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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Feb 28. 2020

2.28을 아십니까?

2.28 기념탑을 기억하며  - 2020.2.28 지금 대구. 단상 

올해는 2.28 학생의거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구에는 명덕로터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로터리가 아닌 명덕네거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곳.


이곳에는 1989년까지 로터리 중간에 커다란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28 학생의거 기념탑

기념탑은 의거 다음 해 대구시민의 성금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이 길을 지날 때면  커다란 조형물이 왼쪽에 서 있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다니던 학교의 정원에도 기념조형물이 작게나마 서 있었으며, 

이런 전통을 지닌 학교의 후배임을 자랑스레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이곳에는 2,28 기념사업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억을 조금 더 이어가자면

이곳은 1987년 민주항쟁에서도 항상 이곳을 지나 반월당을 향해 시위는 이어졌으며 

집회의 출발 거점이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1960년 2.28일 경북고등학교를 비롯한 대구시내에 있던 7개 국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가 내려집니다. 등교의 사유는 황당하게도 토끼 사냥, 영화 관람, 중간고사 실시 등 다양하고 어처구니없는 사유까지 있었습니다.

 사실은 3,15일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 정,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유세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당국에서 등교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당시 결의문중 일부



이날 경북고등학교 학생부 위원장을 비롯한 지역 고등학생들은 시위를 조직하고 오후 1시 학생 800명이 시작하여 많은 학생들이 합류하며 1,200여 명이 대열을 이루어 대구 반월당을 거쳐 구.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 당사를 돌며 시위를 벌인 사건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초의 민주운동이며 3.15 마산의거와 4.19의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자유당 독재, 그리고 영구집권의 야욕을 드러내는 그들의 온갖 악행에 고등학생이 제일 먼저 앞서 일어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대구 민주주의의 유산은 이후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정권을 잉태한 고향이 되어 찬란했던 저항과 민주의 기억이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이 기념탑도 두류공원 한편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이 곳으로 자리를 옮긴 기념탑은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기념탑이지만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느껴집니다.


평상시 대구시민은 이 기념탑이 이곳에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어릴 때 교정이 성장한 후에는 너무 작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이 기념탑은 반대입니다.

어릴 때 오가며 보던 기념탑은 

키다리 아저씨 같이 한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다리처럼

크지만 친근했었습니다. 

기념탑이 앞뒤 없이 로터리의 사방에서 시원하게 보이던 탓도 있었겠지요.

사방이 뻥 뚫린 네거리, 낮은 건물들을 배경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던 그곳을 지키던

등굣길과 하굣길, 출근길과 퇴근길을 지켜주던 어린 시절의 

기념탑.


이제,

낮은 언덕을 등지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지닌 채

화강암 돌계단을  밟아야만 올라갈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기념탑은

권위와 위엄을 장착했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구는 기념탑이 권위와 위엄을 장착했듯이

그날 의거의 주역들은 

또 다른 권위와 위엄을 지닌 채 한 시절을 풍미했습니다.


의거의 주역의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오히려 시대를 억압했습니다.

시대와 타협하고 오히려 독재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코로나 19는

대구를 모른 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맹렬한 기세로 우리의 일상을 파괴합니다.


대형마트 앞에 마스크를 얻기 위해 우리를 줄 세우고 있으며

기성교회의 예배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인을 두고 분열과 대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병이 창궐하던 시대에도

항상 피해는 민중이 홀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주일을 빼앗긴 교회와 

마스크 하나를 위해 거리에 긴 줄을 서는 대구시민들

이 혼란이 잠잠해지는 그날


민주를 위해 앞장섰던 우리들이

가장 해묵은 꼰대들이 되어

언덕과 계단을 배경으로

외로이 우뚝 선 2,28 기념탑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대구를 향한 

위로와 따스한 시선을 마음에 품고 

복잡하지만 앞뒤가 다 드러난

대로에 우뚝 선 옛날의 기념탑처럼

시민들이 함께 행복한 

대구가  되기를 

기도해 보는 밤입니다.


모두의 평안을 다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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