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1일 오후 10:30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간혹 톡을 나누던 새언니가 1월 어느 날 제게
통화가 가능하냐고 하더군요.
무슨 일일까 생각하고 받았는데 오빠가 심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며 기도를 부탁하더군요.
믿기지 않았어요.
엄마에게 알려야 하나 그 사이에 오빠가 수술이 잘 되어
별일 없이 통화하기를 바랐으나
오빠의 수술 결과는 좋지 않았고, 심장이식도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 힘들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죠.
매주 토요일 오빠와 통화하는 기쁨을 갖는 엄마는
아들에게 소식이 없자 오빠가 아픈 것을 알게 되었죠.
그로부터 4주 후 오빠는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나에겐 오빠는 신이었다. 그리고 자랑이었다.
내가 초6 때 오빠는 이미 서울대를 입학한
집안의 자랑이었다.
전교 1등이 아닌 전국 수석을 목표로 오빠 학교에서도
기대주였다.
학력고사를 마치고 경향신문에서 오빠를 수석 입학 후보로 여기고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전국 수석은 아니었으나 오빠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했고, 나는 오빠의 뒤를 이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오빠와 달랐다. 너무나 달랐다.
내 인생전반은 오빠와 다른 나를 인정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를 제외한 그 무엇이든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무엇을 찾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죽고 싶었던 적도 정말로 많았다.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 여겼고, 그렇기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목숨처럼 귀했고 생사를 오가듯 살아왔다.
그런 내게 사람들은
열정이 넘치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그래, 나도 오빠처럼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내 아이도 나와 달리 오빠처럼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공부 잘하고 착한 아들을 둔 엄마가 말이다.
그런 오빠가 죽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5일 엄마도 하늘나라로 가셨다.
오빠의 마지막 순간을 미국에서 새언니가 보내주었다.
그 사진을 열어놓고 글을 쓴다.
믿어지지 않고 원망스럽고 가슴이 찢어진다.
내 오빠는 왠지 내게 더 특별한 것 같아 미치겠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내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너무 자랑스러워해서
떠났나 싶어 더 마음이 아프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다.