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의 찬비 내리고

시인의 마음 따라잡기 : 함께 읽는 좋은 시

by 여운

시인의 마음 따라잡기...

나희덕의 "찬비 내리고"를 다시 한번 꺼내 읽어봅니다.


찬비가 내리는 날은 문득문득 그의 시가 떠 오릅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시들은

그냥 아련하고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정갈하고 깔끔합니다.

우선, 그의 서시를 읽어 봅니다


序時(전문)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이리 짧은 몇 줄의 글로 자신의 글을 쓰는 이유를 간명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표현하고 맙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에 불도 제대로 지피지 못한 자신의 글을 혹독히 비판하면서.
거기다가 무성한 연기만 내는, 어쩌면 요란한 치장과 가식만 있다고 자신의 시를

혹독히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군불이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라는 한마디의 말로

그 작업이 자신의 업보이고 필연이며 자연현상임을 부끄럽게 밝힙니다.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 시인의 부족과 치기를 읽는 게 아니라.

성실과 겸허와 그의 시작에 대한 밝은 미래를 읽고 맙니다.

그래서 저 시의 제목이 서시 인가 봅니다.


나희덕은 단 몇 줄로 그의 마음을 열어 보일 줄 아는 시인입니다.
오늘은 그의 찬비라는 글을 읽어 봅니다.


찬비 내리고 - 편지 1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우선, 이 글을 읽어 보십시오.
다시 한번 소리 내 읽어 보십시오


꽃송이들이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세 번씩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읽는 순간 아파서 절규하는 아픔이 아니라 참고 참고

또 참는 애잔한 아픔을 줍니다. 아프다고 세 번씩이나 말하지만

조금도 과장 없이 참고 참아 말하는 낮은 목소리로 읽힙니다.
왜일까요? 그 뒤에 이어 나오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이 고백 때문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픔의 원인은 꽃이나 자신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바로 첫 행에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란 말에서

그 아픔의 원인은 우리 임을 밝혀 놓았습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작으나마 통증을

잊는 것 같습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배설합니다.

그런데. 저 꽃들은 찬비에 젖어서 겨우 참고 참고 참아 낮은 목소리로

아프다고 합니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단지, 당신이 힘드실까 봐..." 이것이 나희덕의 맘인가 봅니다.

물은 떨어져서 아래로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밤새 난간을 타던 빗방울도

아파도 말 못 하는 자신처럼 공중에 매달려 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 떨어질 저 작은 빗물의 방울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매달림은 저리도 눈부 시다고 합니다.

비 온 후에 물방울이 난간에 맺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시인은 보았나 봅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눈부심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니 차마 떨어지지 못하는

그 무게(고통, 아픔)로 저리 눈부 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몸부림들이 떨어지지 못하는 아프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결국은 허사임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자신을 매달고 있는"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까지만 봐도 이 시가 갖는 절절함 혹은, 애틋함은 극에 달합니다.
찬비에 꽃송이들은 겨우 아프다 아프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힘드실까 봐 아프다 말도 못 합니다.

그것도 내일이면, 분명히 지고 말 꽃 한 송이임에도.. 난간에 분명히 떨어지고야 말 저 빗방울도

당신이 아파할까 봐 떨어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시인의 맘인가 봅니다.
여기 까지만 해도 충분히 애틋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리 말합니다.
그 순간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 지기 직전에 참다 참다 말하는 꽃송이들의 아프다는

말을 할 그때가 꽃송이의 내지르는 향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 몹시 앓을듯한 예감의 순간이라 합니다.
어떨까요.. 아파도 아파도 말 못 하고 스스로 죽어 가는 고통 그 순간,

그것은 자신이 몹시 앓을 것 같은 예감이면서 동시에 그 꽃이 지기 직전에 만드는

어쩔 수 없는 향기라고 말합니다.

여기 까지만 읽어도 우리는 시인의 맘을 짐작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지막 한마디로 저 시인의 속을 우리는 훔쳐보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아플까 봐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절정의 향기..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저 시인의 맘과 향기에 취해 버립니다.


내지 않으려 내지 않으려 참고 참아도 새어 나오는 향기....

찬비 내리고에서 나는 엄청난 향기입니다.

또,, 주절주절 말로서 좋은 시를 한편 버려 놓는가 봅니다.

나도 저런 향기에 취해 보고 싶습니다.
향기에 취해서 죽어버린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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