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념식의 품격

'영웅에게' 6.25 70주년 기념식을 다시 본다.

by 여운

어린 시절 기념식은 지겨움과 의무로 기억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교정에서 진행되던 아침 조회보다 더 딱딱하고 더 지겨운 행사. 국경일에 기념식 때문에 학교로 불러나가는 날은 휴일을 온전히 빼앗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늦잠이 사라진 휴일은 휴일이 아니었으므로.


현 정부 들어 국가 기념식과 행사들이 달라졌습니다. 국가기념식을 생중계로 끝까지 보는 것은 물론, 가끔은 유튜브에서 전체 영상을 찾아서 보기도 합니다. 지난해 판문점 행사가 그러했고 국군의 날 행사가 그러했습니다. 살다 살다 국가기념일 행사를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처음이라는 이야기들이 들렸습니다.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권위적인 대형 중앙무대와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제복을 입은듯한 꼿꼿한 행사들에 파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식적인 국가기념일 행사가 야간행사로 진행되기도 하고 무대가 사라지거나 낮아졌습니다. 혹은 의외의 장소에서 행사들이 진행되기도 하고 지겨운 의례들이 달라졌습니다.


권위주의 국가는 국가행사를 통해 국민을 우민화시켰습니다. 국가의 권위를 앞세워 권력의 힘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행한 국가의식의 격식과 권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롯이 그 전통을 이어받은 군사정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권위와 권력의 확인 과정으로 봉사한 국가기념식, 각종 행사들은, 그 행사를 준비하다 빈혈로 쓰러졌던 기억, 국군의 날 기념식을 위해 몇 달씩 연습에 연습을 거쳤던 기억들만 오롯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국가행사는 세월이 흘러 '낭만'으로 왜곡되기도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방직공장으로 줄지어 출근하는 여자들의 행렬, 군수공장에 군대식 정렬의 모습들을 극우주의자들이 '낭만적 제국주의'로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의전서열이라는 것이 지금도 존재합니다. 시골의 작은 읍, 면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에도 그 동네의 의전서열이 존재합니다. 군의원과 은행장과 소방서장 보건소장 농협조합장의 서열과 순서가 있습니다. 주빈의 자리와 서열에 따른 자리배치가 정해집니다. 축사나 기념사와 같은 주요 순서는 서열과 위상에 따라 정해져 있습니다. 이 것이 흐트러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행사는 철저히 준비 주체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참여자에 대한 배려는 처음부터 없습니다. 순식간에 비라도 온다면 시장. 국회의원의 머리 위로 검은 우산이 순식간에 씌워지지만 객석에 우산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나 역시 공연 연출자로서 몇몇 국제행사 오프닝 세리머니와 다양한 공연 연출을 경험했지만. 국가의전 행사처럼 제약과 검열이 많은 것은 없었습니다. 연출자가 아무리 새로운 연출적 기교를 준비한다 하더라도 수많은 결제의 담을 넘어 위험을 내포한 새로운 연출 방법을 승인해 줄 리가 없습니다. 관이나 국가가 관련된 행사는 윗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사고가 없는 것이 제일 잘한 연출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 중에 대형 공연장에서 이루어진 전국 행사의 오프닝 세리머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있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연출을 짠 적이 있습니다. 결국, 해당 '시'에 담당자에게 그 부분의 연출안을 누락하고 보고했었습니다. 다행히. 리허설대로 비둘기들이 무대 중앙에서부터 객석으로 순조로이 비행을 마쳤고, 관계자들로 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장님의 머리 위로 비둘기 한 마리라도 불순한 비행을 했었더라면 그 결과는 지금도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만큼 '행사'라 불리는 국가기관이 관여하는 공연은 제약이 심합니다.


TV를 통해 비치는 백악관 잔디밭에 자연스러운 행사들과 부드러운 행사들을 보며, 혹은 메모리얼 파크의 추도식, 유럽 종전기념일을 즈음하며 시민들의 가슴에 자연스레 달려 있던 '양귀비꽃'을 보면 참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저것이 선전국이구나.



지난 정부 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의 경우, 사전 보안의 과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마지막 리허설을 앞둔 마지막 점검에 대형 스피커의 위치를 옮기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하기도 합니다. 행사의 내용과 순서 등은 준비하는 주관부처 혹은 지방정부에 따라 수십 번 수백 번 의전서열에 문제가 없는지. 불안의 요소는 없는지 점검에 점검을 합니다. 물론,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검과 결제와 검열을 거치고 나면 결국 행사는 '너무나 평범하고 안정적인 의식'으로 전락하고맙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의 막강한 폭력적인 권위는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검열과 검열을 거치고 나면 식상하고 틀에 박힌 의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원수가 참여하는 행사에 이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장소를 옮기고 야간으로 시간을 옮긴다는 발상 자체가 이전 정부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입니다.

의전행사라는 용어가 의미하듯이 거의 모든 국가행사 특히 국가수반이 참석하는 행사는 의전행사였으며 마치 꽉 끼는 제복처럼 저녁뉴스에서 대통령의 스피치를 요약해서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정권의 행사는 관습과 의례를 걷어내고 감동과 국가 자존심을 채워 넣었습니다.

정치적인 요식행위였던 국가기념식을 행사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도록 연출하고 기념의 주인공을 무대의 중심으로 불러냈습니다. 귀환하는 영현을 기념식의 중심으로 모시고 예우하고, 그 과정을 통해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말할수 없는 자긍심이 생깁니다.

정치적인 요식행위에서 예술적인 세리머니가 있는 행사로 바꿔놓았습니다.

굴종과 권위를 요구하는 국가행사에서 주체적으로 감정을 주고받는 예술적경지로 바뀌 놓았습니다. 기념식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행사의 중심이 권위적인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뀐 것입니다.

국가행사의 품격이 비로소 생긴 것입니다.

국격.





그러나. 연출은 과하지 않습니다.

드론의 퍼포먼스는 충분히 절제되어있고, 딱 필요한 만큼만 드러납니다. 비행기에 새겨진 영상도 천박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비행기에서 영현들을 모시고 단상에 올려놓는 그 순간까지 윤도현의 노래는 정확한 시간에 맞아떨어졌습니다.

구순의 노병이 영현들을 대신하여 '귀환 신고'를 하는 순간 울컥한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좋은 공연은 감동과 자존감을 회복시켜줍니다.


불과 몇 년 전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상들은 틀딱. ~~ 충이라 서로를 일컫던 '혐오'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금수저, 흙수저라 서로를 비하하며 한없는 나락으로 자존감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먼길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참전용사의 손자인 전투기 조종사의 호위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영공으로 70년 만에 귀환하는 장면.

5.18 기념식 현장에서 예정에 없는 대통령의 포옹을 받는 피해자의 자녀. 4.3 기념식을 통해 비로소 수십 년의 한을 풀어놓는 자손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화해하고 용서하고 같은 국민 같은 민족임을 뿌듯해했습니다.

바로 국가기념식을 통해서.


가장 정치적인 것은 가장 예술적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감동으로 이끄는 국가 행사. 국민의 묵은 감정을 풀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국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모습 맞습니다.


정치는 우리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묵은 원한을 풀어주고 공동체의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기념식을 통해 국민의 묵은 원한이 풀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예술을 이해하는 정부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탁현민의 귀환이 반갑습니다.

더불어 8.15 기념식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은 저만이 아닐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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