리더들이 중심이 되어 창고 운영 전반을 책임집니다.
이 운영회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방성입니다. 회의록은 주보에 공지되고 누구나 회의에 참여하여 질문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지자, 교인들은 사역에 대한 영적 책임감을 되찾았고, 이는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공고히 했습니다.
봉사 현장에서는 세대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청소년들은 배달 앱을 방불케 하는 시스템으로 물품 목록을 관리하고, 장년들은 그 물품을 정성껏 포장하여 함께 배달합니다. 세대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의 역할이 인정되는 정서적 울림이 발생합니다.
농가 상생 구조는 관계 회복의 순환을 마을 전체로 확장합니다. 교회는 농산물을 선구매하거나 위기 시 공정 가격으로 매입하여 농가의 판로를 공동체적으로 책임집니다. 이러한 상호 돌봄 속에서, 한때 도움을 받던 지역 주민이 자신의 텃밭에서 난 작은 농산물을 창고에 기증하는, “주던 손이 받게 되고, 받던 손이 다시 주게 되는” 상호 순환의 기적이 실제 사례로 이어졌습니다. 물질적 나눔이 정서적 부채감을 넘어 함께 사는 연대감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회복된 관계와 투명한 구조는 자발성이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함평교회는 봉사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한 시간, 한 역할”이라는 소분화된 봉사 구조를 도입했습니다. 소분, 배달, 정리, 행정 등 부담 없는 역할 분담은 억지로 하는 신앙이 아닌 기쁨의 응답을 촉진하는 자발성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이 자발성의 에너지를 지속시키는 것은 피드백 루프입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는 봉사자들의 후기와 지역 주민의 감사 메시지, 현장 사진이 공유됩니다. 교회 게시판에는 물품을 받은 이들이 남긴 **‘감사 메모’나 ‘기도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 공유 문화는 헌신이 낭비되지 않고 공동체의 감격으로 돌아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줍니다.
자발성은 다음세대 교육으로도 연결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요셉의 창고 체험 주간’**을 통해 봉사에 참여합니다. 이들은 농가 돕기, 물품 포장, 배달 과정을 체험하며 노동의 존엄, 나눔의 기쁨, 그리고 은혜에 대한 자발적 응답으로서의 헌신을 삶으로 배웁니다. 교회 사역이 교육과 신앙 성장의 장이 된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요셉의 창고는 함평군 내 취약계층 수백 가구에 안정적인 양식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정성적인 변화는 수치를 넘어섭니다. 교회는 “도움을 받는 부끄러움이 줄고, 함께 웃는 시간이 늘었다”는 지역 주민들의 고백을 통해, 교회가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신뢰를 회복했음을 확인했습니다.
함평교회에 대한 외부 평가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지자체는 요셉의 창고를 모범적인 지역 상생 모델로 지정하고 협약을 확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단 내 우수 사례를 넘어, 교회가 공공 시스템의 한 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은 파급 효과를 낳았습니다. 함평교회는 인근 농촌 교회와 마을을 중심으로 **‘공공 곡간 연대’**를 구상하며, 이 모델을 지역 사회 전체로 확산하려는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나눔이 이제는 개교회의 사역을 넘어 지역 교회 간의 연합 사역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창고’가 완벽한 모델은 아닙니다. 나눔의 제도화는 필연적으로 행정적 리스크와 한계를 수반합니다. 물류 관리와 폐기율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교회는 이에 대해 냉장/건식 창고를 분리하고, 데이터 기반의 발주 시스템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또한 낙인 효과와 수요 불균형 문제도 성찰해야 할 지점입니다. 이에 익명성과 존엄성을 극대화하는 익명·예약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도입 중입니다. 재정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 상점 및 기업과의 공동 펀드 모델을 구축하여, 교회만의 부담이 아닌 지역 공동체의 책임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계입니다. 나눔의 제도화와 효율성 추구가 신앙의 생명력과 자발적인 기쁨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시스템은 사랑을 담는 그릇일 뿐, 그 그릇을 채우는 힘은 오직 은혜에 대한 응답에서 나와야 합니다.
“요셉의 창고”는 저장 자체가 생명 보존을 위한 신앙행위임을 증명합니다. 풍년의 축복을 독점하지 않고 흉년을 대비하는 요셉의 비전은, 오늘의 교회가 가진 자원(공간, 시간, 재능)을 이웃의 생명을 위해 비축하고 사용하는 신학적 책임감을 일깨웁니다.
이는 곧 사도행전의 나눔 공동체가 실천했던 원리, 즉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는 초기 교회의 정신을 현대 농촌 공동체에서 구현한 것입니다. 함평교회의 창고는 곡식으로 채워지는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채워지는 하나님의 곡간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필요를 채울 때, 세상은 비로소 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삶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함평교회의 “요셉의 창고”는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만났던 나눔, 회복, 자발성이라는 세 가지 원리가 구조 안에서 어떻게 상호 순환하며 공동체 회복의 엔진을 완성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집약된 모델입니다. 나눔이 회복을 낳고, 회복이 자발성을 부르고, 자발성이 다시 나눔으로 이어지는 이 역동적인 순환이야말로 “살아있는 교회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순환은 한 교회의 사역으로 멈출 수 없습니다. 이 에너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고, 더 넓은 영역에서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우리의 시선은 공동체 내부의 교육과 제자훈련의 구조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다음 회, 우리는 이 순환의 비전이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시스템으로 승화된 새로남교회의 이야기로 그 여정을 이어갈 것입니다.
함평교회의 ‘요셉의 창고’는 자선을 넘어 나눔을 구조화한 교회 모델입니다.
저장이 곧 나눔이 되고, 구조가 관계를 회복시키며, 신뢰가 공동체를 다시 세웁니다.
신앙이 시스템이 될 때, 교회는 사랑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힘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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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26화)는 새로남교회 — 다음세대의 신앙을 세우는 교회를 다룹니다.
사랑의 순환이 구조로 세워지고, 그 구조가 세대와 세대로 이어질 때
교회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신뢰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는 그 여정을, ‘신뢰를 제도화한 교회’ 새로남교회에서 계속 이어갑니다.
안녕하세요.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자료와 사례를 만나게 되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재의 목차와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정된 연재 일정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이 모든 과정은 더 나은 글을 선보이기 위함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