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로 읽는 한국 문화사

지극히 주관적인 세대의 기록

by 여운

한세대는 보통 30년을 일컫습니다.

평균 수명이 낮은 과거에는 어쩌면 30년정도가 한 인간이 생산력을 지니는 기간인 것 같습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의 기간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러한 세대의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인간의 생산력을 지니는 기간은 짧게 잡아도 20대부터 60대 중반까지는 거뜬해 보입니다.아니 최근에는 70세 이상 까지도 생산력을 지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길어진 활동기간과 달리 시대의 주요 동력의 변화는 30년이 아니라 20년 혹은 10년 미만의 싸이클로 낮아졌습니다.

인간의 활동기간은 길어지고 시대는 빨리 바뀌고 세대의 이전 혹은 변화의 발목을 붙드는 주요한 이유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지금 한 사이클이 12년 주기쯤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다 보면 한 세대를 대표하는 연령들이 존재합니다.

58년 개띠가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함께

입시제도를 바꾸고 한국사회의 주역으로 자리 잡던 세대.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82년생 김지영이 사회를 흔들었습니다. 그녀 역시 개띠였습니다.

한국사회에 개띠는 어떤 의미 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개띠로 상징되는 세대의 특징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풀어봅니다.




성공의 법칙 58 개띠


철이 들어가던 시절 전설처럼 이야기되던 세대가 있습니다.

1958년생, 그러나 어느 누구도 1958년생으로 불러주지 않습니다.

오팔 개띠.


58년생 개띠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 나이로 올해 64가 됩니다. 사회에서 은퇴를 시작했으며, 공무원들은 이미 은퇴를 맞이했습니다.

영욕의 한세대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아무도 은퇴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방식대로 또다시 그들의 영역을 넓히며 정년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은퇴를 용납할 수 없는 '하면 된다'세대이기 때문입니다.


58년생은 소위 전쟁이 끝난 후 안정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급작스레 출산이 늘어났습니다. 58년생들은 그들의 머리 숫자로 모든 것을 바꾸어 나갔습니다.

그들이 입학을 시작하자 국민학교는 수용인원의 한계를 감당하지 못해 58년생을 맞이할 때 즈음이면 학급당 인원이 80명에 가까웠고 대도시의 국민학교는 한 학년이 15반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후반, 심지어 3 부제 수업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대한민국의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시기가 되자 본격적인 학교 수업을 수료한 양질의 고급 노동력이 대규모로 쏟아지는 한국 경제의 활황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면 된다의 신화의 주역들. 가장 친구들이 많고 가장 동창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포항제철의 용광로 건설을 목격했고, 현대의 서산만 방조제가 만들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은 길이 열렸습니다. 성공 세대


물론, 그들이 그냥 지나는 파도에 엉겁결에 올라탄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특유의 경쟁과 노력으로 시대변화 조차 극복해 냅니다. 수기로 서류를 작성하던 그들은 타이프라이터를 곧 정복했고 워드프로세스를 거쳐 컴퓨터로 한글을 극복해냅니다. 한컴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통해 타이핑 숫자를 늘리고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퇴근 후 배우고 익히며 극복해 넘어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승리의 전리품 스마트폰이 당당히 들려져 있습니다.


제대 후 집안을 빈둥대던 58년생은 '할 일 없으면 공무원이나 하라'는 어른들의 호통에 못 이겨 자전거에 삽을 들고 면사무소로 출근했고, 그들은 4,5급 공무원으로 퇴역했습니다.

그들은 밤을 낮 삼아 일했고, 그들이 땀 흘린 만큼 사회는 성장했고, 그들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바뀌고 승용차로 바뀌었습니다. 그에 따라 아파트의 평수는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금 은퇴가 두렵습니다. 성공하며 이기는 법에 익숙한 그들은 아직도 일이 고픕니다.

세대교체가 두렵습니다. 아직도 체력은 무궁무진하고 경험은 아직도 극대치에 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고민은 든든히 일생을 떠 받쳐 오던 가정과 가부장제가 흔들리고

자녀들이 그들의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일을 잃은 그들은 외롭습니다.



봉인해제된 70 개띠


90년 학번 세대입니다.

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컬러티브이가 방송되고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소비문화가 열리기 시작했고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열린 시국은 보다 그들은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91년도에 발매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언제나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노래했습니다.

소위, 야타족과 오렌지 족들은 대부분 70년 초반의 나이들이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본격적으로 나뉘고 강남에 천박한 물질이 모여들던 시절 70 개띠는 어쩌면 그러한 세대를 대표합니다.

58 개띠가 다 같이 가난한 집단들이었다면

70 개띠는 소위 때깔이 달라집니다.

해외유학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포르노가 밀려드는 시기입니다.

겪을 것을 다 겪은 그들은 노련합니다.

정의를 위해 겁 없이 덤벼드는 것은 생각 좀 해봐야 한다고 느끼기도 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균형 잡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세상에 적응한 처음 세대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82 개띠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세대입니다.

70 개띠에게 가부장적 규범이 아직은 익숙하고 안전한 장치라면 82년 개띠에게 가부장제도는 억압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87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민주는 사회 곳곳에 산재한 노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눈을 돌립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을 받고 자라난 82년 개띠에게 어머니의 헌신과 여성의 사회적 차별은 마지막 남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억압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은 7,80년대 민주운동, 여성운동과 궤를 같이 했었지만, 82년 개띠들에게 과거는 어쩌면 건너야 할 악습일 따름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은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사회에 아직도 불편함을 못 느끼지만, 예민함으로 하나하나 불편해지는 그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일어나는 저항과 상처, 누대에 걸쳐 혹은 인류사 전반에 걸쳐 지속된 성에 대한 불평등이 한꺼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예민함이 그들만의 예민함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공감하는 예민함이 되기까지는 시간의 간섭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아픈, 너무 아픈 94년 개띠


그들이 스무 살 되던 해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이들은 극대화된 자본주의 물질 사회의 폐해를 은혜롭게 받은 세대들입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를 이미 알며 자라났고, 왕따를 겪으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잔인한 기술들을 습득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와 함께 사회가 그들에게 겨눈 칼날을 정확히 발견합니다.

끝없이 스펙을 쌓지만 취업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58 개띠는 "노력하지 않는다"며 질책합니다.

줄어드는 취업의 문을 더 열심히 하지 않기에 열리지 않는다고 질책합니다.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훨씬 더 많은 세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상처가 나도 꿰맬 시간 조차 없는 경쟁의 한 복판에 내몰린 94년 개띠

어린 시절 학원에서 학원으로 별을 보며 좋은 대학을 갔지만 그곳의 경쟁은 더욱더 혹독합니다.

더치페이가 아주 익숙한 세대. 방어적인 극단적 이기주의로 무장한

그들은 지금 사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류 06년 개띠


새로운 세대가 옵니다.

날 때부터 계급이 고정된 세대,

스마트 폰으로 소통하고 사고하는 세대, 코로나 19를 정면으로 겪는 세대

그들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58 개띠처럼 시대의 흐름에 엉겁결에 올라타는 세대가 될지

94 개띠처럼 시대의 처연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운명의 세대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뒤이어 오는 파도에 앞선 파도는 물러나야 합니다.

58년 개띠의 성공신화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94년생의 고통은 지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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