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를 추억하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 풍장 그리고

by 여운

시인 황동규를 추억하다.


1938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황동규는 온 가족이 달구지를 타고 1948년 월남을 합니다. 전쟁 중 대구, 부산으로 피난을 다니던 그는 껌팔이를 하면서 윤동주와 김소월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웁니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아들이자 베토벤과 바그너를 사랑했던 그 아이는 자라나 18살이 되던 해

한 살 연상의 연인에게 연가를 씁니다.

그 시가 바로 그 해 현대 문학지에 발표한 그의 데뷔 작품 " 즐거운 편지 "입니다.





즐거운 편지

황 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1958년 18세 고등학생의 작품이라 생각해 보면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어린 청춘의 애틋하지만 깊은 사색, 결코 속이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푸르디푸른 사랑의 결기를 읽는 순간

"아! 참 예쁘구나 " 되뇌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황동규의 시를 처음 만난 것은 " 삼남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였습니다.

1975년 발행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삼남에 내리는 눈

황동규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땅의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처음 만난 그의 시 " 삼남에 내리는 눈"

'봉준이가 운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

당시 시대적인 상활과 맞물려 유신시대와 80년 광주를 지나는 동안 조그마한 은유나 비유에도 감정을 이입하던 젊은이들은 전봉준을 불러내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나누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준이와 함께 우는 시대'를 같이 은유하고 민중의 삶을 같이 안타까이 여긴다 생각하며 그의 시집을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삼남에 내리는 눈"을 통해 그가 통속한 연애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짐짓 그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기대 어린 시선을 감추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84년에 발표된 "풍장"을 통해 시인은 현실 세계에서 발을 떼어 놓기 시작했고 '바람이불 처럼 덥고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 달라 이야기할 때 저는 시인을 놓아주었었습니다.

풍장을 이해해 주기에 시대는 너무나 절박했고 시절은 너무나 수상했습니다.

더 이상 연애시는 아니지만 바람 뒤로 사라진 혹은 숨어버린 황동규 시인을 추억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풍장(風葬)·1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그리고 한 동안 황동규라는 시인은 나의 머릿속에서 뒤로 뒤로 밀려나 기억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독서는 절절한 노동시와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글들을 읽기에도 너무나 바빴고 그가 말하는 극서정시를 천천히 곱씹으며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기에 너무나 팍팍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얄팍한 독서의 끝은 황동규 시인의 풍장 이후를 같이 나누지 못했습니다.

'말의 뼈를 보여준다'라고 이야기되는 "미시령 큰바람"도 읽어 보지 못했고,

초창기 그의 시를 점령했던 겨울과 눈, 바람이 미시령의 큰 바람에서 어떤 게 익어왔는지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 는 " 즐거운 편지"를 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겨울을 이야기하고 눈을 이야기하고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는 눈길을 걷기를 마다한 적이 없었으며 바람 속에 몸을 내 맡기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즐거운 편지 중



그는 윤동주와 김소월을 읽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밤이 들어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할 때도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지금까지 한결같이
'그때의 기다림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월을 건너 다시 황동규를 꺼내 읽습니다.


내가 황동규를 읽는 것 역시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사소한 일일 것이" 분명하겠지만


나 역시 황동규가 보았던 추운 겨울과 눈발, 바람을 다시 꺼내 덮으며

내 배경에서 해가지고 뜨는 사소한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내 가슴의 불꽃도 항상 불어오는 바람이나 눈발 속에 반드시 그칠 것을 알지만

기다림의 자세을 다시 곧추세우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나도 황동규를 보면 시 한 편 다시 쓰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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