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신앙, 복음이 사라진 자리
“언제부터 우리는 예수께 금관을 씌워 권력의 보좌에 앉혔는가?”
한국교회의 80년 역사를 회개의 눈으로 추적합니다.
십자가의 길 대신 권력과 번영의 길을 걸어온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금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는 여정을 함께 시작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시험하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의 결과는 단순히 방역 실패나 공적 신뢰 상실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의 문이 닫히고 공동체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교회는 복음의 자리를 이념의 연단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우리는 2020년 이후 한국 사회의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국가주의적 구호, 반정부적 선동, 그리고 노골적인 정치 연대 설교를 기억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 잔혹한 위기 앞에서 용서와 사랑의 언어를 상실하고, 분노와 적대의 언어로 무장했습니다. 신앙의 투쟁은 곧 정치적 진영 논리의 투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진리는 특정 정당의 선언문으로 대체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신앙이 왜 진리보다 분노를 택했습니까? 이 질문은 한국교회가 21세기 초에 직면한 가장 심각한 신학적, 윤리적 파산의 증거이며, 우리가 회개해야 할 원죄의 기록입니다.
팬데믹의 혼란기였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교회 일부에서는 설교와 회중 기도의 언어가 급격히 변화하는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사 비판을 넘어선, 신앙의 본질을 뒤집는 신학적 전도(顚倒)였습니다.
설교는 점점 더 종말론적 적개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악한 세력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선언은 방역 당국이나 정부를 향한 직접적인 비난이었으며, “하나님, 좌파 정권으로부터 교회를 지켜 주소서”라는 회중 기도는 공적인 예배를 노골적인 정치적 기도회로 변질시켰습니다. 전염병의 고통은 “이 모든 것은 믿음을 흔들기 위한 마귀의 역사다”라는 음모론적 종교 심리를 통해 손쉽게 신앙의 투쟁 서사로 전환되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적대의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의 핵심 가르침 대신, '적과 싸워 승리하라'는 진영의 선언문이 설교단을 지배했습니다. 이념적 선언문이 울려 퍼질 때,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했고, 그 웅성거림과 광기의 목소리는 성전의 경건함 대신 정치적 결사대의 외침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예배는 성경적 진리를 회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치적 투쟁을 위한 결의를 다지는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진영의 확성기'가 되어버린, 비극적인 징후의 기록입니다.
이러한 이념적 담론의 확산은 물리적인 ‘교회의 광장화’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목회자들과 교회는 예배당을 뛰쳐나와 정치적 선동의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반방역 시위, 선거 동원 등의 활동에 참여하며 교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공공성과 도덕적 중립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정치 목사’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의 발언은 교회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적 극단성을 표출했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문재인은 주사파”,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정권”과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복음적 예언자성을 완전히 저버리고 노골적인 정치적 선동을 자행했습니다.
이러한 극우 네트워크 구조(사랑제일교회, 자유연대, 일부 보수 언론)는 한국 개신교의 한 축을 형성하며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기는커녕, 혐오와 적대의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사회적 갈등의 진앙지가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아닌, 이념적 전사들이 광장에서 신앙을 외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극우화의 본질은 진리의 하나님을 이념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인 '정의와 사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가와 반공(혹은 반정부)'이라는 세속적 이념이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신앙의 정치도구화가 완성된 양상이었습니다.
“기독교적 애국심”이라는 미사여구 아래 우상화된 국가주의가 신앙의 제단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배 중 특정 정치인 이름을 부르며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설교, 그리고 특정 정당에 대한 헌신을 신앙적 의무로 규정하는 행태는 '진리의 종교'가 '이념의 종교'로 타락한 신학적 경로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반지성주의와 음모론적 종교심리를 먹고 자랐습니다. 진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이성적 성찰 없이,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는 단순하고 단정적인 구호가 영적인 권위를 얻었습니다.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는 복음적 보수가 아니라, 혐오를 외치는 정치적 극우로 변질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반공을 복음으로 삼았던 원죄(3화)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혐오의 정치로 재현된 것이며, 신학적 파산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모독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념화된 신앙의 광장화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뜨렸습니다. 202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한국갤럽과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16.5%에 불과했으며, 응답자의 74%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신뢰 상실은 단순히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파산의 결과였습니다. 1980~90년대의 세습과 탐욕이라는 구조적 부패 위에, 팬데믹 이후의 이념화된 설교가 결합되면서 교회는 완전히 도덕적 나침반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세속 사회는 교회를 향해 냉소적인 비판을 던졌습니다.
“복음보다 정치가 더 중요해진 교회”, “하나님의 이름을 빌린 정당의 사무실”이라는 비판은, 한국교회의 정체성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현실이었습니다. 교회가 잃은 것은 건물도, 헌금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진리의 권위와 공동선을 향한 책임이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광장의 이념에 매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예언자적 저항을 이어가며 진리의 언어를 지키려 했습니다.
이들은 “복음은 진영을 초월한다”고 선언하며, 신앙의 정치도구화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비폭력, 사회적 연대, 약자 돌봄을 실천한 교회들은 교단과 세대를 아울러 진정한 에클레시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예수살기 등의 단체는 이념화된 주류 교회를 향해 성서적 정의를 외치며, 교회 내부에서 '진리의 회복'을 위한 작은 개혁운동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들의 조용한 헌신은, 배타적 극우가 아닌 포용적 복음주의의 가능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빛이었습니다.
신앙이 정치에 복무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진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섬기는 이념의 우상이 됩니다.
극우화의 본질은 신학적 배교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용서를 버리고 정치적 적대를 택한 죄이며, 신앙의 이름으로 이웃을 혐오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킨 교만의 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의 하나님을 다시 고백하라”**는 근본적인 요청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닫은 문이 사랑의 문이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복음의 이름으로 분노를 전파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진리를 이념으로 바꾸고, 사랑을 적대로 만든 교회의 교만을 꺾으소서.
다시 십자가의 겸손으로, 세상의 고통을 품게 하소서.
다음 회 예고
“12화.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다시 배우다”
신앙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로 오염된 이후, 교회는 영적 실어증(失語症)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곧 사랑, 공의, 용서의 말을 세상에 전할 힘을 잃었습니다. 다음 12화는 교회가 진리로 돌아오는 길의 첫걸음을 예고합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어떻게 다시 배우고 회복해야 하는지 그 여정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