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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Mar 04. 2020

1993년의 나를 만났습니다

해 묵은 시집 속에  결빙된 청춘

흔히, 7,80년대를 시의 시대라 불렀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폭정 속에 

지식인들은 말을 잃어버리고

결국, 상징과 은유로 시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같습니다.

김지하의 " 타는 목마름으로" 양성우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같은

당시의 절시들은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위안이 되었습니다.

'민음사'  '창작과 비평'그리고 '문학과 지성사'가 각각의 시선으로

다양한 시집들을 연이어 내어 놓던 시의 시대.


문학도 87년을 기점으로

열린 정국 속에서 소설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서점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소설 속에서 제대로 만나기는 처음이었던 시절이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소설의 전성기는 90년대를 거쳐 2000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미디어의 영역으로 문학 자체의 주도권을 넘기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말의 한계가 없고

정보의 진위가 불분명한 무차별적인 정보의 시대에

오히려 시가 읽히던 시대

서점에  줄 서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정보의 접근이 너무나 쉽고 용량의 한계가 무너진 지금

알차게 은유하고 상징하던 시절의

옹골찬 시들이 그리워집니다.






책장을 뒤지다가

1993년 읽었던 시집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91년 김수영문확상과 소월 문학상을 수상했던 조정권 시인의 "산정 묘지"

30여 편에 걸친 '산정 묘지 연작시'들은

당시 기억으로는 매천의 절명시처럼 머리를 쨍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던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조정권의 "산정 묘지 1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장장 다섯 페이지에 달하던 그의 시를 통해

단호하고 엄정하며. 절절한 기상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집의 마지막 여백에 적힌

나의 푸르디푸른 날의 습작시 한 편



나의 푸른 날도 거기

결빙되어 있었습니다.


치기와 부끄럼도 같이 결빙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밤은 그 부끄럼을 되살리며

발그레 부풀어 오른 가슴을

부어 잡고 잠자리에 들렵니다.


봄날이 오면

나의 오래된 결빙도

기지개 켜며 긴 동면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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