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이 닫히자 드러난 교회의 민낯, 그리고 새로운 길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2020년 2월, 이 땅에 낯선 전염병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가장 먼저 공포의 진앙지가 되었던 도시의 거리는 적막했습니다. 우리는 대구의 교차로에서 연신 울려 퍼지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기억합니다. 그 공포가 수도권을 거쳐 전국으로 번져나가던 순간, 유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배당의 문이 닫힌 것입니다. 주일 아침마다 찬송 소리와 기도 소리가 넘실대던 교회 건물의 불빛이 꺼지고, 수천 명이 모이던 자리에는 텅 빈 의자들만이 남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교회에 가장 잔혹하고 냉정한 시험대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교세와 성장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벗겨내고, 교회 내부의 공공성, 신뢰, 그리고 신학적 본질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의 문이 닫힌 것은 교회의 종말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웃의 생명 앞에서 새로운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시작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은 교회의 신학적 진정성과 공공성을 시험한 시대의 거울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는 2020년 2월 신천지 사태로 시작된 공포와 함께 한국 사회를 강타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종교 집회에 대한 집합금지 및 비대면 예배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은 2020년부터 2022년 엔데믹 국면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에 격렬한 내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방역 당국인 질병관리청의 2021년 발표 및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종교 시설 관련 집단감염 사례는 약 7,866명이었으며, 신천지 관련을 제외한 개신교 관련 확진자는 2,953명에 달했습니다. 숫자는 냉정하게 교회의 방역 실패와 공공성 부재의 단면을 드러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예수비전성결교회, 은혜감리교회, 사랑제일교회 등 특정 대형교회에서 연쇄적으로 감염이 발생하며 사회적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연이은 집단 감염 보도는 신자들조차 교회를 불안하게 바라보게 만들었고, 언론은 한국교회를 '코로나 진앙지'라는 오명을 덧씌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에 불복하고 대면 예배를 강행한 사례는 결국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고 (대전지법 등), 신앙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은 사회 전체의 피로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충돌의 핵심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와 "이웃의 생명을 지킬 책임"이라는 신앙의 의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딜레마가 놓여 있었습니다.
일부 교회는 정부의 방역 조치를 '정치방역'이자 '신앙 탄압'으로 규정하며 반발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배는 건물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고, 정부의 행정명령은 곧 믿음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았습니다. BBC(2021년) 등 국제 언론들은 한국의 일부 교회가 방역 지침을 어기는 모습을 보도하며, 종교가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헌법적 자유 담론에 집중하면서, 이웃 사랑이라는 공공선의 신학을 실천하는 데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신앙의 자유'는, 결과적으로 이웃에게 '감염의 공포'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신앙적 용기는 공동선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배타적인 권리 주장으로 변질되며 큰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급격히 붕괴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한국갤럽과 공동으로 실시한 2023년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응답자의 74%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답했으며,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16.5%로 타 종교 대비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신뢰 붕괴의 가장 심각한 징후는 '신앙'이 '정치적 이념'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극우화의 전조였습니다.
음모론과 정치적 적대: 일부 교회에서는 방역 당국에 명부를 제출하지 않거나, 확진 경로에 대해 거짓을 보고하는 비협조적 태도를 넘어, 음모론을 설교단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반백신 운동, QR코드 반대 운동, 전염병 배후설 등이 설교와 회중 기도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설교와 기도의 변질: 목회자들은 팬데믹의 불안을 '믿음의 투쟁' 서사로 전환시켰습니다. 설교문에는 "이 사태는 믿음의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한 마귀의 역사다", "정부가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적대적 언어가 넘실댔습니다. 회중 기도는 "하나님, 이 나라를 이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소서. 교회를 탄압하는 세력을 물리쳐 주소서"라며 정치적 적대자를 향한 배타적인 정서로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기도와 언어는 팬데믹의 불안을 신앙의 투쟁 서사로 전환하면서 정치적 적대의 언어를 신앙의 언어로 변형시킨 명백한 전조였습니다. 이 시기, 신앙과 이념이 결합하는 극우화의 씨앗이 교회 안에서 비옥한 토양을 얻으며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아닌 정치적 적개심이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다수의 교회는 조용한 헌신을 이어가며 십자가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주류 교회들과 달리, 수많은 작은 교회와 교단에서는 ‘소리 없는 예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선별진료소로 내어준 예배당: 서울의 영락교회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많은 교회들은 주차장과 예배당 건물을 선별진료소나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기소로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교회가 건물의 위용이 아닌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언이었습니다.
드라이브스루 구호 키트와 돌봄: 청년부와 장년부 성도들은 대면 모임을 멈춘 대신, 마스크와 생필품, 손수 만든 도시락이 담긴 '드라이브스루 구호 키트'를 포장하며 이웃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자가격리자 돌봄 전화와 홀몸 어르신 안부 확인을 위한 조직적인 네트워크도 가동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화려한 대형 부흥회가 아닌, 전화 너머의 작은 기도와 골목길의 조용한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의 예배'였습니다.
교단을 초월한 연대: ‘코로나19 교회연대*와 ‘함께 걷는 교회’와 같은 교단을 초월한 협력 네트워크가 등장하여, 재정적으로 취약한 농촌 및 소형 교회를 돕고 구호 물품을 나누는 연대의 신학을 실천했습니다. 이 작은 교회들의 따뜻한 실천은, 공동체의 본질이 건물이라는 형식이 아닌 관계와 사랑에 있음을 온몸으로 증언했습니다.
팬데믹은 신학계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뜻하는 '키리아케(Kyriake, 주님의 것)'가 아니라, '불러냄을 받은 모인 자들'을 뜻하는 에클레시아(Ekklesia) 임을 다시 상기해야 했습니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예장통합 등 주요 교단은 비대면 예배를 '비상상황의 임시 대안'으로 인정하는 신학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2020~2021 공식 문서 요지). 이는 공동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성찬의 비대면 시행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유지하며 공동체 단절의 신학적 위기를 깊이 인식했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신앙의 디지털 빈곤이었습니다. 도시의 대형교회들은 고가의 장비로 온라인 예배를 송출했지만, 노년층이 많은 농촌 교회와 재정적으로 취약한 소형 교회들은 디지털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예배가 완전히 단절되는 고립을 겪었습니다. 팬데믹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양극화와 소외가 깊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냉혹한 계기였습니다.
팬데믹은 교회의 재정 윤리도 시험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성도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일부 교회는 수백억 원 규모의 새 성전 건축 헌금을 멈추지 않고 유지하려 했습니다. 반면, 일부 깨어있는 교회들은 당장 쓸 수 있는 건축 적립금을 해제하고, 이를 실직자 생계 기금이나 소상공인 임대료 감면에 긴급 전환하는 윤리적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돈'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내세웠던 헌금이, 공동체의 고난 앞에서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공공성의 윤리는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사용처에 대한 신앙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엔데믹 이후 한국교회는 새로운 균열과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교인 출석률과 헌금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으며, 공동체성 붕괴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대신 소수의 핵심 신앙층은 더욱 끈끈해졌고, 온라인을 통한 돌봄 사역 확산으로 새로운 교회 모델의 가능성도 재확인했습니다.
교회는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문을 닫는 기관'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소수의 희망의 불씨들은 교회가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틈 속에서, 신앙을 정치적 이념으로 오독하는 움직임이 자라나고 있음을 경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닫은 문이 사랑의 문이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된 명령이 아니었다"는 복음의 본질을 잊었습니다.
교회의 문을 닫고 이웃에게 감염의 공포를 안겨준 저희를 용서하소서
탐욕과 이념에 갇혀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십자가의 돌봄을 외면한 우리의 죄를 회개하오니
다시 광장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로 인도하소서.
11화. 이념의 제단 – 극우화된 교회와 진리의 실종
팬데믹의 혼란과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설교의 언어는 이념의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11화는 '극우화된 교회'—진리 대신 정치적 이념을 설교로 삼고, 배타적이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광장에 선 시대를 다룹니다. 신앙이 배타적인 정치 집단의 언어가 되는 과정, 그리고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겪게 되는 최종적인 신뢰 상실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추적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