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을 떠나보내며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의 별세 소식이 아침 첫머리 기사에 떠오른다.
향연 89세
백기완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나선 그를 유세장에서 본 것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골 깊은 주름살이 작은 얼굴 가득
깊이를 더하며 오롯이 안광이 빛나던 그 얼굴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드러난 바람머리는
하얀 도포자락과 함께
그가 연단에서 표호 할 때마다 휘날렸다.
농민과 빈민과 함께, 민중의 벗
통일의 횃불
노동자의 친구
통일문제 연구소장으로
부천 성고문사건을 폭로하고 수번의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기개
김대중,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대선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던 백기완
비록, 당시 민민 진영은
김대중 비판적 지지론과 민중의 세력화를 부르짖는
분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지만
그의 절개와 기개는 지금까지
노동운동과 민족, 민중운동의 구심점으로
충분하셨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창밖을 두드립니다.
앞서서 나가시니
산자들은 따를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조국은 당신이 걸어간 길을 기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